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1982년 개봉한 성인 영화 '애마부인'이 70년대 성인 영화와 다른 점은 여성의 욕망을 대상화 하지 않고, 여성이 욕망의 주체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70년대 영화는 주로 '호스티스 영화'로 대표되는데,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성이 도시에서 술집 호스티스로 살아가며 만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자로, 수동적인 삶을 보여주었다면, '애마부인'은 자신의 욕망으로 갈등하면서도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 윤리의 선을 넘나든다.
'애마'는 '애마부인'이 나오게 되는 배경을 그린 작품이다. '애마부인'의 '메타-애마'로 1980년대 사회 상황과 본격 '성인 영화'를 만들려는 영화사(제작자, 감독 등)와 정부(문공부)의 갈등과 주인공 여배우(신주애/방효린)과 톱스타(정희란/이하늬)의 갈등과 단합, 제작자와 배우의 대립을 코믹 드라마로 그리고 있다.
'애마'는 '애마부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마치 대체 역사물처럼 실제 있었던 과거의 사건을 재해석하고, 비틀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애마부인'은 그런 점에서 여러 겹의 서사가 중첩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영화로 보인다. 몇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자.
사회 상황
80년대는 전두환 군부 쿠데타로 시작한 시대였고, 18년 군부 독재를 하던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은 다음, 박정희에게 충성을 하던 박정희와 비슷한 인물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전두환은 80년 5월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언론의 일방적 찬양으로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권력을 찬탈한다.
1981년 5월에는 여의도에서 '국풍81'이라는 관제 축제를 열어 반독재투쟁을 막으려 했고,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쳤다. 통행금지를 없애고,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으로 노동운동, 시민운동, 민주 진보 인사들을 불법 체포해 온갖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다.
독재 권력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통행금지 해제', '사회악(이라는 명분으로 반정부 인사들) 제거', 3S 정책(스포츠, 스크린, 섹스)을 내놨다. 대중은 독재 정권의 야비한 술수라는 걸 알지만, 그런 기회를 활용해 자유의 공간을 넓히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3S 정책 가운데 하나인 '섹스'가 전두환 정권에서 어떻게 확산되었는가를 들여다 보는 건 의미 있다. '스포츠'에서는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는 게 가장 핵심이고, '스크린'에서도 '애마부인'과 같은 성인 영화, 성애물이 등장하면서 이후 무수한 성인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섹스'와 관련해서는 영화관(성인 영화)을 제외하고 크게 두 분야에서 확장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80년대부터 '비디오테이프(VHS)'가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시작한 '비디오테이프' 생산은 곧바로 '비디오테이프' 영상물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전두환 정권에서 '성인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폭발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생산한 '성인 영화(애로물)' 비디오테이프는 대여점을 통해 공식, 공개적으로 판매, 대여되었지만, 비공식, 비공개로 유통되는 비디오테이프들이 많았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포르노' 영상물로, 주로 미국에서 제작된 포르노 비디오테이프가 어둠의 경로 또는 미군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고, 비디오테이프 대여점과 같은 공식적 경로보다는 '다방', '여관' 등을 통해 배포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심하게 규제하지 않았다. 일부 '다방'에서는 차와 음료를 팔려는 목적으로 영업시간이 끝난 심야 시간에 문을 닫고,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이때 상영료 목적으로 음료, 차를 추가 주문하도록 했다.
'여관'에서도 숙박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심야 시간에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사람들 가운데는 포르노 비디오를 보려고 일부러 여관에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전두환 정권은 사회 곳곳에 '섹스'를 배포해 사람들이 독재 권력이 저지르는 무수한 폭력과 범죄를 은폐하려 했다.
만화가게에도 큰 변화가 일었는데, '성인 만화'가 등장하면서 만화가게에 20대 이상의 성인들이 많아졌다. 그 전까지 만화가게는 국민학교 아이들이나 가는 '하꼬방' 같은 곳이었는데, 성인 만화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만화 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만화가게에 배포되는 성인 만화는 그나마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성인 영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노출했지만, 만화가게에서도 취급하지 못할 정도로 '포르노' 만화는 은밀하게 배포되었다. 포르노 비디오와 포르노 만화가 비공식 경로를 통해 배포되는 사회였고, 위로는 권력을 불법, 폭력으로 찬탈한 군부 독재 정권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그 권력이 국가를 통제, 지배하는 수단으로 온갖 더러운 매개물을 배포했다는 점에서 80년대는 폭력과 불법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제작
'애마'에서 80년대 시대 배경은 중요하다. 영화제작자 구중호(진선규)는 오로지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영화 제작 부문을 담당하는 '문공부' 공무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뇌물을 주는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하며 큰 돈을 번 인물이다. 세상이 변하고 바뀌는 가운데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대중이 바라는 상품(영화)을 만드는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락하고 부패한 부르주아 자본가이기도 하다.
