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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an 29. 2024

선산

선산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연상호 감독이 웹툰 원작에도 참여하고, 영화에도 참여한 작품으로 웹툰보다 진지한 면은 장점이다. 연출은 연상호 감독 작품에서 조감독을 했던 민홍남 조감독의 감독 데뷔작이다. 웹툰과 영화 제작진이 같아서 큰틀에서 분위기와 전개 방식은 비슷한데, 웹툰에서는 가벼운 농담과 코믹한 장면을 넣었으나, 그런 가벼움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6부작이어도, 편집을 하고, 극의 흐름을 조금 빨리 한다면 극장용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처음 시작과 전개는 긴장을 고조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아쉬운 점이 남는다. 드라마는 그동안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서 본 듯한 분위기와 공포, 스릴러 영화가 갖는 클리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경신대학교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정교수가 되려고 애쓰는 윤서하인데, 그는 어느 날, 경찰의 전화를 받고는 자신의 작은아버지가 남긴 선산을 상속 받게 된다는 말을 듣는다. 이때 작은아버지의 죽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면서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이 수사를 맡은 형사 최성준과 박상민 반장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이 드라마의 줄거리, 서사는 윤서하를 따라가면서 드러나지만, 내가 주의해서 본 인물은 최성준이다. 윤서하와 최성준의 처지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당혹스럽고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간적인 고뇌가 더 깊은 건 최성준 쪽이다.


윤서하의 입장은 여성, 연하의 남편이면서 다른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는 남자, 대학의 시간 강사라는 불안정한 지위, 대학교수가 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권력 관계에 있는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하는 비굴한 처지, 그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상황, 교수의 이름으로 대필로 책을 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 자기의 인생에서 지워버린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 이복동생, 아버지의 고향과 선산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불행과 행운이 동시에 해일처럼 밀려온다.

윤서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남고, 이복동생과 선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그가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의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야 하는데, 그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갖는 딜레마와 닿아 있다. 윤서하 역시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경력을 잃지만, 그에게는 '선산'이 남는다. 그건 인생에서 실패하고, 어두운 과거로 괴로운 삶을 살았던 윤서하의 인생을 보상하는 구체적 물증이기도 하다.

반면, 최성준 형사는 윤서하보다 근본적인 딜레마에 시달린다. 6부작 드라마에서 윤서하와 관련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최성준이 놓여 있는 상황과 그가 고뇌하는 배경이 훨씬 무겁고, 본질에 가깝다. 최성준을 보면, 미국 드라마 '더 킬링'의 새라 린든이나 '트루 디텍티브'의 러스트 콜, 마틴 하트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최성준 형사는 아내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들 준형이 삶을 포기하다시피 함부로 사는 것도 온전히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동료 박상민 형사에게 인생 전체를 빚지고 있어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영화에서 최성준 형사에게 공감하는 장면은, 아내가 집에서 갑자기 사망했을 때, 최성준이 아내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집에 함께 있었던 아들 형준에게 원망하는 말을 했고, 그건 두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최성준이 잘 알고 있었고, 후회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이 장면에서 울림이 클 거라 생각한다.

극적 효과를 위해 최성준과 동료 박상민, 아들 준형과의 갈등을 증폭해 보여주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갈등이 중간 이후 쉽게 풀리면서 극적 긴장이 느슨하게 변하고, 관객의 흥미가 반감한다. 윤서하의 상황은 마지막까지 가족의 비밀과 반전을 향해 가려 애쓰지만, 혈연을 내세운 반전 효과는 이미 수 많은 작품에서 썼던 트릭이라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영화 분위기는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추구하는데, 실제 연출에서는 진하고 강한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삶의 변곡점에서 심각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데, 이 딜레마를 해소, 해결하는 과정을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땠을까.

특히 윤서하가 대학강사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그가 당한 온갖 수모와 비참함을 되갚아야 한다면, 피를 많이 봐도 될 상황이었다. 6부작 드라마라 이야기가 느슨한 것도 단점이었지만, 6부작을 꽉 채우는 잔혹함과 피의 복수를 끝까지 밀어부쳤다면 좋은 작품이 되었을 거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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