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 일본영화

by 백건우

복수는 나의 것 - 일본영화


세계 유명 감독들이 이 영화를 극찬하고 좋아하는가를 충분히 공감한다. 하드보일드 영화의 진면목을 보이는 영화이며,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깊이가 남다른 영화다. '하드보일드' 영화는 대체로 범죄를 소재로 만든 영화에서 많이 보이고, 폭력적이고 비정한 현실을 그릴 때, 감정을 배제하면서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말한다.

'하드보일드' 영화는 이전에 이미 '하드보일드'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헐리우드 영화가 막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바뀌던 시기(1927년 무렵)에 같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탄생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한 '하드보일드' 소설의 원조, 캐롤 존 댈리가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창조했고, 이후 대실 해미트, 레이먼드 챈들러, 앨모어 레너드 같은 작가들이 미국 문학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하드보일드 영화로는 '제3의 사나이', 'LA컨피덴셜', '밀러스 크로싱' 같은 영화가 있는데, '제3의 사나이'는 그레이엄 그린이 시나리오를 썼고, 'LA컨피덴셜'은 제임스 엘로이 원작 소설이었으며, '밀러스 크로싱' 역시 '대실 해밋' 원작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하드보일드 영화 또는 '누아르' 영화들은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걸로 봐도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닐 걸로 본다.

이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역시 사키 류조가 쓴 같은 이름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특히 원작 소설이 팩션이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써서 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사실성, 현실성을 부각하고 있어 영화도 자연스럽게 하드보일드 형식을 띄게 된 걸로 보인다.

범죄의 냉혹함을 드러내려는 방법으로 하드보일드 기법을 적용하는건 자연스럽다.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는, 범죄자도 범행을 저지를 때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그렇다고 범죄에 '인간성'을 부여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즉, 범죄자도 흥분하고, 두려워하며, 망설이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싸이코패스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싸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향'을 태어날 때부터 가졌거나, 성장 과정에서 감정이 거세되는 경험을 한 사람을 뜻한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이해하려 하거나, 그 배경을 납득하도록 만드는 건 결국 범죄자의 세계관에 포섭 당하는 걸 의미한다. 예외는 있다. '장발장'이 그렇고, '초코파이' 한두 개를 먹었다고 범죄자로 고발당한 노동자의 경우가 그렇다. 굶주리다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고, 참을 수 없어 음식을 도둑질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서사를 부여하지 말아야 할 범죄자는 연쇄살인자, 싸이코패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을 말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노키즈는 인간성이 휘발되어 사라진, 마치 사람의 모습이 껍데기만 남아 감정은 없고 행위만 남아서 기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하고, 감정이 없으니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진, 살아 있는 미라처럼 보인다.

에노키즈의 실제 인물인 니시구치 아키라의 삶과 영화 속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완벽하게 일치하는 느낌이 드는 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연출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과 영화 속 시대, 인물은 같은 시대다. 즉, 실재 인물인 '니시구치 아키라'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20년대에 태어났다. 니시구치 아키라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가 자라던 어린시절, 청소년 시기가 20년대에서 30년대로 일본 군국주의가 폭발하던 때였다. 니시구치 아키라는 일본에서는 드물게 '가톨릭' 집안이었고, 아버지가 배를 여러 척 가진 선주로 잘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에 아버지가 배를 뺐기는 장면을 보면서 니시구치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묘사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도 니시구치 아키라와 같은 시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보고, 경험했기에 니시구치가 벌인 범죄의 이면 또는 내면에 군국주의의 망령이 스며들었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자 했다. 이 영화가 세계영화사에서 관객보다는 주로 감독들에게 더 높이 평가되고, 회자되는 이유 역시 연출의 힘이 탁월하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영화는 에노키즈가 체포되어 압송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범죄자가 체포되는 장면이 처음부터 나오는 장치도 신선하고, 이 장면에서 범죄자 에노키즈의 인간성, 성격, 태도를 드러내면서, 이후에 나오는 에노키즈의 범죄 행위에 대한 의문을 이해하는 키노트로 작용하는 영리한 장치다.

