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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Aug 19. 2024

악마와의 토크쇼

악마와의 토크쇼


잘 만든 영화.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을 활용한 점도 좋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알레고리가 풍부한 면도 좋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은 오컬트 공포 영화로 볼 수 있지만, 영화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타락한 언론에 관한 이야기다. 즉, 오컬트 공포와 타락한 언론은 두 개의 얼굴을 한 하나의 괴물이라는 뜻이다.

1977년 할로윈 전날 밤에 방송한 토크쇼 프로그램이 비공개 상태에 있다 47년만에 공개된다. 화면은 오래 되어 빛이 바랬고,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70년대 패션으로, 70년대 당시의 방송 화면을 그대로 보여주어, 마치 실제 방송 프로그램으로 착각할 정도다.

진행자 잭 델로이는 유능한 진행자이며,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시청률은 만년 2위에 머물러 초조한 상태다. 그는 시청자를 상대로 청취율 조사가 있기 하루 전날이면서 마침 할로윈 전날에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할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렇게 '올빼미 쇼'는 불안과 긴장을 안고 시작한다.

영화는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장치로 잭 델로이가 깊은 숲속에서 모이는 남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남자들의 모임 구성원은 사회의 엘리트, 지식인, 부르주아, 권력자 등 상류 계급을 형성한 남자들을 말한다.

잭 델로이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는 건, 그가 사회의 상류 계급에 속하거나, 가까이 다가갔다는 뜻이다. 잭 델로이로서는 방송진행자로 성공하고 싶은 열망과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깊은 숲속에서 열리는 남성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 모임은 참석자들이 누구인지, 그 숲속에서 남자들이 모여 어떻게 지내는 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은 비밀스러운 집회를 두고 온갖 추측과 소문을 듣는데, 여기서 악마 숭배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내용과 관련해 다른 영화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 '아이즈 와이드 샷'에서 주인공 윌리엄 빌 하포드(톰 크루즈)가 참석한 모임을 떠올릴 수 있다. '아이즈 와이드 샷'에서는 부부가 함께 비밀 파티에 참석해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잭 델로이는 그 모임에 참석한 이후 다시 방송에 복귀한다.

잭은 할로윈 특집으로 네 명의 게스트를 부르는데, 첫 번째 출연자는 '크리스투'로 자칭 영매다. 그는 영혼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고, 자신과 연결된 영혼의 이름을 불러 관객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는 지 찾아낸다. 그렇게 영혼과 가족을 연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누가 봐도 사기라는 게 눈에 보인다. 영매를 자칭하면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쇼로 그친다면 모르되, 그게 진짜라고 확신하는 순간,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행위라는 걸 알 수 있다. 

방송에서는 '크리스투'가 가짜 영매, 사기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극적 소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크리스투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지켜본다. 크리스투는 영혼을 불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이어 출연하는 '카마이클'에게 조목조목 반박 당하면서 영매의 신용을 잃는다. 하지만 크리스투의 마지막 장면은 입에서 무언가 뿜어내면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사망하는데, 잭 델로이나 방송 제작진은 충격을 받고, 당황하지만 방송을 멈추지는 않는다.

즉, 방송에서 자극적 소재로 시청률이 높기만 하면, 사람이 죽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방송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방송에 관여하는 자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양심 없는 타락한 인간들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출연자 카마이클은 흑마법과 사기, 현혹, 가짜 마술 등에 대해 매우 냉정하게 비판한다. 그는 50만 달러 수표를 꺼내 보이면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진짜 유령,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 유능한 마법사의 경력으로, 잭 델로이의 보조 진행자인 거스 맥코넬을 상대로 최면을 건다. 이때 카마이클이 거는 최면 장면은 거스 맥코넬 개인 뿐아니라 방송국 스튜디오에 있는 관객, 방송을 보는 모든 시청자를 상대로 한다.

여기서 '최면'은 카마이클이 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최면'의 알레고리는 방송이 대중을 어떻게 기만하는가를 말하는 표면적 행위다. 즉, 방송(언론)은 대중을 언제나 속이고 있다. 대중은 이런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아 멍청하게 방송을 바라보고 있다. 즉, '어리석은 대중'은 자기가 최면에 걸리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거스 맥코넬은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시청자 대중은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한다. 거스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고, 관객과 시청자 모두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 즉, 카마이클이 최면을 걸었다고 말하지만, 그게 오히려 사기가 아닐까 의심한다.

이때, 거스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카마이클이 거스에게 최면을 걸기 직전,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었는데, 이 질문이 복선이 된다. 거스는 벌레를 가장 징그럽고 무서워 하는데, 그의 몸이 근질거리더니 몸에서 벌레가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거스는 기겁을 하고, 스스로 배를 찢는데, 거스의 배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나오는 장면을 꽤 혐오스럽지만, 이렇게 혐오스럽고 자극적인 화면을 방송에서 그대로 내보내고 있는 건, 방송이 자극적 소재를 찾아 반사회적 행위를 기꺼이 한다는 비판으로 읽힌다.

