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건우 Jul 22. 2024

아메리칸 갱스터

아메리칸 갱스터


리들리 스콧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미국 사회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거대한 대륙이라는 물리적 특징과 함께 그 대륙에 사는 사람들도 수 많은 나라에서 자의, 타의로 이민온 사람들이 섞여 살기 때문에 가치관, 세계관이 사뭇 다르고, 그렇게 다양성이 충돌하면서 또 조화를 이뤄가는 사회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그들의 사회가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를 다룬다. 1968년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미국에서 마약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하던 시기였다. 마약이 미국으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들어서다. 미국은 2차 세계전쟁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중산층이 빠르게 확장되었다. 노동자 가족도 가장(주로 아버지)이 노동해서 받은 월급으로 네다섯 식구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으며, 포드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이 빠르게 보급되었고, 미국은 '꿈을 이루는 나라'의 상징이었다.

'자유'가 최대의 덕목이었던 미국은 민주주의의 다양성,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확장하는 법에 근거해 개인의 선택은 거의 무한한 자유를 부여했다. 이 시기에 인종차별이 가장 큰 사회문제였으나, 미국의 구조적 문제는 대중의 관심 영역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시작한 미국과 쏘련의 냉전으로 정치는 우경화 하고, 1960년대 중반 미국이 베트남을 침략(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전쟁을 일으켰다)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 정체를 드러냈다.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면서, 군수산업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미국 정부는 국제적 깡패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파병 미군들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공급하는 마약에 노출되면서, 마약은 점차 미국의 뿌리를 갉아 먹는 사회 현상이 된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들은 미국 내에서 마약을 찾기 시작했고, 미국과 가까운 중남미, 남미에서 마약을 재배, 공급하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 시기에 남미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은 중독성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대마초에서 시작해 점차 부피가 작고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코카인으로 바뀐다. 미국 국경을 넘는 방법도 고속 보트, 경비행기 등 바다와 하늘을 통해 대량으로 유입되었고, 마약을 둘러싼 범죄 조직이 동네 양아치 수준에서 대기업 수준으로 성장한다.


조직폭력배 두목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던 프랭크(덴젤 워싱턴)는 두목이 사망하고 사업이 지리멸렬하고, 질 나쁜 마약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그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그는 미군 수송기를 활용해 태국에서 만든 마약을 미군 수송기에 실어 미국 본토로 들여온다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긴다.

그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이 대담한 일을 벌인 사람이 할렘가의 조직폭력배 운전기사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심지어 돈과 권력을 다 가졌다는 마피아도 이런 발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감추고, 지역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위장하며 살아간다. 그가 태국에서 만들어 직수입하는 마약은 순도가 높고 가격은 기존 싸구려 마약보다 낮아서 마약중독자들에게 인기 높은 상품이었다. 게다가 자신만의 브랜드로 '블루매직'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면서, 마약을 비공식 '상품'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었다.

당시 뉴욕 경찰의 마약 전담 경찰들은 거의 대부분 범죄조직에게 돈을 받는 부패한 경찰이었다. 그들은 마약을 판매하는 범죄자들을 체포하지 않고, 돈만 챙기고 있었으며 청렴한 경찰을 오히려 해꼬지하는 범죄자와 똑같은 인간들이었는데, 연방정부의 마약단속국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청렴한 경찰들만 모아서 별도의 팀을 꾸려 대규모 마약상을 체포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한다. 이 팀의 팀장이 리치 로버트(러셀 크로)다.

사생활로만 본다면 진짜 마약상인 프랭크는 지역의 존경받는 사업가이자 다정다감한 가장이고 아빠, 남편이 훌륭한 인물이다. 반면 정의로운 경찰 리치는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사생활도 지저분한 인물이지만 범죄자에게는 땡전 한푼 받지 않는 청렴함을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인물이다. 리치는 뉴욕 일대의 마약판매자들을 수사하면서 '블루매직'이 유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끈질긴 수사를 통해 마약이 베트남에서 미군 수송기를 통해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뒤를 추적해 마침내 리치 일당을 일망타진한다.

흥미로운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작 범죄집단의 수괴인 리치가 잡히고 나서도 사건은 끝나지 않는데, 이는 그동안 리치를 통해 돈을 받아간 정치계, 경찰 등 수 많은 부패 공무원들이 있다는 걸 리치가 자백했고, 그들을 잡기 위해 리치와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협력으로 뉴욕의 정치계와 경찰은 발칵 뒤집히고, 실제 수십 명의 공무원, 시의원들이 체포된다. 

범죄자이긴 해도 프랭크가 보여주는 태도는 양아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마약으로 돈을 벌지만, 할렘의 주민에게 많은 혜택을 베푸는데, 이는 자신의 보스가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이다. 비록 범죄로 돈을 벌어도 지역 주민에게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마약을 대량으로 수입해 많은 사람들을 마약중독자로 만든 죄를 용서받을 수는 없다. 

