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랜만에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 보는 내내 크크, 하하, 푸하하 하며 봤다. 감독이 누군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변상현' 감독이었다. 감독의 감각이 뛰어나서 연출이 훌륭하고, 배우들 연기 또한 일품이다. '코미디 영화'의 본질을 잘 살린, 잘 만든 작품이다.
작품은 1970년에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일본 '적군파'가 일본 항공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가려던 계획을 '한국(남한)' 관제사가 항공기 조종사의 주파수를 중간에서 가로채 김포공항으로 착륙하게 만든 실제 사건이 영화 배경이다.
영화의 외형을 '코미디'로 설정한 감독의 감각이 놀랍다. 이 영화 소재를 무겁고 진지하게 연출했다면 재미없었을 걸로 확신한다. 무엇보다 2025년에 바라보는 1970년은 그 자체로 '코미디'가 분명하다. 1970년 한국(남한)은 박정희 군사독재가 들어서고 불과 9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독재의 표독한 총칼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었다. 여기에 북한과의 체제 경쟁으로 박정희는 김일성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어서, 어떤 사안이든 북한 또는 김일성에게 져서는 안 되는 자존심 대결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을 시작하자 남한에서는 '새마을운동'을 시작했고, 그 내용과 형태는 남한이 북한을 따라하는 모양새였다. 또한 북한 김일성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자, 박정희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따라할 정도로 1970년 당시는 북한이 남한을 군사,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앞지르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적군파'들이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는데, 그건 일본이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중진국 대열로 진입하는 신호탄이 되어 일본이 점차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일본 국민은 더 이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적군파'는 이미 1950년대 대정부 투쟁을 통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나 그들의 극단적 행동, 극좌파 투쟁 방식이 자멸의 지름길이 되었다.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는 '요도호 납치사건'도 '적군파'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영화는 실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비어 있는 장면들을 창발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알 수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오른팔(비서실장)과 왼팔(중앙정보부장)의 신경전을 통해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알 수 있다. '중정부장'의 느글느글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충청도 사투리는 '김종필'을 모티프로 한 것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점잖아 보이지만, 죄 없는 사람을 때려잡거나, 선량한 시민을 '빨갱이'로 만들어 잔혹한 고문과 감옥에 처넣는 일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물들의 어리숙한 모습 자체가 역설적인 코미디라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속 항공기 납치사건은 일본 '적군파'가 저지른 행위지만,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한국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다시 북한 평양 공항에 내리면서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항공기 승객들의 생명을 두고 '적군파'와 한국 정부 사이의 교섭, 일본 관료의 개입과 해결 등 복잡한 요소가 끼어들지만, 그보다 영화에는 아주 짧게 언급만 되는 미국과 쏘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은 무려 3년이 넘는 장기전이었고, 이 전쟁에서 남북한은 궤멸적 수준으로 타격을 입었다. '한국전쟁'은 엄연히 미국과 쏘련의 냉전에 따른 '대리 전쟁'이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이 항공기 납치사건이 벌어졌던 1970년 당시에도 여전히 '미-쏘 냉전' 상태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쏘련은 불과 몇 년 전에 쿠바에 핵미사일 발사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했었고, 미국은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었다. 미국은 쿠바가 이미 카스트로-게바라가 주도한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했고, 쏘련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미국 턱 밑에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적군파'는 '공산주의 혁명'을 부르짖으며 항공기를 납치했고, 원래는 비행기를 쿠바로 끌고 갈 계획이었으나 현실적 어려움으로 북한 평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공산주의 혁명'을 부르짖는 '적군파'라고 하지만, 이들이 한 행동을 보면 매우 어설프고 아마추어의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일본과 한국의 공항에서 모든 탑승객을 풀어주고, 일본 정부의 관료 한 명만 태우고 평양으로 간 걸 보면, 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었던 게 확실하다.
1970년과 2025년의 현실은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격세지감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상전벽해)'로도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
1970년은 군사독재 시절에 보리고개를 막 넘어가는 단계였고, 1인당 GDP는 불과 280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2025년 한국은 1인당 GDP가 무려 3만4,700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이다. 무려 100배가 훨씬 넘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의 관점에서 1970년에 일어난 사건을 보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일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도 1970년에는 한국(남한)이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뒤쳐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단순 산술로도 한국은 북한보다 40배 이상 잘 사는 나라다. 국방은 물론, 모든 면에서 북한은 더 이상 경쟁이 될 수 없는 가난한 나라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는 30대 이하의 청년 세대는 어쩌면 영화 속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우리 세대는 이 시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재미있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텐데, 이 영화가 세대의 경험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