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 : 죄인들과 황혼에서 새벽까지

by 백건우

씨너스 : 죄인들과 황혼에서 새벽까지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것과 '재미'있다는 건 때로 다르게 봐야 한다. '잘' 만든 영화가 '재미'있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는 맞지만,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 영화를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누군가 찾았더니, 내가 감독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뿐, 그가 연출한 영화 절반을 봤다. '히어로' 장르인 '블랙 팬서' 시리즈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을 봤다는 걸 알았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데뷔 작품은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묵직한 리얼리즘 영화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흑인의 처지를 과장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 더욱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두번째 작품도 리얼리즘 영화로 '크리드'는 복서로 성장하는 주인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씨너스:죄인들'을 봤는데, 이 작품은 전작들과 달리 뱀파이어 호러, 공포 영화의 껍데기를 씌운 미국 흑인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씨너스'와 매우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가진 영화가 '황혼에서 새벽까지'인데, 이 영화는 1996년에 개봉했고, 쿠엔틴 타란티노,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함께 만들었다. 두 영화에서 가장 다른 점은 '음악'이다. '황혼에서..'는 음악을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넣었고, '씨너스'에서는 영화의 기본 조건으로 작용한다.

'황혼에서...'는 멕시코의 역사, 멕시코인들이 겪은 학살의 역사, 마야 문명과 유럽 스페인 제국주의의 침탈과 학살,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몰살당한 역사를 뱀파이어 메타포로 그렸고, '씨너스'는 아프리카 아메리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흑인의 영화'다. 미국 대륙에 사는 흑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쉬운 내용이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이지만, 미국에 사는 흑인이 아닌, 다른 인종,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많은 정보를 찾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자체만 보면 단순하다. 193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 델타 지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영화에서 음악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주제다. 영화의 외형은 '뱀파이어물'이지만, 실제 내용은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다룬다.

시카고에서 돌아온 쌍동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은 백인이 소유한 농장을 매입해 클럽으로 개조한다. 형제의 이름이 '스모크'와 '스택'이라는 것도 상징이다. '스모크스택(smokestack)'은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굴뚝' 즉 전통적인 제조업 공장을 의미한다. 쌍동이 형제가 남부 미시시피를 떠나 북부 시카고에서 돈을 벌어왔다는 건, 농업 중심의 남부가 아닌, 공업, 제조업 중심의 북부 즉, 자본주의가 더 발달한 북부에서 왔다는 걸 상징하며, 이는 '남북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군이 남군에게 승리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북전쟁' 때도 많은 흑인들이 북군으로 참전했으며, 노예해방 선언 이후에도 남부에 살던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남부는 흑인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자 노동력이 부족했고, 이를 해결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흑인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다. 전과자는 강제노역을 시킬 수 있다는 법이 있어 흑인들을 무차별로 체포해 감옥에 가뒀다가 전과자로 만들어 다시 목화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흑인들은 집단으로 남부를 탈출하기 시작했고, 쌍동이 형제 역시 그런 흑인들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이 시카고에서 큰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온 건,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 쌍동이 형제는 시카고의 유명한 마피아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한 걸로 슬쩍 드러난다.

쌍동이 형제가 고향으로 돌아온 시기는, 미국에서 '검은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1929년 경제대공황이 살짝 지난 시기다. 쌍동이 형제가 시카고에서 활동한 시기는 정확히 '금주법' 시기와 일치하고, 알 카포네가 시카고 범죄 조직을 장악하는 시기와도 같다. 금주법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이어졌으며, 알 카포네는 1926에 조직의 두목이 되었다.

알 카포네가 시카고 마피아 두목이 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 마피아와 살육전을 펼치는데, 이탈리아인과 아일랜드인 마피아는 백인이고, 쌍동이 형제는 흑인이라는 점에서, 흑인인 쌍동이 형제가 백인들(이탈리아인) 밑에서 백인들(아일랜드인)을 살해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인다. 이때 '아일랜드인'은 영화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모크'와 '스택'은 클럽에서 연주할 연주자를 찾으러 다닌다. 당연히 흑인 음악인 블루스 연주자들인데, 쌍동이 형제의 동네 동생인 새미가 합류하면서,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서사 구조를 갖는다. 쌍동이 형제가 운영하는 클럽이 문을 여는 날, 동네 흑인들이 몰려와 멋진 블루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장면까지와 연주자 가운데 가장 어린 '새미'의 음악이 악마(여기서는 뱀파이어)를 깨어나게 할 정도로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이었고, 새미는 목사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아들 새미가 절대 블루스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새미와 새미의 아버지는 '부자지간'이지만, 여기서는 아버지(목사) 즉 신의 대리인이자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새미는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지만, 그가 연주하는 음악인 블루스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악'이다. 즉, '악'으로 규정하는 블루스 음악에 빠진 아들을 구원해야 하는 역할이다.

새미는 블루스 음악에 목숨을 걸었고, 아무리 아버지(이자 목사이며 신의 대리인)가 말려도 자기가 좋아하고, 운명으로 생각하는 블루스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새미가 마침 시카고에서 돌아온 동네 쌍동이 형들인 '스모크'와 '스택'을 만나고, 이들에게 기타를 선물받는다. 이 기타가 찰리 패튼이 연주하던 기타라고 하자, 새미는 화들짝 놀라는데, 찰리 패튼은 당시 구전으로 이어지던 블루스를 녹음해 음반으로 만든 최초의 블루스 연주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찰리 패튼은 1934년에 사망했으니, 이 영화 배경에서는 생존 인물이다.

새미는 스택이 운전하는 차에서 기타를 치며 연주하는데, 새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스택은 '오, 우리 돈 좀 벌겠는걸'하고 감탄하는 장면에서, 새미가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새미가 클럽에서 연주하는 음악, 즉 블루스는 시대를 뛰어 넘는 음악으로 묘사된다. 현대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팝, 락, 메탈, 힙합, 재즈 등)의 뿌리는 블루스에 있으며, 이는 흑인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미가 블루스를 연주하는 장면에 이어, 조금 뜬금없어 보이지만, 다른 장소에서 백인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이건 새미의 블루스 연주가 뱀파이어를 깨운 걸로 보인다. 클럽을 찾아오는 백인도 처음에는 아일랜드인들이다. 이들은 아일랜드 민요를 연주하면서, 클럽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쌍동이 형제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 장면, 백인이 흑인의 영역으로 들어오려 하는 장면은 역사적으로 백인이 흑인을 아프리카에서 납치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온 참혹한 역사를 상징한다.

아일랜드인의 역사도 백인의 역사에서는 2등 민족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민족이지만, 그들이 아메리카로 이민와서 아일랜드 음악은 미국 음악에서 중요한 갈래로 발전한다. 백인들이 부르던 음악이 '컨트리 음악'이고, 이 음악의 기원이 아일랜드 민요에서 왔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컨트리 음악과 블루스 음악은 미국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이처럼, 영화는 뱀파이어물의 형식을 띄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건 음악이다. 흑인 음악인 블루스의 강력한 연주와 아일랜드 민요의 서정적인 음율이 겹치고, 여기에 백인우월주의자 KKK가 등장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서사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영화는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 장면을 만든다.

블루스 음악의 전통을 살리면서,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이제 막 블루스 음악이 하나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블루스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함께 엮어낸 영화는 잘 만들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이며, 미국 대중음악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도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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