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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an 14. 2016

정치를 소비하는 천박한 사회

취중진담을 말하다

정치를 소비하는 천박한 사회


SNS의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많은 글들이 정치 또는 정치인 또는 정당에 관한 내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자유이므로 그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정치’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삼성전자의 백혈병 노동자,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 1천만명이 넘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실태, 고령화 사회의 문제, 한국 농업의 근본적 문제, 환경과 재생에너지 문제, 교육, 복지 등 중요한 화두들이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왜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 관해 끊임없이 관심을  쏟아야 하고, 그것을 소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무릇, 정치는 물 흐르듯 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란, 인민이 정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하는 자들이, 나라의 운영을 매끄럽고 또렷하게 한다면, 인민은 나라의 운영을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생업과 문화, 예술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이것이 바람직한 나라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인민이 정당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이미 썩어가는 나라다. 지금 우리가 급하게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긴급한 핵발전소의 폐기문제와 하루 세끼 먹거리의 재료들의 오염 문제들이 되어야 할텐데, 정작 중요한 사안들은 잊혀지고, 정치가와 정당의 시시콜콜한 내용들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은, 지배계급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도구인 언론의 행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이 만들어가는 프레임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지식이나 배움 정도, 부와 명예의 수준을 떠나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어리석은 인민들은, 지배계급이 만든 논리에 쉽게 함몰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는 관계 없이, 지배계급을 위해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일수록 그 경향이 강하고,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지배이데올로기의 마타도어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정확하게 반대하지 않거나, 애매하게 대응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투항해 돈과 권력을 확보하려는 자발적 노예같은 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국가, 또는 집단에서 정의롭고 비판적인 지식인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현상이다. 지금 한국사회가 바로 그렇고, 그래서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투항한 지식인들의 역겨운 행동을 비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은, 지배계급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공동체, 협동조합, 기본소득의 지급, 복지의 확대와 같은 공공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와 정당, 정치인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드라마, 먹방 따위의 너절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스로의 인격과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것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고, 세월호 참사와 일제 성노예 할머니들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발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고, 우리가 올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에 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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