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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Oct 07. 2018

19금 장화홍련

19금 장화홍련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버지라는 새끼는 내가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고, 계모라는 쌍년은 나를 죽이려고 벌써 몇 번이나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겨우 살아남았어. 나를 죽이면 동생 홍련도 죽일 게 뻔하지.

이제, 저 쌍년과 그 아들 새끼를 죽일 거야. 계모년은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을 해서 애까지 낳았다고 음해했지. 쥐를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그걸 내가 낳은 아이라고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집안 망신을 시킨 나를 죽여야 한다고. 씨발년. 내가 순순히 당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동안 그렇게 당하면서도 참았던건, 홍련이 때문이었어. 불쌍한 홍련이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이 없거든.

계모년이 데려온 애새끼 장쇠라는 놈은 더럽게 못 생긴 데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새끼로, 제 애미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따르는 놈이야. 그 새끼가 나를 강간하려고 했었고, 죽이려는 시도도 했지만, 다행히 옆집 할머니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 공포에 떨면서도 관아에 고발할 수 없었던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지. 그때부터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은가락지를 국에 넣어서 색깔이 변하는지 확인하고 먹지.

계모년에게는 애새끼가 셋인데, 모두 사내 새끼들이야.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이미 장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뒤로 둘을 낳았는데, 홍련이보다 어린 애들이지. 그 애새끼들에게는 안됐지만, 계모년은 이제 더 이상 밥을 처먹지 못할 거야. 

나는 절대 그 쌍년을 용서할 수 없거든. 우리 엄마, 홍련이 낳고 죽은 우리 엄마가 홍련이를 낳을 때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달랐어. 엄마와 계모년인 허씨는 어려서 동무였다고 하더군.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를 질투하고, 시샘했는데, 그건 외모를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우리 엄마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대. 우리 엄마는 외모도 예쁘고, 몸가짐도 반듯하고, 바느질도 잘 하고, 음식도 잘 만드는 '양가집 규수'였던데 반해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남자들하고 어울려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던 년이라더군. 

엄마가 결혼하고 나를 낳고, 3년 뒤에 홍련을 낳았을 때, 친정엄마가 없던 우리 엄마를 돌봐주겠다고 했던 게 허씨년이라는 거야. 감이 오지. 그 쌍년이 우리 엄마를 살해한 거야. 미역국에 독을 넣었을 수도 있고, 목을 졸라서 죽였을 수도 있겠지. 이 사실을 알려준 건 옆집 할머니였어. 할머니는 항상 우리 자매를 지켜보고 있었지. 나는 어려서 그 할머니가 조금 이상했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 내가 말귀를 알아 들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진실을 말해 주신 거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어. 

이 비밀을 알기 전에도 나는 늘 생명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허씨년하고 그 아들놈이 우리 자매를 죽일 거라는 느낌말이야. 우리 자매를 죽여야만 아버지 재산을 전부 그것들이 차지하지 않겠어. 나는 홍련이와 함께 낮에는 거의 산에 가서 살았어. 집에 있으면 위험했기 때문이지. 산에 간 이유는 위험으로부터 도피할 목적도 있었지만, 홍련이와 함께 체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어. 우리는 산을 오르고, 무거운 바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스스로 훈련을 했어.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어지간한 남자들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근육과 체력이 단단해졌지. 늘 풍성한 치마를 입고, 몸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지.

어제, 허씨년이 쥐의 껍질을 벗겨서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버지는 나를 방에 가뒀어. 아마도 허씨년은 나를 그냥두지 않을 거야. 장쇠 새끼를 시켜서 나를 죽이려 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지. 그 쌍년놈들을 내가 먼저 본때를 보여주겠어. 헛간에는 시퍼렇게 잘 벼려둔 낫도 있고, 장롱에 숨겨둔 작은 손도끼도 있으니까. 이제 남자 옷으로 변복만 하면 돼. 엄마를 죽인 허씨년은 산 채로 팔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처넣고, 장쇠 새끼는 눈깔을 빼고,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릴 거야.

나와 홍련이를 건드리는 년놈은 누구를 막론하고 제 명에 죽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저 뒷산 우물 속에 처박힌 년놈이 몇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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