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을 말하다
조차문
- 쏘렌토를 추모(追慕)하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양평(陽平) 사는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차자(車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남녀(人間男女)의 발을 대신해 종요로운 것이 차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차는 여러 종류의 차들 가운데 SUV라는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많은 곳을 두루 다닌지 우금(于今) 십 여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너를 처음 만난 것이 2003년 11월 25일,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구나. 수서역 앞에 있던 회사 건물 앞에서 너를 처음 만났지. 너를 운전하며 시골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그때 우리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골로 이주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너보다 한참 형님인 프로엑센트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때였지. 너는 튼튼하고 강한 힘으로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되어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
네가 우리집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엑센트는 명을 다하고 세상을 떴구나. 너는 한 해에 3만km 이상을 달리면서, 회사와 집, 전국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 충청도 아산의 조부모님 묘소는 한 해 두 번 이상 정기적으로 다녔고, 천안, 아산 등에 사시는 고모님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의 곳곳을 두루 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구나.
너는 튼튼하고 힘이 세서 물건도 많이 싣고 다니고, 네 바퀴를 동시에 굴리는 능력이 있어 눈길에도, 얼음판에도,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도 씩씩하게 다닐 수 있어서 믿음직했다.
너는 멀리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우리와 함께 다녔고, 멀고 가까운 길을 늘 함께 다녔지.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세월의 무서움을 비껴갈 수 없어, 지난 2015년 8월, 너는 인천공항 가는 고속도로에서 바퀴축이 부러지는 큰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동안 험한 길도 많이 다니다보니 차 밑부분이 많이 삭은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했구나.
그동안 때가 되면 엔진오일도 정기적으로 갈아주고, 각종 소모품도 정품으로 갈아주면서 너를 잘 보살피려 노력했지만, 너의 밑바닥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너와 함께 한 지 이미 12년이 지났고, 38만km를 달렸으니, 그동안 함께 했던 애틋한 정이 있으니 아깝다 쏘렌토여, 어여쁘다 쏘렌토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자동차 중(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무죄(無罪)한 너를 보내려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쏘렌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