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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Dec 08. 2015

안철수 의원께

취중진담을 말하다

안철수 의원께


날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언론의 포화상태가 이제는 도를 넘어서고 있고, 그로 인해 여론도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안철수 의원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안철수 의원께 한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알던 예전의 안철수 대표와 지금의 안철수 의원은 사뭇 다른 사람입니다. 물론 예전과 지금의 역할, 입지, 철학 등이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됨'입니다. 그 사람의 ‘기본'과 ‘철학'이 바뀌게 되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안철수 의원의 중심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흔들리지 않고 있다면, 언론이 아무리 찧고까불어도 걱정이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예전의 그 담담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안철수 의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휴간을 결정한 컴퓨터 잡지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했던 한 워크샵에서였죠. 1박2일의 그 행사에는 당시 유명한 프로그래머들이 대부분 참석했고, 저는 프로그래머는 아니었지만, 그 잡지의 부록을 기획하고 글을 쓰던 입장이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의 앞자리에서 안철수 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뒤로 안철수 님이 ‘안철수연구소'를 세우고, 본격 IT사업을 시작한 1999년에 저도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안철수 님과 창업 멤머 가운데 저와 친분이 있었던 분들의 도움이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의 안철수와 지금의 안철수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변하는 것 자체는 필연이지만, 어떻게 변하는가는 상당부분 개인의 의지가 반영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재직하던 1999년부터 2005년까지는 회사도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고, 직원들도 20, 30명 정도에서 400명이 넘어가는 중견기업으로 매우 빠르게 커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다른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컸고, ‘안철수연구소', ‘안랩'에서 일한다는 것에 긍지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직원들 뿐 아니라 ‘안랩'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시선 또한 그러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당시 코스닥 열풍이 불면서, ‘안철수연구소'가 코스닥 상장만 하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다들 떠들어 대던 때에도,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안철수 대표님의 발언으로 사람들은 더욱 놀라면서 안철수 대표님을 존경하게 되었구요.

안철수 대표님은 대외 활동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회사 안에서 스스럼 없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도 같이 먹는 소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본가니, 경영자니 하는 그런 살벌한 단어가 아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한 사람의 개발자로서, 한국 컴퓨터 업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일정부분 희생한 의학도로서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안철수 대표님의 진심과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제가 회사에서 퇴직한 이후, 오히려 회사 내부의 사정을 직원일 때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저는 안철수 대표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의 장막'이 안철수 대표님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증거를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퇴직하는 과정에서 직접 겪었던 일과, 그 이후에 가까운 벗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안철수 대표님의 이미지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이긴 해도, 실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맛는 말만을 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폭군 아래 간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간신들 때문에 폭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간신들과 폭군이 서로 교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날, 안철수 의원이 정치 입문 당시의 그 깨끗하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간철수', ‘강철수' 같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참담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단지 반대파들의 마타도어 뿐일까요?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라에 중요한 사건들이 터졌을 때, 그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거나 행동한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었고, 지금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반민주, 반인권, 반노동의 상황에서도 어떠한 반대 주장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가라면, 그것도 대통령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정치가라면 현재 대두되고 있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과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 사건도 그렇고, 매번 광화문과 시청에서 열리는 민중집회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리가 여당도 아니고, 야당의 자리이며, 현재 정권이 인민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몰아가고 있음에도 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내부의 권력투쟁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고통 받는 인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해결할께'라는 생각이라면 그것이 예전에 박근혜가 말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김장 담그기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나 먹고 오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면, 예전의 썩어빠진 정치가들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고, 안철수 의원 개인이나 한국정치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겁니다.

문재인 대표와의 권력투쟁은 안철수 의원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백의종군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필요한 방법이고, 무엇보다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전국을 돌면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많은 사람들, 노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농어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만나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싸움을 멈추고, 혈혈단신으로 ‘하방'하시기를 권합니다. 튼튼한 신발을 신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걸어서 이 나라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보시길 권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 나라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바꿔야 하는지 진심으로 배우시길 권합니다.

기존의 정치가들이 보여주는 편협하고 이기적이고 모리배 같은 모습들은 우리가 바라는 정치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끼리끼리 담합하고, 자신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고,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정권과 국회의원들이 바로 이 나라를 망치는 주범들입니다.

그런 곳에서 뛰쳐나와 오히려 거친 광야에서 외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가의 철학은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거리에서, 시장에서, 노동현장에서, 시골의 논밭에서, 어촌의 바닷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안철수 의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만,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나마 남은 잔불 같은 애정도 거둬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가 아니라 ‘인민'에게 중요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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