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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Oct 13. 2018

비루한 인간

비루한 인간

점심을 먹고, 문호리에 있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각자 자기가 알고 있는 기이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인간 유형이 떠올랐고, 그건 지금 사회에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정리했다.

한 인간이 있다. 50대 초반의 남성이다. 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 임시직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 중견 기업의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연봉은 1억원 정도로 높은 편이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서 어느 지방도시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상위 5%이내에 들어갈 만큼 꽤 부유한 사람이라고 인정할만하다. 여기에, 좋은 대학을 나왔고, 외모도 멀쩡해서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좋은데, 그는 50대에 미혼이다. 밥을 먹을 때는 값싼 식당을 주로 찾고, 공기밥을 공짜로 주는 식당에서 밥을 두 그릇씩 먹는다.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자동차로 쓰는 돈이 아까워서다. 그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보고 결혼해서 결국 자기 재산을 뺐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가 가진 지식과 배경과 재산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는 무능하다.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는 의지도, 의욕도 없다. 그는 늘 업무에서 배재당하고, 좌천되어 지방으로 전전했으며, 회사가 좋아서 해고를 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정년까지 무능함으로 버틴다. 그가 받아가는 연봉이면 일을 아주 잘 하는 신입사원 세 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지만, 재산도 많은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 끝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또 한 인간이 있다. 그도 50대 초반의 남성인데, 강남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다. 그가 주무르는 돈만 몇 백억 단위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빌딩만 여러 채가 있다. 이 정도면 누구나 그가 한국에서 상위 0.1%에 속하는 자본가이자 부르주아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첫 인상은 노숙자다. 싸구려 나일론 잠바(점퍼라는 단어도 고급해서 어울리지 않는다)를 걸치고, 바닥이 닳은 낡은 신발을 신고, 싸구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동차도 물론 없다. 그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앞에 말한 남자와 똑같다. 여자가 자기의 재산을 강탈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여자를 만나지도 않는다.

이 두 인간형은 매우 비슷하다. 두 사람은 물론 어떠한 관계도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두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이런 인간 유형을 '비루한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비루한 인간은 무지하고 가난한 인간이 아니다. 위의 두 인간은 매우 부유하고, 경제적으로는 상위1% 안에 들어가는 인간이고, 대학을 나온(사채업자의 학력은 알 수 없다) 인간이지만, 그들에게서 나는 느낌은, 노숙자나 거지, 부랑자들에게서 나는 더럽고 역겨우며 구역질나는 냄새다. 즉, 이런 인간 유형은 천성적으로 비루한 인간으로 타고난 것이다. 나는 결정론을 믿지 않으므로 '천성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는 그가 태어나서 자랄 때의 성장 과정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루한 인간 유형 가운데 보통의 한국사람이라면(어린이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이명박이다. 이명박은 운이 좋아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비루한 인간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인데 비루한 인간이라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한국에서 재벌들을 보면, 마약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온갖 천박한 갑질을 하는 사건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자본가이긴 하지만, 그건 단지 자본을 많이 소유했다는 것일뿐, 그 자본가의 품성이 고결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루한 인간의 반대는 고결한 인간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착각하는 것이, 돈이 많거나, 많이 배운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다는 것과 고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다. 아주 드물게 부르주아에게서 그런 자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건 훌륭한 배경과 환경이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고결한 인간은 돈과 지식과 직접 관련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명박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근근이 자랐다. 그가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가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그가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풍요롭게 사용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나쁘지 않고, 그가 사회를 위해 돈을 쓴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이명박은 오로지 돈을 '모으기만' 했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돈에 환장하는' 집착은 정신적으로 심한 결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타인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즉 정서가 안정되고, 다른 사람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사랑'이 무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자랐다. 단지 가난 때문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가난해도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이 화목한 집안이 얼마나 많은가.

이명박은 4명이 개고기를 먹으러 가면 2인분을 주문해서 혼자 다 먹는다고 했다. 식탐 역시 돈을 탐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다. 그가 아주 적은 돈이라도 쓰지 않으려 하는 심리는,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아야만 마음이 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과정을 축재, 즉 돈을 모으는 데 쏟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쌓아놓으면서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내면도 천박하다. 배움이 짧고, 평생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기 때문에 지식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 말하려는 내용이 없고, 사용하는 단어와 어휘가 적다. 그가 개신교도로 교회에 열심으로 출석해 기도를 한 것은, 그가 신의 존재나 종교의 깊이를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의 지식인이 모여서 나누는 잡담을 5분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무식한 인간이고, 특히 과학, 자연, 환경, 역사, 철학 등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 무식한 인간이다. 결국 이런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의 전형을 이룬다.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일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간이 '비루한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가들 가운데도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진 것들만도 엄청 많지 않은가. 자식이 술집에서 싸웠다고 가죽장갑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자본가, 천박한 욕설과 말투로 고용한 사람들에게 생지랄을 떠는 자본가를 보라. 그들은 천성이 비루하고 천한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가운데 오히려 고귀한 인간들이 더 많다. 확률적으로도 그렇다.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비율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노동자와 서민은 90%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인간은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누군가 위험에 놓였을 때 서슴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자신의 이해와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 가진 것이 적어도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고귀한 사람들이다.

돈을 쌓아놓고도 쓸 줄 모르고,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자들이 비루한 인간이라면,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인간이다. 자본주의가 사라져야 할 많은 이유 가운데 비루한 인간이 오로지 돈만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도 한몫을 한다.

이제 비루하고 천박한 인간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도록 재배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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