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건우 Jun 03. 2022

캐시 트럭

캐시 트럭


가이 리치 감독 작품인 걸 알고 봤어도 믿기 어려운 영화. 가이 리치 특유의 빠르고 복잡한 플롯은 보이지 않고, 누가 만들어도 비슷한 평범한 영화다. 그럴 것이, 이 영화는  2004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Le Convoyeur>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시나리오를 가이 리치가 쓰지 않은 것이 핵심이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빠르고 현란한 편집, 복잡한 시나리오, 수 많은 등장인물, 등장인물의 복잡한 동선과 관련성, 복선과 반전의 탁월함, 심각한 폭력 상황에서 나오는 유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가이 리치의 이런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그걸 의도한 연출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없는, 진지하고 심각한 하드보일드 분위기다. 


단순한 서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건 편집의 힘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교차 편집하면서 서사를 비틀면 단순 하드보일드도 미스테리효과를 만든다. 패트릭(제이슨 스타뎀)은 돈을 운반하는 회사에 취업한다. 돈을 운반하는 트럭이어서 범죄의 표적이 자주 되곤하는데, 패트릭은 탁월한 실력으로 범죄자들을 제압한다. 직원들은 패트릭의 전직을 의심하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들을 죽인 자를 찾아내 복수하는 내용인데, 형식은 액션이다. 패트릭으로 보안회사에 위장취업한 주인공의 진짜 이름은 메이슨이다. 그의 정체는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데, 그의 아들이 죽게 되는 상황은 그의 정체와 관련이 있고, 아들의 죽음은 결국 자신의 업보로 귀결한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로 이어진다. 메이슨은 FBI에서 무려 25년이나 찾아다니던 1급 범죄자이며 전직 정보기관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가 현금 운송회사에 위장취업해서 트럭을 뺐으려던 범죄자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걸 알 수 있다. 한때 정보기관에서 일하던 그가 범죄자가 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범죄조직을 이끄는 두목이며, 수사기관이 추적하는 인물이다.


메이슨은 반사회적(反社會的)인물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체제와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존재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 수 많은 종류의 범죄자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타락시키지만, 범죄 분류에서 '개인화 범죄'와 '비개인화 범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어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가 특정 또는 불특정 개인에게 직접 피해를 입히는 경우를 '개인화 범죄'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화 범죄'는 신체에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건 물론, 개인의 재산, 자유, 신체 구속 등 개인이 고통을 느끼는 모든 범죄를 말한다.

반면 '비개인화 범죄'는 '사회적 범죄' 또는 '구조적 범죄' 등으로도 말할 수 있으며, 특정, 불특정 개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식이 아닌, 집단, 조직, 사회, 단체, 조직이 피해를 입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은행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현금을 강탈했다면, 그 돈은 '개인'의 돈은 아니다. 은행은 이런 피해를 예상해 보험에 가입했으며, 강탈당한 돈은 보험금으로 충당하거나 은행 자체의 손실로 처리한다. 즉, 은행에서 돈이 사라져도 그 은행에 돈을 맡긴 '개인'에게는 아무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메이슨은 '비개인화 범죄'를 실행하는 범죄 단체의 두목이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시골의 작은 은행을 터는 형제(토비와 태너)는 그 옛날 서부시대에 말을 타고 은행을 털던 카우보이 강도의 현대판 버전인데, 이들은 작은 은행을 골라 현금(그것도 20달러 이하)만 가져간다. 강도 당한 돈의 규모가 너무 적어 FBI가 개입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정도인데, 이렇게 은행에서 적은 돈을 강탈했을 때, 돈을 맡긴 개인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는 걸 이 형제는 잘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비개인화 범죄'가 용납되는 건 아니다. 개인에게 피해가 없다고 공공의 재산을 강탈하는 걸 인정한다면 그 사회는 곧 질서가 무너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정부 또는 국가는 체제 유지와 기득권 방어를 위해서라도 '비개인화 범죄'를 엄격하게 다룬다.


메이슨은 아들을 죽인 자들을 찾으려 강한 폭력을 휘두른다. 로스앤젤레스의 범죄자들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자들을 찾아가 반쯤 죽여놓고, 현금 수송트럭을 탈취한 자들이 누구인지 캐묻지만 끝내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럴 것이, 현금 수송트럭을 탈취한 자들은 놀랍게도 전직 군인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특수부대원들이었다.

이들은 모든 강도를 군사작전처럼 전략과 전술을 세워 실행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모든 면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메이슨도 이들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으니, 이들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메이슨이 아들의 복수를 멈추지 않은 건, 그가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메이슨의 자존심에 있다. 메이슨은 로스엔젤레스에서 가장 강한 범죄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그의 이름은 전설처럼 범죄자들 사이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런 그의 존재와 명성이 아들의 죽음으로 훼손되었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메이슨은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발생한다. 

메이슨의 아들을 죽인 전직 군인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먹고 사는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들은 블랙프라이데이 때 들어오는 현금을 노리고 크게 한탕할 것을 결의한다. 이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메이슨의 복수는 완결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복수 그 자체가 아니다.

메이슨이 복수를 하려고 보내는 시간, 현금 수송회사에서 범죄자들과 연결되어 있는 내부자를 찾아내는 과정, 범죄자들과 맞닥뜨렸을 때,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당연한 행동이다. 메이슨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노는 일시적이고, 그는 자신의 삶, 범죄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이 아들의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메이슨은 복수를 완결하지만, 그가 예전처럼 범죄조직을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할지, 아니면 이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지는 열려 있는 결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