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꼰대의 최후
출근시간이 지난 2호선 전철에는 서 있는 사람이 드물고,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보고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의 흔들림과 정차하고 출발하는 전철역에서의 안내방송이 규칙적으로 들릴 뿐, 전철 안은 조용했다. 전철이 사당역에 멈추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사람들이 전철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고, 다시 전철이 움직였다. 조용한 공기가 찢어지듯 파열한 것은 전철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이도 어린 게 어른을 보면 일어나야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 있는 남자였고, 나이는 60대로 보였다. 그는 등산복 바지와 조끼를 입었고, 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었다.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어서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처진 입술, 더부룩한 수염, 꺼칠한 피부를 보면 그가 가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앞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그 여학생은 갑자기 자신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강압적인 목소리와 태도로 서 있는 늙은 남자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드럽던 전철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걱정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단 말이야.
늙은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그의 귀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학생은 그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고, 희미한 웃음을 띄면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보시죠.
여학생의 당돌하지만 똑부러지는 말에 늙은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몸짓이 보였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상체가 약간 뒤로 움직였다. 그건 전철의 흔들림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싸움에서 밀렸다는 반응일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 남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맞받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도리니까,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기본 예의이고, 상식이 아닌가.
늙은 남자는 자신의 논리적 주장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 옆에 앉아 있던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은 동방예의지국의 전통과 예의범절로 공격하는 늙은 남자의 주장에 패배해 곧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은 조금의 흐트럼짐도 없이 늙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방예의지국과 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제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직접적인 관련이 어디에 있는지 근거를 대보시죠.
이제는 자리에 앉을 거라고 기대했던 늙은 남자가 순간 휘청하는 느낌을 받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여자가 따박따박 말대꾸 하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수리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늙은 남자는 명치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너는 부모도 없냐.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이 앞에 있으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야지. 부모가 그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늙은 남자는 감정이 북받쳐서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제 전철 안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모를 수 없게 되었다. 늙은 남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에 경멸과 짜증이 묻어 있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여학생은 옆에 앉은 노인을 슬쩍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여학생이 졌다. 늙은 남자는 득의양양, 거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여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늙은 남자가 섰던 자리,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전철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여학생 옆에 앉았던 노인이 일어났다. 도착지가 되어 내리는 줄 알았던 노인은 조금 전 자리에 앉은 늙은 남자 앞에 섰다. 여학생은 노인이 일어난 자리, 늙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고, 여학생의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은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발을 툭 찼다. 늙은 남자는 순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노인은 다시 말했다. 조용하게.
아니, 노인장 내리시는 거 아니셨나요.
늙은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지만, 선글래스를 써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시커먼 안경 벗어.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른 앞에서 까만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어른에 대한 예의야.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노인은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늙은 남자는 당황한 몸짓을 숨기지 못했지만, 노인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노인께서 왜 시비를 거십니까. 그냥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되잖아요.
내 맘이야. 선글라스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 새끼야.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철 안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점잖게 생긴 노인의 입에서 저런 거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에이, 씨발, 늙었으면 곱게 늙을 것이지, 왜 시비를 걸고 그러는 거야.
늙은 남자는 이제 노인의 말에 반발하고, 물리적 대응을 각오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노인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르고 약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태극기가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상황은 곧 끝났다. 여학생이 다시 일어섰고, 노인은 자리에 앉았다. 늙은 남자는 득의만면, 자신이 이겼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고 느끼는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 날카로운 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여학생의 손바닥이 늙은 남자의 뺨을 풀스윙으로 때리고 허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번 빠르고 강하게 반복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남자의 뺨은 이내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에 늙은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그 사이 이번에는 둔탁한 타격이 턱과 가슴에 연거푸 퍼부어졌다. 너무 빠르고 강한 타격이었고, 갑작스러워서 늙은 남자는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타격으로 인한 통증이 양쪽 뺨과 턱, 가슴에서 폭탄처럼 터지자 본능처럼 벌떡 일어나 여학생을 공격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날렵했고, 유연했으며, 부드러웠다. 그의 손과 발은 마치 춤을 추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늙은 남자는 온몸에 타격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늙은 남자는 자기가 이렇게 비참하게 처맞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극기가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