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브라스카
다시 보니 더 좋은 영화. 남루하고 후줄근한 일상과 가족을 통해 '삶'과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덤덤하고 날것의 생생함이 느껴지는 흑백 영화인데도 영화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예사롭지 않다.
영화를 볼 때, 공간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할 때면 지도를 펼쳐 놓고 영화의 공간이 되는 장소를 찾아보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더 생생하다. 예를 들어 빔 벤더스 감독 작품 '파리, 텍사스'에서 트래비스가 황량한 사막을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파리'라는 지명과 '텍사스'라는 지명이 갖는 위화감과 이질감, 황량한 모래 벌판과 잡초들, 사람(개인)의 인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대하고 엄청나게 넓은 자연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이는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느끼는 것처럼, 이 영화 '네브라스카'에서도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네브라스카'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고향이기도해서 영화의 배경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디는 아내와 장년의 두 아들을 둔 평범한 노인이다. 다만 그는 알콜중독과 약한 치매가 있어 스스로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데, 일상을 살아가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 우디가 틈만 나면 집을 나와 네브라스카주에 있는 도시 링컨으로 가려한다. 우디가 살고 있는 곳은 몬테나주 빌링스인데, 여기서 네브라스카 링컨까지는 약 1,200km 정도가 된다. 미국 지도를 보면 몬테나주는 중서북부에 있고, 네브라스카는 중부에 속한다. 두 도시 모두 인구도 적고 다른 주와 비교하면 가난한 주다. 몬테나주에서 네브라스카주까지 가려면 와이오밍주를 통해 가거나 사우스다코타주를 통해 갈 수 있는데, 우디와 그의 아들 데이비드는 두 개 주를 모두 거치면서 네브라스카주로 향한다.
여기서 반전은, 우디의 고향이 네브라스카주였고, 그가 가려는 링컨에서 멀지 않은 '호손'이라는 동네라는 점이다. 우디는 어떤 잡지에서 오려낸 백만 달러 경품권을 가지고 그 돈을 받겠다면서 억지를 부리며 네브라스카 링컨에 있는 회사를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우디의 억지는 두 개의 중요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었다.
우디는 결혼하고 고향 호손을 떠나 몬테나주로 이주해 평생을 살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디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 전쟁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경험으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가 생겼고, 알콜중독도 PTSD의 영향인 걸로 보인다.
우디는 고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들을 낳았으며 지극히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왔다. 아내는 간호사로 일하다 퇴직했고, 큰 아들은 지역방송국에서 이제 막 메인 뉴스 앵커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둘째이자 막내인 데이비드는 오디오 판매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미국의 중하층 서민 가족의 삶은 평범하고 단순해서 달리 설명할 내용이 없을 정도다. 그들은 오래된 낡은 집에 살고, 마루는 삐그덕거리며, 물이 새고, 비가 오면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닷지나 도요타 차는 녹이 슨 채 굴러가는, 미국의 작은 도시,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도로 옆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목조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이 영화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둘째 아들 데이비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네브라스카 링컨으로 향할 때, 우디 아내가 아들 데이비드에게 전화해서 '호손'에서 하루, 이틀 쉬었다 가라고 말한다. 때마침 '호손'에서 가족 모임을 갖기로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디는 이런 사실이 있기 전에 집을 떠났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격렬하게 '호손'에 가기 싫다고, 가지 않겠다고 했으나 데이비드가 설득해 우디는 수십 년만에 고향 '호손'을 찾는다.
우디의 아내도 시외버스를 타고 호손에 내리고, 친척들도 모여 오랜만에 우디 가족이 모이는데, 수십 년만에 만나는 가족들이지만 데면데면하다. 다만 우디 형의 아내와 우디의 아내 즉 동서들끼리는 이 만남이 퍽 반갑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남자 형제들(우디의 형과 동생)은 덤덤하다. 이들은 거실에 모여 농구 경기나 풋볼 경기를 보며 맥락 없는 대화를 이어가거나,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 몬테나주에서 호손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 같은 하찮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디 아들 데이비드에게 사촌인 이들은 가난한 백인들이고, 실업급여로 겨우 살아가는 하층민이다. 이 영화에는 흑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디는 백인이고, 백인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백인 아내와 오래 살았다. 영화에 백인말고 다른 인종이 나오지 않는 건 감독이 인종차별의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백인 사회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사람이 실제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매우 현실성 있게 보여준다.
데이비드의 사촌들을 보면, '시골뜨기 백인 멍청이'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그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고, 배우려 노력하지도 않으며,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적은 실업급여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동차를 얼마나 빠르게 운전했는가를 자랑하는 정도이고, 작은아버지(우디)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돈을 뜯어내려 가족을 상대로 강도짓까지 하는 멍청한 인물들이다.
우디가 고향 호손에 들렀을 때, 마을에는 우디가 복권에 당첨되어 가까운 도시 '링컨'으로 당첨금을 받으러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연히 우디와 데이비드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디의 형제 가족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신문에서 취재를 오고,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출연 요청을 하지만, 데이비드가 사실대로 말하면서 언론 보도는 막았지만, 가족, 친척들은 여전히 우디가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데이비드는 아버지 우디에게 다시 묻는다. 백만달러 쿠폰이 가짜라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질문에, 우디는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우디의 말에 깊이 공감할 걸로 생각한다. 우디는 자식들에게 그리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는 청년 때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 때문에 PTSD를 앓게 되었으며 알콜중독은 그 결과물이었다. 우디는 당연히 자식들을 사랑했고, 잘 키우려했으나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은 것에 깊은 자책과 후회를 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가족에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알콜중독과 약한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의 마음을 다독인다. 우디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고향에 와서 아버지가 어릴 때 살았던 집을 찾아간다. 우디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집에 가는 게 싫다고는 했어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마지 못해 가는 듯 해도 그의 마음에도 부모를 그리워 하는 마음, 어릴 병으로 죽은 동생 생각, 어릴 때 뛰어 놀던 동네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디의 고향 호손에서 형제와 친척들을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오해가 있었지만 오해도 풀고, 오래 전 쌓였던 마음의 앙금도 조금은 풀거나 그대로 남긴 채 호손을 떠나 링컨에 있는 경품을 발행한 회사로 간다. 당연히 그 가짜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고, 그들은 기념품으로 모자를 받고 나온다. 그렇게 우디의 간절한 꿈은 사라졌지만, 우디 가족은 한바탕 소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가난하지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절하게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하게 살아가고, 세월이 흐르는 걸 문득, 새삼 느낄 뿐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이고 행복이라는 걸 영화는 따뜻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