군국주의 시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인 니시구치 아키라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폐허가 된 나라에서 서서히 발전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주인공 '에노키즈'는 어릴 때 아버지가 보인 비굴한 태도와 군국주의의 폭력으로 그의 자아는 왜곡되기 시작했으며, 그의 내면에는 분노의 뿌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에노키즈가 저지르는 폭력의 내면에는 '분노'라는 자양분이 있는데, 이때 '분노'는 에노키즈 자신도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즉, 에노키즈는 어릴 때 봤던 아버지의 폭력성과 비굴함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아버지의 배를 뺐는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에노키즈는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고, 군국주의 일본 국가를 상대로 분노를 발산하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이런 외부의 영향으로 에노키즈가 반사회적 인물이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에노키즈와 같은 세대는 대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았는데 유독 에노키즈는 연쇄살인범이 되었다는 건, 단지 외부의 영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후 일본은 무려 7년 동안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일본은 군국주의가 해체되면서 미국 문화를 숭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맥아더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 천황제를 존속시키도록 결정하고, 일본인들은 천황보다 맥아더를 더 우러러볼 정도로 숭배의 대상을 '더 강한 대상', '더 권력이 큰 대상'을 향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공교롭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화 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부를 쌓기 시작한다. 또한 미국의 하청 공장으로 시작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본인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이 사건이 벌어지던 1963년에서 1964년 초는 일본이 국가 단위로 힘을 쏟아붓던 '1964 도쿄올림픽'이 눈앞에 있던 시기였다.

일본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는 거대한 행사(올림픽)를 앞두고, 사회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드는 연쇄살인범을 반드시 잡아야 했고, 나라 전체가 '에노키즈'를 잡으려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거리마다 수배 전단지가 붙었고, 여관이나 빠친코 등에도 에노키즈의 범죄를 알리는 수배 전단지가 전달되었다.

이런 상황에도 '에노키즈'는 변장을 하면서 살인은 물론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기를 치며 다녔다. 에노키즈는 대학교수, 변호사 같은 엘리트 흉내를 내며 다녔는데, 그가 최초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이미 사기범으로 감옥에 몇 년 갇혔던 사실을 보면, 그는 사기 즉 남을 속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려는 의도를 보였다.


영화로 돌아가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앞뒤로 뛰어 넘는다. 관객은 혼란스럽지만, 현재와 과거가 혼재된 상태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앞뒤 맥락이 사라진 에노키즈의 살인 행위가 결국 맥락 없는 행위라는 걸 보여준다.

이미 사기 범죄로 교도소에서 몇 년 갇혀 있다 나온 에노키즈는 돈을 노리고 살인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돈과 여성은 매우 중요한 매개이자 수단이자 목적이다. 에노키즈가 신분을 위장하고 떠돌면서도 돈에 집착하고, 여성에 집착하는 건 그의 내면에서 숨길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에노키즈는 여러 여성을 만나고, 한동안 살기도 하고, 연인 사이가 되기도 하는데, 에노키즈가 잡히기 얼마 전 살해한 여관의 모녀를 제외하면, 그동안 줄곧 남자만 살해했을 뿐, 여자는 살해하지 않았던 건 의아하다. 이유를 만들자면, 그가 만난 여자들이 큰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큰 돈을 뺐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던 걸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관에서 만난 모녀는 왜 살해했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전, 에노키즈의 부모와 아내(카즈코)를 살펴봐야 한다. 에노키즈가 사기죄로 감옥에 가자,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 멀리 온천에서 일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에노키즈의 아버지, 카즈코의 시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여관을 운영한다. 그는 아들 에노키즈가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직전, 며느리 카즈코를 찾아가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읍소한다.

