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매리 프로젝트

by 백건우

헤일매리 프로젝트


'마션'이 철저한 1인극이라면, 이 영화는 2인극이다. 기본 구조만 놓고 보면, '캐스트 어웨이'의 우주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 놀랜드'와 '헤일매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모두 자기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떠밀려 외부로 밀려난다. 이들은 기존 체제(그들이 살던 기존 공간)에서 실패한 인물이며,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주인공은 '비행기 사고(캐스트 어웨이)'와 '우주선 납치'라는 사건을 겪으며 고립된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고, 스스로 죽으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또 다른 낯선 생명체를 발견하고, 가까워진다.

'캐스트 어웨이'에서는 농구공 '윌슨'의 존재로, '헤일매리 프로젝트'에서는 고등한 외계 생물 '록키'로 나타나는 이 낯선 외계 생물은 알고 보면 주인공의 내면을 투사한,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이자, 의식의 현현이며,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존재다.

즉, '캐스트 어웨이'에서 척 놀랜드나 '헤일매리 프로젝트'에서 그레이스는 완벽하게 고립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든 것이다. 주인공은 낯선 존재와 대화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 대화는 모두 자기 혼자 하는 말이고, 그가 듣는 말은 그의 내면에서 만든 메아리다. 사람이 혼자 오래 생활하면, 자기 혼자 말을 하면서 대화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건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본능적인 태도다.

두 영화의 주인공이 혼자 완벽하게 격리된 상황에 내몰리는 걸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으로 보자면, 두 주인공은 정신분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나는 낯선 존재는 자신이 만든 허상이며, 두 사람은 지금 실제 현실(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병동에 갇힌 상황이고, 주인공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완전히 새로운 허구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주인공들이 겪는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두 작품을 보이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캐스트 어웨이'에서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로 해석할 있고, '헤일매리 프로젝트'는 지구를 살리려는 진지한 우주계획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캐스트 어웨이'가 훨씬 사실성, 현실성이 앞서는 반면, '헤일매리 프로젝트'는 원작 소설에서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를 영상으로 제기하기 어려운 한계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우리 지구인이 만나는 수 많은 외계 고등 생명체의 이미지는 'E.T'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외모로 시작해 '컨택트'에서처럼 실물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설득력 있는 외계 생명체까지 다양하다. 이 영화(헤일메리 프로젝트)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는 마치 '게'처럼 생겼고, 몸체는 바위 또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고등 생명체인데,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는 외모를 하고 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진화 환경이 달라서 우리 인간과 같은 외모가 아닌, 전혀 다른 외모로 진화할 거라는 주장은 이해하지만, 진화하는 생물은 진화 초기 상태보다 점차 정교한 외모로 발달하는게 통상적인 과정이라면, '록키'의 그 투박한 외모는 그가 가진 놀라운 지능과 이성에 비하면 형편 없이 투박해서, 록키가 이룬 과학적 성과에 비하면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주인공 그레이스와 '록키'의 관계가 마치 백인과 흑인 즉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설계되었거나, 백인 우월주의(주인공이 백인 남성인 걸 보면)가 제3세계를 대하는 듯한 태도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그레이스와 록키가 대화하는 걸로 보이고, 둘의 우정(연인일 수도 있다)이 인간이 아닌, 낯선 외계 생명체와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지만, 지구에서 만든 우주선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묘사한 반면, '록키'가 타고 온 우주선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디자인했다. 그건 백인(지구인)이 다른 세계를 바라볼 때 갖는 우월감의 다른 표현이며(그게 설령 무의식적인 태도라 해도), 그레이스가 록키를 대하는 태도 또한 마치 어린애 또는 장애인을 대하는 듯한 우월적 지위가 보인다. '록키'가 외부를 인지하는 방식은 '음파'를 통해서인데, 인간은 수정체를 통해 빛과 색을 받아들여 뇌에서 재해석하지만, '록키'는 음파를 즉각 3차원 모델링으로 구성한다.

이 차이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명백하게 '장애'가 있는 걸로 여겨진다. 즉, 평범한 인간처럼 볼 수 없는 존재는 지구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록키'도 분명 말(언어)을 하지만, 그 말을 분석, 재구성하는 기계 장치를 통해 대화를 하는데, 정작 '록키'는 인간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이건 인간(그레이스)이 외계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차별을 드러내며, 그레이스(백인)가 제3세계를 대하는 태도, 백인(서양) 우월주의가 다른 세계와 다른 세계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로 읽힌다. 즉, 그레이스(백인)가 하는 말은 외계인(타인, 제3세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걸 전제하고 있고, 외계인(타인, 제3세계)가 하는 말은 '번역기'를 돌려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낯선 언어라는 점에서, 그레이스(백인)의 태도는 제국이 식민지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이것은 명백히 제국주의의 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 관계인데, 영화는 이런 불편한 둘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다시 그레이스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레이스는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록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걸 알고 그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 '록키'가 사는 별에 도착해서 그는 지구에서처럼 '생물선생'이 되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지 않을래?'라는 록키의 질문에 그는 답하지 않는다. 그건, 그레이스의 내면이 지구에 있든, 록키가 사는 별에 있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오히려 '록키'가 그레이스 자신이 만든 또 하나의 자아라는 점에서, 아무 것도 없는 지구로 돌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록키와 함께 지내는 게 더 편할 수 있어 보인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불편하게 살았던 지구를 포기하고, 그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록키'의 행성에 남기로 한다. 그의 내면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마침내 통합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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