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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26. 2018

소년

몹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체 리듬이 깨지고, 정신이 흐트러지는 상태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더위는 육체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고, 육체 내부에서는 화학적 변화가 발생한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피가 끈적거리며, 피부에서는 분비물이 솟아나온다. 운전을 할 때도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데, 밤에 운전하는 건 더욱 그렇다. 엊그제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어올 일이 있었다. 평일의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나드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마침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이어서 도로에는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유일하게 밝은 빛이었다. 구불거리는 도로는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 멧돼지, 들고양이들이 있어 자칫 로드킬을 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속도를 올릴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은 로드킬을 즐기는 변태가 있었는데, 일부러 동물을 때려죽이지는 않아도 도로에서 동물을 발견하면 피하지 않고 자로 치어죽이는 놈이었다. 동물을 차로 깔아뭉갤 때의 그 느낌, 뼈가 부러지는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피가 튀는 장면을 듣거나 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한다고도 했다. 동물을 치어 죽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새끼라니. 싸이코 변태가 틀림없었다.

운전하면서 그런 싸이코 변태를 떠올리는 건 퍽 기분 더러운 느낌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인간이 떠올랐다. 아마 캄캄한 도로를 달리면서 로드킬을 걱정했기 때문이리라. 중미산 입구-한화콘도 입구-에서 40km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도로 중간에 과속방지턱까지 만들어 놔서 속도를 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작년에 이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외제차를 몰며 레이스를 하던 어떤 병신과 곡예운전을 하며 오토바이를 몰던 애송이가 정면으로 부닥쳐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난 뒤로 의정부 도로관리 사업부에서 과속방지턱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었다. 

게다가 이 도로에서 나도 처음 고양이를 자동차 바퀴로 깔아버린 매우 불쾌하고 마음 아픈 기억이 있어서 여기를 지날 때마다 그때의 일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때는 산쪽에서 고양이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나는 차를 멈출 순간도 없이 고양이가 바퀴 아래로 깔리는 걸 몸으로 느끼고 말았다. 고양이는 차에 치었고,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나는 손이 떨리고, 마음이 흐트러져 진정하기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로드킬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중미산의 초입을 지날 때면 더욱 조심하게 된다. 사위는 고요하고, 짙은 어둠 속에서 불과 십여 미터 앞의 자동차 불빛만으로 산길을 오르는데, 상향등을 켜면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동물은 빛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도로에 동물이 있을 때는 상향등 때문에 동물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중미산의 중간쯤에서 도로가 직선으로 뻗은 곳에 이르렀을 때, 앞쪽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빛을 발견했다. 헤드라이트 빛에 반사해 반짝거리는 동물의 안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속도를 더 늦추고 모습이 보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작은 동물이 도로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비상등을 켰다.

사람의 눈은 밤에 안광이 나오지 않는다. 동물의 눈에서만 파랗게 안광이 보인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년 같은 사람은 눈에서 파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지만 체구가 작아서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공포가 뒤통수를 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칼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차는 멈췄고, 불빛에 드러난 작은 체구의 사람은 소년이었다. 눈에서 나오는 안광도 사라졌다. 소년은 조금 어리둥절한 듯 했고, 약간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소년을 조금 더 관찰했다. 낡은 옷을 입고, 오른쪽 손에는 장미꽃을 한 송이 들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약간 내리고 소년에게 물었다.

이 밤중에 너 혼자 여기에 있는 거니? 부모님이나 같이 다니는 사람은 없어?

소년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선뜻 차에서 내릴 용기는 없었다. 주위에 누군가 숨어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납치할 수도 있고, 저 소년은 그저 미끼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이 어디야? 근처에 놀러왔니?

소년이 울지 않는 것도, 어둠 속에서 놀라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평범한 소년이라면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정신이 나갔어야 할텐데 말이다. 소년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드리웠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야 할지 망설였다. 소년을 차에 태워야 하나? 경찰서로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 경찰을 불러야 하나?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건가?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소년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도망가야 하는 건 아닐까. 저 소년이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괴물인지, 귀신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어서 더욱 공포가 커졌다. 소년은 운전석 쪽으로 다가오더니 장미꽃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였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천천히 장미꽃을 잡았다.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별에서 봐. 소년은 차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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