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텍트 2016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드니 빌뇌브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만든 '그을린 사랑'을 보고 받았던 충격과 '시카리오'의 놀라운 내용을 보면서, 이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드니 빌뇌브의 작품인 줄 모르고 봤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꽤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을 '컨텍트'라고 지은 것은 아마도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컨텍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그 영화에서 인류는 최초로 외계의 고등한 생물과 만나게 되는 기대를 하고, 외계의 존재가 알려주는대로 우주선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탑승해 우주여행을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의식의 흐름을 통해 외계의 존재와 접촉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외계의 존재는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존재가 뚜렷이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거대한 두족류처럼 생긴 외계의 존재는 위치를 알 수 없는 행성에서 출발해 지구의 상공에 나타났고, 인류와 어떤 형식으로든 접촉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외계의 고등생물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언어학자'로 선택해 외계의 존재와 만나도록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거대한 알레고리를 갖고 있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영화의 내용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보이게 될 수 있다. 영화는 작가 데드 창의 SF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고 제목도 한국에서는 '컨택트'로 되어 있지만 원제목은 'Arrival'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내용은 인류의 언어와 외계 고등생물의 언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그것은 '시간'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인류의 언어는 민족이나 인종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물론 그 뿌리는 몇 개에 불과하겠지만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인류라도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감정과 정서, 논리를 공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외계 존재는 언어가 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원의 패턴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복잡한 것은 디지털 부호 0과 1의 조합이 오늘날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될지 않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의 개념인데, 결국 이 영화는 인류가 알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즉 시간이 직선으로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인류는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이 흐르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우리가 미리 갈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다중우주론이나 평행우주론 등에서는 다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물리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원형처럼 그냥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 루이스가 딸 한나를 병으로 떠나보내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스포일러 때문에 말할 수는 없지만-은 영화가 원처럼 둥글게 설계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외계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SF영화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인류가 고민하고 있는 우주의 실체와 시공간의 문제를 압축해서 개인의 삶과 엮어 놓은 것이다. 개인의 삶이란 결국 시간과 공간의 경험이 축적, 누적된 것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의 문제는 실존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영화처럼 시간을 원형으로 기억하게 되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 속에 놓이게 되어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문제들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믿어왔던 가치관과 세계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체계, 철학체계, 인식과 구조의 체계들이 뿌리부터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결코 지금과는 같을 수 없는, 물리적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어도 인류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SF영화로도 재미있지만, 인류의 생존방식과 존재의미를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볼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