카즈코는 처음에 싫다고 하지만, 마음을 바꿔 시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에서 노천탕에 시아버지와 며느리 두 사람이 나신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이르는데, 이 장면은 이후 에노키즈의 어머니를 통해 에노키즈에게 전달되고, 카즈코와 시아버지, 시아버지와 친분 있는 기차 역장의 비틀린 관계가 드러나면서, 오히려 에노키즈에게 정당한 명분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여관을 운영하는 모녀를 살해할 때, 에노키즈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어쩌면 그의 아내 카즈코와 그의 부모가 아니었을까. 에노키즈는 사람을 여럿 살해하지만 정작 자기 부모나 아내, 자식에게는 멀리 떨어졌다. 그건 가족에게는 물리적 폭력을 휘두를 수 없는 그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에게로 향하는 분노가 외부인, 타인에게 전이되면서, 남자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살해하고, 여자들은 아내를 대신해 살해하는 중의적 살인 행위로 이어진 건 아닐까 생각한다. 에노키즈는 아버지와 아내의 관계를 의심하고, 두 사람을 비난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기차 역장에게 아내와 동침하라는 말을 했고,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한 걸 알게 되면서, 에노키즈는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폭발하지만 정작 기차 역장을 찾아가서는 돈을 달라고 협박한다. 에노키즈의 이중성은 그 자신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여관의 모녀와 함께 지내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고 또 이 장면이 여러 의미로 중요하다. 에노키즈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물론, 거리마다 수배 전단지가 붙어 있어 그가 머무는 곳에서는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여관의 모녀도 결국 에노키즈가 연쇄살인범인 걸 알게 되는데, 모녀는 에노키즈를 여관에 머물도록 배려한다.

뿐만 아니라, 여관 주인 '하루'는 기둥서방이 있지만, 에노키즈를 좋아하게 된다. 에노키즈가 살인을 저지르며 돌아다니고, 하루의 엄마가 '우리도 다 죽일 거야'라고 말해도 에노키즈와 함께 멀리 떠나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에노키즈와 여관 모녀의 관계는 에노키즈에게는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대신하는 유사 가족 관계다. 세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또 한편 사랑하지만, 그 관계가 곧 파탄날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불행한 결말을 알면서도 집착하게 되는 기괴한 심리가 비틀린 욕망의 발현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에노키즈는 자신의 미래처럼 희망도 없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모녀를 죽이는 것이 오히려 자비를 베푸는 거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관 주인 '하루'는 늘 기둥서방에게 당하기만 하고, 여관에 묶여 자신의 젊음을 소모하고 있으며, 그의 어머니는 이미 살인한 죄로 15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나왔다. 희망도, 행복도 보이지 않는 모녀의 처지와 에노키즈 자신의 처지를 같은 상태로 보고 모녀를 살해한 직후 체포된다.

체포되는 장면은 영화 시작이지만, 에노키즈가 보이는 태도를 보면, 그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모녀를 살해하는 것도,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녀가 자기를 경찰에 신고할 걸 두려워서 살해했을 거라는 단순한 이유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에노키즈가 자기 행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걸 보면, 그는 몹시 뻔뻔한 살인자이거나, 감정이 메마른 냉혈한이다.


영화에서 에노키즈가 도망다니는 와중에도 많은 여성을 만나 관계를 갖는 장면이 나온다. 의외로 여성과의 관계, 성적인 장면 묘사가 많은데, 에노키즈와 성적 욕망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적 욕망은 대개 비틀린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에노키즈가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유부녀들이고, 쫓기는 상황에서도 여자를 포기하지 못한다.

에노키즈가 여성에 집착하고,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심리에서 왔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도이면서, 자신이 품은 욕망을 발산하지 못한 채 내면에 가두고 살아간다. 그가 며느리인 카즈코를 생각하고 대하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욕망이 결코 정상이 아닌 걸 알 수 있는데, 에노키즈는 이런 아버지와 아내의 관계를 눈치 챘고, 이후 에노키즈는 살인으로 폭주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성적 욕망들은 여관 모녀에서 어머니 쪽이, 여관으로 와서 매춘하는 남녀를 훔쳐보는 장면이라던가, 에노키즈 아버지와 아내의 관계, 여관주인 '하루'의 기둥서방과 애인의 존재 같은 타락한 성적 욕망의 존재들이 결코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이런 비틀린 성적 욕망의 발현이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이유는, 일본은 섬에 갇힌 - 그것은 곧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 존재론적 형벌을 받는 민족이면서, 그들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을 통해 아시아 나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마침내 더 큰 폭력 앞에 처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피학적 민족이 갖는 비참하지만 마땅한 결과라는 걸 말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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