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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Oct 05. 2015

조차문(弔車文) - 프로엑센트를 추모(追慕)하며

취중진담을 말하다


조차문(弔車文)

- 프로엑센트를 추모(追慕)하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양평(陽平) 사는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차자(車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남녀(人間男女)의 발을 대신해 종요로운 것이 차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차는 여러 종류의 차들 가운데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많은 곳을 두루 다닌지 우금(于今) 십 여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이십여 년 전(年前)에 지금의 아내가 나와 결혼하기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최초로 구입한 차였으니, 그 인연이 또한 남다르다. 백색의 날렵한 몸체에 반짝이는 두 눈과 탐스러운 엉덩이를 한 귀엽고 예쁜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구나.


결혼 전, 저 멀리 오서산을 다녀오는 여행길에서 아내, 아니 그때는 멋쟁이 아가씨였던 그녀와 단 둘이 앉아 고속도로를 달리던 기억이 아직도 삼삼하구나.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다음, 아내의 도움으로 너를 운전하며 초보운전 시절을 보냈고, 우리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갈 때에도 너를 운전하며 대관령 고개를 넘었던 기억이 어제 같구나.

그때 처음으로 다른 차가 너에게 달려들어 너는 왼쪽 눈이 튀어나오는 중상을 입었더랬지. 생전 처음 당하는 교통사고로 우리도 몹시 당황하고, 너 또한 그 아픔과 충격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지.

하얗고 깨끗한 너의 몸은 늘 단정해서 어디에 있어도 귀엽고 단아했단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눈비를 맞기도 했고, 날마다 막히는 출퇴근 고속도로에서 차가 너무 막혀 스트레스를 받아 우리가 다투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지.

임신한 아내를 태우고 열 달을 무사히 출퇴근한 다음, 아이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갈 때도 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강화도로, 강원도로 여행을 다닐 때는 뒷좌석에 아기 시트를 매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구나.

그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너는 이제 세상에 없어도, 사진 속에 남은 너와 아기의 모습은 언제나 애틋하고 행복해 보인단다.


연애와 결혼, 신혼여행, 임신과 출산, 갓난아이, 그렇게 우리가 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늘어나고, 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때, 너는 항상 우리와 함께 했던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우리는 늘 너를 대견하고 고맙게 생각했단다. 신혼여행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일 말고는 사고 한 번 없이 무사히 십여 년을 함께 다녔고, 우리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골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함께 있었지.

그러다 2003년 11월, 새로운 차를 집에 들이게 되었고, 그 뒤로 너는 조금씩 아픈 몸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구나.결국 2005년, 친척에게 잠시 양도를 했으나, 머지 않아 너의 생명이 다하니, 그렇게 무심하게 너를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무죄(無罪)한 너를 폐차하게 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프로액센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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