미국은 마약과 총기, 두 가지로 인해 다른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로 변해왔다. 그것이 미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것들로 인해 발생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천문학적 숫자여서 미국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리치는 청렴한 경찰은 분명하지만, 아내와 아들에게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일을 하느라 가족과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리치는 스스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성실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리치는 청렴한 수사관들만 모아 특별마약팀을 만들어 마약 공급조직을 추적한다.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 마약을 공급하는 최대 조직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마약은 '블루 매직'이라는 브랜드로 유통되고 있으며, 이 마약이 남미에서 오는지, 동남아시아에서 오는지 경로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리치 팀은 끈질긴 추적을 통해 말단 공급상부터 차례로 용의자들 정보를 수집한다. 이 팀이 은밀하게 찍은 용의자들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범죄 조직을 이루는 용의자들을 상대로 연결점을 찾아간다. 리치는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파티 장소에서 기자로 사칭해 사진을 찍고, 그들 가운데 단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난 적 없는 프랭크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재벌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프랭크는 평범하고 소박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금욕적 인간이고, 돈의 일부를 할렘의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쓰고 있었다. 그의 두목이 했던 자선을 따라하는데, 그건 대외적으로 사업가의 이미지와 함께 할렘 전체가 자신을 보호하도록 하는 정치적 계산인 건 물론이다.

한편으로 프랭크는 여러 경로로 뇌물을 상납하는데, 마약단속국 특별수사팀부터 동네 경찰은 물론, 자신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모두 뇌물을 주고 있었다. 국민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무원들이 가진 권력으로 범죄자를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최악의 범죄를 서슴 없이 저지르고 있는 현실에서 프랭크는 자신도 범죄자이면서 권력의 추악함에 이를 간다.

프랭크가 리치에게 체포되고,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이 몰수되는데, 70년대 중반에 무려 2억 5천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십 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프랭크는 감옥에서 평생 썩어야 하는데, 리치는 그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프랭크가 리치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프랭크에게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모두 체포한다.

마약 단속 경찰의 75%가 뇌물을 받고 있었고, 경찰말고도 다른 분야의 공무원들까지 범죄자들에게 뇌물을 받는 타락한 공무원이 모두 드러나면서 미국 사회는 충격받는다. 리치는 경찰공무원으로 자신이 해야 할 공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프랭크는 그동안 공권력을 앞세워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범죄를 저지른) 국가공무원들을 단죄한다.

놀랍게도, 프랭크가 재판을 받는 동안 그를 변호한 변호사가 리치였다. 리치는 프랭크 사건을 마무리하고 경찰에서 퇴직했으며 변호사 개업을 하고 프랭크를 변호한다. 프랭크는 70년 형을 받았지만, 경찰을 적극 도운 점이 참작되어 15년 형으로 줄어들고, 이 거대한 사건은 막을 내린다.


하나의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마약 범죄는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다. 마약을 둘러싼 범죄 조직과 마약단속국, 경찰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마약은 수만, 수십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마약 재배, 마약 제조, 마약 공급과 같은 거대한 커넥션이 지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마약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를 따라 움직이며,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고, 다른 어떤 산업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어 범죄 집단의 주요 사업이 되었다. 이제는 술과 담배 역시 중독성이 강한 마약으로 분류하지만, 국가는 술과 담배를 독점하거나 많은 세금을 부과해 정부 수익으로 삼는다.

반면 마약은 정부로부터 여전히 불법으로 취급되어 제조, 유통, 판매, 구입 모두 범죄로 규정한다. 마약이라는 먹이를 둘러싸고 인간은 돈과 권력을 무기로 투쟁한다. 범죄자와 범죄집단은 선량한 시민의 삶을 파괴해 이익을 가져가고, 정부는 그런 범죄자와 범죄집단을 잡아들이고 있지만, 힘의 균형은 늘 범죄집단 쪽으로 기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마약이 창궐하고, 마약 산업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고, 마약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개개인의 이야기 가운데 행복한 서사는 없다. 그 종말은 언제나 불행하며 고통스러울 뿐이다.


또 다른 영화 '화이트 보이 릭'에서 주인공 릭은 디트로이트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백인 소년이다. 아버지는 총기 면허를 가지고 있어 합법적으로 총을 사고 팔 수 있지만, 뒤로 불법 매매를 한다. 릭의 주변에는 흑인들이 많고, 흑인 친구도 많다. 열 다섯 살 소년 릭이 마약 범죄에 연루되고, FBI 끄나풀이 되었다가 결국 마약 소지 혐의로 중형을 선고 받고 무려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야 하는 이야기인데, 이때 '마약'은 릭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삶의 수단이 된다.

국가(FBI)는 어린 릭을 활용해 범죄자들을 잡지만, 릭을 지켜주지 않는다. 개인은 철저하게 국가기관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 냉혹하게 외면한다. 릭은 어린 나이에 이미 아내와 딸을 둔 가장이었지만, 그는 30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정부가 사람들 사이에 마약이 유통되는 걸 막지 못하거나, 심지어 방기, 방치하는 수준으로 내버려두고, 마약단속국이나 주나 시 단위 경찰이 유통 단계의 조무라기들만 잡아들이는 한, 마약 범죄와 마약으로 인한 개개인의 비참한 삶은 더 늘어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약 문제는 정확히 계급의 문제이자 자본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은 마약을 팔다 잡혀가서 평생 감옥에 살고, 돈 많은 자들은 마약을 쾌락의 도구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약을 재배, 제조하는 나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들이고, 그 마약을 소비하는 나라는 부자 나라들이다. 

남미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농민들은 먹고 살려고 마약을 재배하고, 범죄 조직은 마약 제조와 판매로 중간에서 거대한 이윤을 차지한다. 범죄 조직 역시 자본의 논리에 가장 충실하다는 점에서, 마약을 둘러싼 카르텔은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 카르텔과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킬 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