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우리(한국인)는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본다. '서울의 봄'도 결말을 알지만, 1천만 명 넘게 봤고, 이 영화도 그렇다. 결말을 알면 싱겁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영화에 더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종'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서 반가웠다.
영화의 배경은 철저하게 지배계급 사이에서 발생한 권력 투쟁이지만,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단종'의 이야기와 유배지 마을에 사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결합하면서, 이 영화는 패배한 지배자 '단종'의 이야기에서, 권력까지 끌어안는 민중의 무한한 포용성과 낙관성 그리고 결코 권력에 패하지 않는 민중의 혁명적 낙관성을 그리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에 참여했고, 자신이 감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자신의 시나리오 내용을 제작자에게 말하자, 제작자가 '당신이 연출하면 좋겠다'고 해서 결국 메가폰을 잡았는데, 장항준 감독이 고친 시나리오는 곧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었고,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 작품으로 많은 관객이 공감했다.
장항준 감독은 평소 텔레비전 방송이나 유튜브에 출연해서도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언뜻 가벼워 보이는 언행처럼 보이지만, 장항준 감독은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가벼운 사람은 아닌 걸로 보였다. 그는 '민중성'이니 '혁명적 낙관성'이나 하는 단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만,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말 그대로 '민중성'이 충만하다.
폐위되어 유배를 왔지만 '왕'이었던 '단종'과 마을 주민들이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장면은 다른 감독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내용이라고 본다. '민중'은 지배계급에게 지배당하고, 피지배계급으로 늘 수탈의 대상이었지만, 역사에서 지배계급은 언제나 강력한 권력으로 '민중'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중(피지배계급)은 단 한 번도 권력에 패하거나, 굴종한 적이 없다. '민중'은 개별적 개인으로는 배우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나약한 존재가 분명하지만, '민중'이라는 역사적 존재로 보면, 권력이라는 배를 싣고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서, 권력이 오만방자하면 강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
많은 경우, 조선시대에 왕의 권력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민중'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권력 투쟁은 왕과 왕족, 왕을 둘러싼 양반 세력 사이의 투쟁이었으며, '왕'이 바뀐다고 민중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선은 봉건왕조라는 변함 없는 권력구조를 유지했다.
영화에서 '단종'은 왕에서 쫓겨나 폐위된 채 유배를 당하는데, 그는 '왕'이긴 해도 여전히 열두 살의 어린이였으며, 아버지 '문종'과 어머니 '현덕왕후'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릴 때부터 외롭게 자랐다. '왕'이라해도 인간적으로 안쓰럽고 애틋한 존재였다.
여기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권력을 찬탈당하고, 죽음을 예고하는 유배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어린 '단종'은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때, 유배지 근처 마을 광천골에 사는 촌장과 주민들이 '단종'과 인연을 맺고, 단종은 태어나 처음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경험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단종'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마을 주민들과 어떤 유대 관계를 맺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장항준 감독은 이 역사의 공백을 '낙천적 민중성'이라는 세계관으로 채웠다. 나는 특히 장항준 감독이 보여주는 '낙천적 민중성'이 우리가 한때 열렬하게 학습했던 70년대, 80년대 반독재투쟁과 노동운동에서 발현되었던 '혁명적 낙관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항준 감독은 이런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80년대 헌신적인 노동운동, 학생운동, 빈민운동, 농민운동을 했던 분들이 가진 태도가 장항준 감독에게서도 느껴졌다.
우리(대한민국) 역사는 돌이켜보면 민중이 늘 패배하고, 지배당하는 듯 보이는 역사지만, 사실은 민중이 승리한 역사다. 임진왜란 때도 왕(선조 개개끼)과 양반들, 지배계급이 한양을 버리고 떠날 때, 민중(농민을 비롯한 승려까지)이 스스로 일어나 일본군과 싸웠고, 마침내 승리했다.
'한국전쟁' 때도 이승만은 방송 녹음을 해 놓고 먼저 서울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렇게 지배계급은 역사에서 늘 비겁하고, 야비하며, 악랄하지만, 민중은 지배계급의 폭력에 뭇매를 맞는 듯 해도, 마침내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선다. 그건 '민중'이 곧 '역사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단종'을 지키는 엄흥도는 권력투쟁에서 패한 '왕'이었던 '단종'을 애처럽게 여긴다. 그건 단종이 어려서이기도 하고, 그가 '패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당한 권력투쟁이 아닌, 쿠데타를 일으킨 숙부에게 쫓겨났으니 '패배자'이면서 '피해자'인 단종이 안쓰러운 존재인 건 사실이었다. 엄흥도와 마을 주민들은 고아인 단종의 처지를 공감한다. '단종'의 처지는 이제 계급이 사라진, 가여운 소년으로 돌아가고, 마을주민은 그 '가엾은 고아 소년'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이 된다.
'단종'은 죽음을 앞두었으나 마을 어린이에게 글을 가르치고, 마을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단종에게 바친다. 그 음식 한 가지, 한 가지가 힘든 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권력자와 민중이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세조'의 권력이 서슬 퍼렇게 단종을 죽이려 들고, 한명회가 사람 목숨을 파리 보다 가볍게 여기는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을 보살피는 광천골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도 면면히 흐르는 공동체 정신이며, 약한 자를 보살피는 긍휼의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