거스의 기괴하고 끔찍한 행동과 결과를 스튜디오의 관객과 시청자 모두 보면서, 이 장면이 흑마법인지, 악마의 짓인지 알 수 없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카마이클은 거스를 최면에서 깨우고, 멀쩡한 거스의 몸을 보여준다. 거스는 물론 거스가 몸에서 끔찍한 벌레를 꺼내는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최면에 걸렸다는 걸 인정하기 어렵다. 최면에 걸렸다는 걸 아는 상황이라면 최면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카마이클은 직전의 장면들이 모두 텔레비전 카메라에 녹화되었으니 그걸 다시 보자고 말한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일 뿐이다. 제작진이 녹화된 내용을 돌려보자, 거스는 최면에 걸려 보이지 않는 벌레 때문에 충격을 받아 자기 몸을 마구 뜯어내고 있었다. 최면은 관객들 대부분도 걸렸는데, 관객 가운데 두 명만이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건 방송의 조작, 기만, 현혹이 대중을 어떻게 속이고, 여론을 조작하는가를 말하는 장면이다.


세 번째 출연자는 두 명으로,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어린 여성 릴리와 릴리를 돌보면서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준 로스 미첼이 함께 등장한다. 릴리가 있었던 사이비 종교 집단은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으로,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자 교주는 모든 신도들이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두 자살하지만, 유일하게 릴리만 구출된다.

한국에서도 '오대양 사건'이 실제 벌어졌는데, 사이비 종교 집단이자 경제 공동체인 '오대양'에서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을 정도로 사이비 종교의 힘은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릴리는 기적처럼 살았지만, 그의 내부에 악마가 깃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릴리를 돌보며 과학의 상식을 벗어난 현상을 연구하는 준 로스 박사는 릴리를 관찰한 내용을 책으로 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릴리의 몸에 실제 악마가 봉인되어 있으며, 릴리의 의지로 악마를 불러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출연했다.

준 로스 박사는 생방송에서 릴리의 행동을 그대로 보이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잭 델로이와 방송국 관계자는 시청률만 오른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한다는 생각이다. 시청률에 목맨 방송국 관계자는 자극적 내용일수록 내심 좋아한다. 방송이 계속되면서 실시간 시청률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이건 잭 델로이가 방송을 멈출 수 없는 유혹이다.

릴리는 의자에 손이 묶인 상태로 악마를 소환한다. 이때 오컬트 영화의 고전인 '엑소시스트'나 '오멘'을 보면, 어린 여성의 몸에 악마가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때 '어린 여성'은 가장 약한 사람을 상징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를 '어린 여성'으로 상정하는 건 남성 우월사회에서 하나의 클리셰로 작동한다.

어린 여성은 '롤리타'로 상징하듯, 남성 일반의 성적 판타지 대상이며, 인류 역사에서 신에게 받쳐지는 제물로 쓰였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 매매 여성을 상징한다. 공중의 방송에서 어린 여성이 등장하는 순간, 시청률이 올라가고, 광고가 더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 단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보라.

자극적 내용일수록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확신하는 방송국 제작자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릴리가 악마에 빙의하는 장면을 내보내려 한다. 이때부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폭력이 지배하는 난장판이 되고, 릴리의 몸에 빙의한 악마는 준 로스의 목을 자르고, 거스의 목을 비틀며, 새카많게 타버린 카마이클 등을 보면서 악마가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릴리의 머리가 갈라지고, 얼굴에서 시뻘건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강력한 염력과 화염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데, 이때 잭 델로이는 자신이 찾았던 깊은 숲속의 모임 '그로브'에 대해 떠올린다. 잭은 그곳에서 악마와 계약을 했다. 그는 아내를 제물로 바쳤고(아내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폐암으로 사망한다), 자기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달성한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맹세를 한 걸로 보인다.

사건이 벌어지는 스튜디오에서 잭은 폐암으로 사망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내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자기를 빨리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의 말대로 악마 숭배 의식에 쓰인 단검으로 아내의 가슴을 찌르는데, 정신이 돌아와 보니 릴리의 가슴에 단검이 박혀 있다.

잭을 제외하고 스튜디오에 출연한 모든 사람이 죽고, 녹화한 테이프는 봉인된다. 우리(관객, 시청자)가 본 방송 프로그램은 47년 전 녹화 장면이며, 이 장면들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는 어느 곳에도 없다. 따라서 시청자는 방송에서 만든 페이크 다큐멘터리인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인지 알 수 없고, 실제 사건이라 해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다.

방송은 시청자를 기만하고, 일방적인 정보를 수용하도록 하는 조작된 시스템이다. 사이비 종교, 악마 숭배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믿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순간, 그 사람은 그 시스템에서 거부당하거나 제외된다.


저예산 영화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무대극'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해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실제 방송을 녹화할 때는 컬러로, 쉬는 시간에는 흑백으로 화면을 바꾸면서, 마치 실제 방송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시나리오도 훌륭해서, 오컬트와 타락한 방송을 이종교배 하는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두 가지 주제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내는 연출도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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