그는 인기 있고 이름 있는 배우들을 권력의 잔치 노리개로 진상하며, 배우를 예술가가 아닌, 영화 제작의 도구, 상품으로 취급한다. 이미 대스타로 성공한 정희란 역시 권력의 노리개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의 뒷면에는 치욕과 비참한 굴욕으로 이어지는 분노와 고통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마부인'을 연출하는 감독 곽인우(조현철)는 영화판에서 연출부, 조감독 등으로 일하다 이제 감독으로 데뷔하는 인물인데, 그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과 욕심으로 나름 열심히 하지만,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작사 사장인 구중호에게 번번히 퇴짜를 맞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으며 불만이 쌓인다.
영화는 당연히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만, 영화가 한 편의 결과물로 나올 때까지 한두 사람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한 편의 영화에 투입되어 영향을 끼치기에 감독 한 사람의 이름으로 영화의 모든 걸 말하기 어렵다. 연출만 하는 감독도 있고, 감독이 중간에 바뀌기도 하는 상황에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든 주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기 어려운데, 영화는 감독의 이름으로 대표한다.
'애마'에서 감독 곽인우는 더구나 자신이 '입봉'하는 작품이므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크다. 하지만 감독에게 집중되는 압력은 그가 영화 상상력, 창작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좌절하고 분노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감독에게 집중되는 압력은 제작자가 요구하는 '상품성'에서부터 정부기관인 '문공부'에서 지시하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폭 넓고 구체적이어서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지경이 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제약을 뚫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배우의 꿈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모든 책임을 감독이 진다면, 배우는 영화 내용을 만드는 구체적 존재들이다. 시나리오 속 인물을 실재하는 인물로 구현하는 배우의 역할은 '가상의 존재'를 '실재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감독은 배우를 단지 '도구'로 소모해서는 안 되는데, 많은 영화에서 배우가 '도구'로 소모되는 현실이다. 특히 '애마'에서 배우들은 영화를 구성하는 도구로만 기능한다. 여성 배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 상품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고,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더 자주 '성 상품화'의 대상으로 소외된다.
'애마'의 주인공 신주애와 정희란 역시 자신들이 예술 작품 활동을 하는 배우라는 자부심과 함께 영화에서 소모되는 도구이자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한다. 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하며 최고의 배우로 자리한 정희란은 '애마'에서 뒤로 물러나게 되고, 새로운 얼굴로 뽑힌 신주애를 무시하고 질투한다.
정희란이 신주애에게 '왜 배우가 되려느냐'고 묻고 신주애는 자신의 어려운 과거와 현실을 말한다. 신주애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닭장' 같은 좁은 집에서 함께 사는데,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백댄서로 일한다. 그는 배우가 꿈이었고, 꿈을 이루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1980년대 공장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대표된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인 여성 노동자로 살기를 거부하고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건 '신데렐라 컴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그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망 가운데 하나이고, 가난과 초라함에서 벗어나 부와 화려함을 누리고 싶은 건 보편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정희란은 그런 신주애의 말을 들으며, '너 같은 아이는 세상에 오백만 명도 넘는다'고 말한다. 뻔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개인의 서사보다 배우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절실함이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희란은 신주애를 경멸한다. 하지만 정희란 역시 과거 신인 배우 때를 생각하면, 자신도 신주애와 다를 게 없기에 정희란이 신주애를 바라보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신주애는 제작자 구중호의 감언이설, 협박에 못이겨 권력자(여기서는 전두환 일당)가 노는 은밀한 비밀 파티에 참석하는데, 이 자리에서 먼저 온 정희란을 발견한다. 그렇게 도도하고 콧대 높은 줄 알았던 정희란이 권력자 앞에서 한낮 술집 여자처럼 보이는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신주애는 충격을 받고, 자신의 미래가 정희란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며 좌절한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은 예술가들을 술집 작부로 만들어 소모했다. 독재자가 저지르는 수 많은 악행이 있지만, 권력을 동원해 여성을 성 상품으로 만드는 만행은 세계 공통이다. 신주애와 정희란이 권력자의 비밀 파티에서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권력의 폭력에 짓밟힌 힘 없는 여성 배우라는 공통점을 인식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더 큰 악을 향해 싸우기로 힘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