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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an 04. 2016

종교의 정체 또는 본질

취중진담을 말하다

종교의 정체 또는 본질


사실, 종교의 정체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수 백 개의 나라와 인종, 민족은 다르지만 종교는 그런 경계를 허무로 어디든 스며들어 적시는 물과 같다. 현대까지 살아남은 종교는 대체로 기독교(구교, 신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불교와 힌두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믿고 있으니, 지금부터 하는 말의 주된 대상은 '기독교'가 될 것이다.


기독교도가 가장 난감한 부분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다. 분명 같은 종교에서 비롯한 '성서'라고 말하지만, 두 책의 내용은 도저히 하나의 종교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하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자라고 해도 '구약'이나 '신약'을 다 읽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경전조차도 다 읽지 않는 것은 물론, 읽어도 그 뜻을 모르면서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인을 보면, 멍청하고 한심한 생각과 더불어 불쌍한 생각까지 든다.


'구약'에 등장하는 신은 분노와 폭력의 신이다.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은 '하지 마라!'라는 명령이다. 무언가를 하면 신이 노여워하고, 그 대가로 벌을 받거나 추방당하거나 자손이 끊기거나, 악마에게 이용당한다는 말 뿐이다.

이걸 오로지 '신'이라는 절대자의 명령으로만 보면, 그 사람은 중세 이전에 사는 사람과 똑같은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구약'은 2천년 전에 살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과 계율들이었다. 당시 지도자들에게 인민들은 말할 수 없이 멍청하고 무지하며 답답한 족속들이었다. 

이미 종교가 발생하고 제사장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인 인민들을 자신들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다뤄야 할 필요를 느꼈고, 당시 수준으로는 공포와 억압, 처벌, 협박 등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온갖 자연현상들은 무지한 인민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그것은 곧 '신'의 분노로 표현되었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풍년이 들면 신의 축복이라고 했고, 자식이 태어나거나 결혼을 하는 것도 축복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저주와 분노와 공포가 있어야만 했다.

'구약'에서 말하는 '십계명'이라는 걸 보면, 그것이 '신'의 목소리인지, 지배자의 목소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계명의 대부분은 지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규범에 불과하다. 현대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이런 내용이 당시에는 석판에서 새겨서 가르쳐야 할 만큼, 당시의 도덕규범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더 웃기는 내용은,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돌판에 새겨 내려온 당시에도 이미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니,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가를 말해 준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모두 상징적인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창작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우리는 글자로 씌어진 내용이 아닌, 그 글이 상징하는 진짜 사건이 무엇인가를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군 신화'의 경우, 기독교의 '구약'과 좋은 비교 자료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단군 신화'를 그저 하나의 '신화'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된 이후, 농경민족이 살아왔던 과정을 압축한 것으로, '단군 신화' 안에는 5천 년 전 당시의 세력 분포-호랑이족과 곰족-와 이들의 결합, 농사를 짓기 위한 자연 환경의 필요성과 다양한 직업의 생성 등이 비교적 잘 전달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30년대에 경제학자 백남운에 의해 '조선사회사상사'에서 밝힌 내용으로, 신화를 유물론의 시각으로 분석하면 더 이상 '신화'라는 애매한 관념적 상상은 사라지고, 인류가 살았던 과정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신약'에는 예수가 등장한다. '신약' 역시 예수라는 인물이 살았던 시기에서 이미 수 십년에서 수 백년의 시간을 두고 쓴 편지글을 나중에 종교지도자, 즉 지배계급이 모여 재편집한 내용이므로 당연히 창작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신은 '인격신'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창세기'에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반대로 읽으면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신'을 창조했다는 말과 똑같다.

'인격신'은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에 활발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유일신의 근원은 '태양숭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오로지 '기독교신자'들만 자신들이 믿는 신이 유일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시타인이 말했듯,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이성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이고 확장하면서, 더 이상 고루한 '인격신'의 존재는 필요 없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모든 종교가 과학의 성과를 인정하고, 과학에 수렴할수록, 즉 '인격신'이 아닌, 진정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할수록 원시적 종교가 주는 어리석음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을 이성을 갖고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진보를 받아들이고, 인간이 만든 길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과거의 인류는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비이성적이었다. 그리고 비이성적인 행동은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무수한 전쟁과 살육을 보라. 인간은 종교가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하루도 끊이지 않는 분쟁과 학살의 근원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종교를 버리는 것만이 인류의 평화를 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인종차별, 학살, 종교분쟁, 사기, 편견 등이 인류 전체의 범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고, 과거로 퇴행하려는 악의적인 행위임을 종교인들은 알아야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선량한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으로 선량함을 지키는 것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그렇게 행동한다. 오히려 종교의 외피를 쓰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인류에게는 해악인 것이다.


인격신의 존재가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가를 알려면, 우주를 보라. 빛의 속도로 300억년을 가도 끝이 닿지 않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작고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신이 믿는 그 신이 300억년이 넘는 우주를 만들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처음부터 없었고, 인간이 만들었으며, 그렇게 만든 신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의 합리적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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