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번째 글쓰기 방송입니다. 어제 테스트로 글쓰기를 했는데, 화면이 너무 커서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글쓰기는 생방송으로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수단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데스크탑 모니터에서는 잘 보입니다. 스트리밍의 약 80%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본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분들 절대 다수에게 보이지 않는다니, 퍽 안타깝습니다만, 나중에 제 블로그에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도 영화 리뷰를 쓰겠습니다.
[영화] 굿 메리지
넷플릭스에서 보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로, 이 영화의 원작과 시나리오를 스티븐 킹이 했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국내 번역된 작품은 거의 다 찾아 읽은 저로서는 이 영화의 원작을 읽은 기억이 없더군요. 이 영화가 소설 원작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시나리오로 작업을 한 것인지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늘 느끼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로 영화를 만들면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쇼생크 탈출’은 예외입니다만,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널리 알려진 작품은 ‘쇼생크 탈출’이나 ‘샤이닝’, ‘캐리’ 정도가 그나마 유명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공포, 호러, 스릴러의 수식이 붙는 장르 소설이라고 흔히 말합니다만, 그래서 소위 ‘정통문학’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스티븐 킹이 노벨문학상-저는 노벨문학상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만, 그나마 상징적으로-을 받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애석하고, 씁쓸합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호러의 원조이자 대가인 ‘러브 크래프트’의 영향을 직접 받았습니다. 여기에 에드가 알란 포를 비롯한 선배들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얻었습니다. 선배들의 고딕 양식에다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불어 넣은 스티븐 킹의 작품은 특히 인물의 생생함, 캐릭터의 감정과 영혼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쉽게 작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는 과정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소설로 읽을 때와 같은 작품을 영화로 볼 때의 차이는, 마치 뼈대만 있는 사람과 살과 근육이 붙어 있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까요. 건축물로 보면 골조만 세운 집과 외부, 내부를 모두 완성한 아름다운 집을 보는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풍부한 묘사와 인물의 감정, 느낌, 추억, 회한, 고통, 슬픔 등을 마치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날것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25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아온 한 부부가 있습니다. 두 아들과 딸 하나도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다복하고 평온한 가정이고, 부부 금슬도 좋습니다. 남편 밥은 능력 있는 회계사로 평판이 좋고, 아내 달시는 전업주부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수십년 행복하게 해로하는 부부가 많다는 건 당연한 현상이겠습니다. 이혼률이 50%라고 하지만, 또 그만큼 부부가 다정하게 오래 사는 가정도 많다는 뜻이죠.
결혼25주년 파티에서 멋진 귀고리를 선물 받은 달시는 행복합니다. 자식들은 다시 자신의 집과 일터로 떠나고, 남편 밥도 늘 그렇듯 출장을 떠납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우연히 개러지에 갔다가 비밀의 벽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연쇄살인마의 증거를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자기 남편, 25년 동안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했던 남편 밥이 지금 텔레비전에서 온통 난리를 치는 바로 그 연쇄살인범이었던 겁니다. 살을 맞대고 살았던 배우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보통의 사람은 어떨까요? 달시도 충격과 공포에 빠져 몹시 혼란을 느낍니다. 게다가 남편 밥은 달시가 자신의 정체를 알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동안 꽤 오래 잘 숨겨왔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밥은 달시에게 말합니다. 자신을 경찰에 고발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식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고, 그들의 앞날이 어떨지 생각해라, 그리고 달시도 연쇄살인마의 아내라는 딱지를 붙이고 평생 살아갈 것을 새겨두어라,라고 말이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고, 달시 역시 그것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합니다. 다만 앞으로 더 이상의 살인은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말합니다. 밥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저지른 일이라고 말하죠. 밥은 정신병자일까요, 싸이코패스일까요. 멀쩡하게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잘 하는 밥은 정신병자의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밥의 심리나 행동은 지극히 평범하게 보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살인마로 변하게 된 것인지에 관한 과거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설과 영화의 차이입니다. 소설이라면 밥의 과거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길고 세부적인 묘사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죠. 이런 상태에서 달시는 연쇄살인마인 남편과 겉으로는 평온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달시는 남편이 왜 자기를 죽이지 않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다른 여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를 죽이지 않는 것이 단지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내를 죽이면 자기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일까.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달시는 경찰에 남편을 고발하지 못합니다. 자식들이 알면 절대 안되기 때문이죠. 결국 달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작정합니다. 예전처럼 남편 밥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평범하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그들은 오래된 동전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습니다-누가 봐도 중산층 백인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남편의 의심을 사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나날을 이어가던 어느날, 달시는 사고로 위장해 밥을 죽입니다. 2층 계단에서 밥을 밀어버리는 거죠. 계단에서 떨어진 밥은 약간의 저항을 하지만 달시는 냉정하게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고 911에 전화합니다. 사고로 남편을 잃게 된 달시와 그의 자식들은 장례를 치르고, 밥이 연쇄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달시 혼자라고 생각하던 어느날, 늙수그레한 남자가 달시를 찾아옵니다. 그는 가끔 달시와 밥이 사는 집을 배회하던 남자였는데, 노숙자처럼 보이지만 퇴직한 형사였습니다. 그는 혼자 연쇄살인마를 쫓고 있었는데, 결정적 단서를 잡지 못해 밥을 뒤쫓고 있던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밥이 죽자 달시를 찾아와 밥이 연쇄살인마라는 말을 합니다. 달시는 퇴직한 형사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지만, 결국 솔직하게 사실을 고백합니다. 퇴직한 형사도 그 사실을 알지만 달시와 함께 비밀로 간직하기로 하죠. 두 사람은 누가 살인범인가보다, 연쇄살인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아쉬운 점은, 소재가 갖는 심리스릴러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입니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미치광이,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돌변하는 건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에서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세계영화사에 남는 걸작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영화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2부작 영화로 ‘샤이닝’을 다시 만드는데, 저는 두 작품을 다 봤습니다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어떻든, ‘샤이닝’에서도 남편 잭은 눈에 둘러싸인 겨울 호텔에 갇혀 서서히 미쳐갑니다. 그는 도끼를 들고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 합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그 공포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영화 ‘굿 메리지’에서도 남편 밥이 직접 가족을 해치려는 시도는 없었지만,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역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겠죠. 아무리 25년동안 다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한 부부라해도 그 사실을 안 순간, 모든 것은 변하고 맙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누구도 달시의 선택과 행동을 비난할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영화보다는 소설이 좀 더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영화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60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