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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n 19. 2024

쌀 - 쑤퉁

쌀 - 쑤퉁


현대 중국문학 작가들 가운데 모옌, 옌롄커, 다이호우잉, 위화의 작품은 그나마 읽었는데, 쑤퉁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쑤퉁의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다. 그때는 몰랐는데, 장이모우 감독의 '홍등'이 쑤퉁의 소설 '처첩성군'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앞에 언급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작품 속 인물들이 거의 모두 자기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인데, 이렇게 개인이 자기 욕망을 한껏 발산하게 되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고, 특히 '현대 중국 문학'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배경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봉건시대에서 곧바로 '공산주의' 체제로 진입한 매우 독특한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가 '쏘련(쏘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될 때도 유럽에 비해 산업화, 공업화가 매우 뒤쳐진 상태였으나, 그래도 제정 러시아는 중국보다는 훨씬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었다.

러시아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이끄는 혁명 전략을 따라 '혁명적 노동계급'의 조직적 투쟁으로 봉건 왕정과 부르주아 의회 권력을 쫓아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했다. 결과로만 보면 '러시아 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실천이었으나 실패했다. 그것도 레닌이 권력을 잡았던 불과 몇 년을 제외하고, 레닌이 사망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러시아 혁명'은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봉건 왕정과 형식만 다를 뿐, 독재자와 독재 체제를 오래 유지했다.

중국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길을 걷는다. 더 나빴던 점은, 중국은 아예 '산업화' 단계를 거치지 조차 못한 상태로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장개석 군벌을 대만으로 내쫓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권력 체제를 수립했다. 19세기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과 달리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꿈 꿨던 사람들이다. 그때는 자본주의와 봉건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하는 것이 역사의 당위였으며, 억압과 착취로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비켜갈 수 없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를 통해 권력 그것도 새롭게 등장한 권력이 구시대(봉건 왕정, 자본주의)의 권력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건 물론, 오히려 더 악랄하게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쏘련' 당시, 스탈린 독재가 한창일 때, 혁명의 선두에 섰던 뛰어난 노동자, 혁명가들이 '반동'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참혹하게 고문을 당한 채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이건 북한에서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이후 전쟁의 책임을 '남로당'에 떠넘기면서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을 '미제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살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역시 모택동 체제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던 1970년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모택동 체제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기미가 보이는 혁명가, 지식인, 노동자들을 '반동', '수정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어 거리에서 집단 린치로 살해하거나, 오지로 보내 중노동을 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는 방식으로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중국 현대 문학은 여전히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이나 강력한 후보인 옌롄커 같은 작가들 작품이 중국 당국의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이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중국 내에서 작품 발표가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올라 작품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쑤퉁의 작품 '쌀'은 이런 중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이다. 중국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의 '중국'은 '왕조'에서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로 진입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창작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된다. 쑤퉁의 작품 속 시대가 1920년대에서 1940년대인가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중국 문학의 거목, 루쉰의 소설에서도 시대 배경은 대부분 혁명 이전이다. 봉건제 시기의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와 계급의 착취가 극심했고, 외세의 침탈에 무능한 지배 계급, 폭정과 가난으로 찌든 인민들의 분노가 밑바닥에서 들끓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쌀'에서 주인공 '우룽'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중국의 농촌에서 태어난다. 그는 쌀농사로 유명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향에서 큰 홍수가 발생하고, 사람과 쌀이 모두 홍수에 휩쓸려가자 살 길을 찾아 남쪽의 도회지로 탈출한다. 우룽의 처지에서 그가 도착한 도시는 '하얀 눈처럼 수북이 쌓인 쌀, 아리땁고 농염한 여인, 철도와 부두, 도시와 공장, 사람과 재물...' 등은 그의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고 천국과 가까운 모습이다.

우룽이 정착한 도시는 '뤼대감'이라는 군벌이 지배하는 도시였고, '대홍기 쌀집'의 펑사장은 대를 이어 쌀가게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이다. 우룽이 쌀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펑사장과 두 딸 쯔윈과 치윈의 만남은 악연으로 이어지고, 대를 이어 끔찍한 범죄와 만행이 끊이지 않는다.

쯔윈과 치윈은 봉건제와 남성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며,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혁명' 이전에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쯔윈은 나름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치윈 역시 뜨내기였던 우룽과 결혼하면서, 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기괴한 결혼을 보여준다.

우룽은 쌀집의 가장이 되었고, 지역의 조직폭력단에 들어 우두머리가 된다. 우룽은 빈털털이로 이 도시에 들어와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는 술집을 드나들며 접대부와 난잡한 관계를 맺다 결국 매독에 걸리고, 그의 육체가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점차 비참한 몰골로 전락한다.

우룽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도둑질과 강도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자신의 멀쩡한 이빨을 모두 뽑고 금니로 박아 넣는다. 그에게 최고의 성공은 번쩍거리는 금니와 눈처럼 하얀 쌀이었다.

우룽의 이런 악행은 그의 집안에 거대한 불행과 파멸로 돌아온다. 우룽의 세 자식인 미셩, 챠이성, 샤오완은 어릴 때 집안의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지만, 그걸 사탕가게 주인에게 넘기고 사탕 한보따리를 받는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고, 큰아들 미셩은 아버지 우룽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는데, 미셩은 막내 샤오완이 고자질했다고 생각하고 샤오완을 쌀 창고에서 쌀에 묻어 죽인다. 우룽은 동생을 죽인 미셩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가족은 서로에게 원망과 저주의 심정을 갖고 살아간다.

쌀집의 몰락은 큰딸 쯔윈의 일탈에서 시작했지만, 우룽을 받아들이면서 우룽의 탐욕과 무지에서 오는 사악함으로 집안이 이웃들의 저주를 받고, 처절하게 파멸한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역겨운가를 우룽의 삶을 통해 드러내면서, 이런 사회가 봉건적 중국의 실상이며, 어리석은 중국 인민의 모습이라는 걸 쑤퉁은 잔인함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룽의 운명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그가 지배하던 도시의 폭력집단이 배신하면서 급격히 몰락한다. 그는 쌀을 팔고, 강도짓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넓은 땅을 매입해 쌀 농사를 짓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우룽에게 중국의 운명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느라 질주하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며, 핏줄에 대한 애착도 보이지 않는다. 욕망에 휩싸여 인간성을 잃은 우룽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모습, 타락한 모습을 중국 인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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