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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속초, 강릉

by 백건우

신흥사, 속초, 강릉


우리 올드보이는 모처럼 속초로 가서 회 한 접시를 먹기로 하고 집에서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양평에서 속초까지는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데, 가는 길에 설악산이 있어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미시령 터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울산바위가 우뚝 서 있지만, 오늘은 구름이 많이 드리워서 산의 윗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속초에서 설악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호젓한 산길을 올라가면 설악산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비는 무조건 5천원. 꽤 비싸다. 여기에 입장료는 따로 받는다. 주차료가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주차를 하고, 다시 입장권을 사야만 설악산으로 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오늘 산에 갈 준비를 하지 않아서 설악산 입구에 있는 신흥사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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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도 오랜만에 오지만, 신흥사 입구에 이렇게 거대한 문이 생겼다. 이 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아니고, 절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건물이 웅장하고 거대할수록 절의 권위가 커진다는 발상은 지극히 '반종교적'이고 '반불교적'이다.

신흥사는 설악산 일대에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 속된 말로 재벌 사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주차료 수입도, 입장료 수입도 신흥사에서 많은 부분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여기서 번 돈을 신흥사가 다 갖지는 않을 것이다. 조계종 종단으로도 꽤 많이 올라가고, 좋은 일도 많이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은 오히려 절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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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올라가면 신흥사의 진짜 일주문이 나온다. '설악산 신흥사' 현판이 또렷하다.

이 절은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이 한번씩을 들러 가는 곳이어서 국내외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들기도 한다. 우리가 가던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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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한 지 오래지 않은 거대한 좌불. 무엇이든 크고 거대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꼭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중국이든 아시아의 여러 불교국가든 거대한 불상을 만들어 모시는 경우는 종종 있으니 이걸 가지고 탓하는 건 좀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거대 불상이 뭇 대중에게는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인식되고, 불교를 아끼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 하다. 거대한 불상만큼 불심도 그렇게 거대하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세속적인 판단이요, 욕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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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앞 계곡은 넓다. 마침 엊그제 비가 내려 물도 많고 깨끗하다. 이곳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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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한여름 더위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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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옆에 있는 커피점에서 커피 한 잔. 신흥사 입구에 커피점이 있다. 건물도 기와로 지었고,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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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천왕이 있다. 신흥사의 사천왕은 멋진 건물 안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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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무서우면서도 귀여운 사천왕은 죄없는 사람에게는 귀여운 존재지만,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는 지옥의 어떤 악귀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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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복장과 모자를 쓰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사천왕을 바라보고 절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교에서 부처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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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지나면 가로로 길고 바닥에서 낮게 떠 있는 목조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 안에는 불경의 목판본이 들어 있다.

통로의 높이가 낮은 건 자연스럽게 고개와 허리를 숙이라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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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면 정면으로 대웅보전 즉 사찰의 핵심 건물인 부처님이 모셔진 건물이 보인다.

부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하라는 것을 건축물을 통해 구현한 것이니, 꽤 근사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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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는 보통 탑이 있는데, 이 절에는 당간지주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또한 탑이 아닌 석등이 서 있는데, 이 석등이 꽤 화려하다. 대웅전의 사뿐한 처마와 함께 석등의 살짝 올라간 연잎의 모양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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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창살 무늬. 화려한 듯, 수수한 듯 그 모양과 색이 더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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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 시기에 민중들이 믿고 있던 전통 신앙을 수용했고, 그 결과가 산신을 모시는 신전을 사찰 안에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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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명부전 역시 전통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죽은 사람을 모시는 것은 어찌보면 불교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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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등지고 바라본 풍경. 석등의 비례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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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의 목판본을 보존하고 있는 이 건물이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없애고, 공기가 잘 순환해 목판본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조들의 지혜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해서는 퍽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로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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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설계도 그렇지만, 건축물의 디자인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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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면 1년씩 젊어진다고 하니, 절에 갔을 때 약수터에서 약수 한 대접 마시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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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건축물. 볼수록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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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앞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 완당의 '세한도'에 나오는 그 소나무를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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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거대 좌불. 석등은 당연히 크기가 작지만 원근법에 의해 같은 크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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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본 좌불. 뒷산이 아담한 배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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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와 좌불. 향로는 백제 때 디자인을 도입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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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본 한 쌍의 소나무. 일부러 가지를 다듬었을까, 아니면 저절로 저렇게 아름다운 한 쌍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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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가린 권금성.

신흥사를 보고 속초 물치항으로 갔다. 물치항에는 잘 아는 분의 이모님이 하시는 횟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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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다양하게 챙겨주시는 이모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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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 멍게와 오징어 회. 바닷가 항구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먹는 회와 막걸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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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치, 도다리새꼬시, 고린치라는 잘 모르는 생선. 회는 무조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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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이 서비스로 주신 물회. 도다리와 해삼이 듬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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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 밥 한 그릇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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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치항 회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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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아련하다.

속초에서 회를 먹고 일행 가운데 한 분의 친척이 살고 있다는 강릉으로 갔다. 오죽을 조금 얻었으면 하는 일행의 바람을 이뤄주셨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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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미산 포장마차에서 김치전과 막걸리로 하루의 긴 여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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