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이퀄라이저
건축자재를 파는 홈디포(여기서는 홈마트로 나오지만)에서 일하는 로버트 맥콜은 혼자 살고 있다. 중년이고, 혼자 살면서 그의 생활은 매우 단순하다. 아침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 잠을 잔다.
하지만 그는 불면증이 있어 새벽이면 잠이 깨 집 근처 카페에 나와 책을 읽는다. 24시간 운영하는 이 카페는 커피도 팔고 간단한 음식도 파는 곳으로 로버트의 단골집이다. 평범한 흑인 중년의 삶은 너무 단조로워서 마치 수도승이 사는 모습처럼 보인다. 카페에서 알게 된 테리라는 어린 여성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나면 로버트가 읽고 있는 책-노인과 바다-이야기를 하거나 테리가 만든 자신의 데모 CD를 선물로 받는다. 테리는 가수가 되고 싶지만, 지금은 범죄조직의 감시에 놓여 몸을 팔고 있다. 로버트는 테리의 처지를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연민이나 동정을 보이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 읽은 로버트는 '돈키호테'를 읽는다. 기사가 필요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가는 것은 그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로버트는 혼자 살아가는데, 그도 예전에는 아내가 있었다. 다만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일이 어쩌면 로버트의 현재를 있게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세상에서 조용하게, 수도승처럼 살려는 로버트의 바람은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러시아 범죄조직에게 끌려가 구타당한 테리의 모습을 보면서 로버트는 그녀를 그 구덩이에서 빼내려 한다. 자신이 가진 돈 9800달러를 들고 우두머리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받고 테리를 자유롭게 놓아달라고 점잖게 부탁한다. 하지만 그들은 로버트를 비웃고, 돈을 가지고 꺼지라고 말한다.
포주인 슬라비는 돈을 내밀고 테리(본명은 알리나)를 자유롭게 해달라는 로버트의 말을 듣고는 '나를 모욕했다'며 미국놈들은 돈이면 뭐든 사느냐고 비웃는다. 돈을 돌려주면서 한 달 뒤 다시오라는 말을 하는 슬라비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로버트는 문을 열다 다시 닫고 잠근다.
비무장으로 들어온 로버트를 경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총과 칼로 무장했으며 여차하면 로버트를 죽일 수 있는 상황. 로버트는 사무실을 나가려다 말고 문을 잠그고 돌아서 다섯 명을 19초만에 모두 죽인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빠르게 움직여 상대방이 어리둥절한 사이에 죽게 만든다.
러시아에 있는 보스-이름이 푸쉬킨이다, 이런!-는 해결사를 보내 자신의 조직원을 죽인 자를 찾아내 응징하려 하지만, 로버트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이미 한번 죽었던 사람이고, 그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미국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사람으로, 사람을 죽이는 병기였다. 그런 경력을 알리 없는 러시아 마피아는 로버트의 뒤를 쫓는다.
영화의 핵심은 액션이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법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처럼, 악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와 싸우면서도 로버트는 직장 후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돈을 뜯는 부패경찰을 응징하고, 러시아 마피아와 결탁한 부패경찰도 처리한다.
심지어 자기가 일하고 있는 직장-홈디포-에서 강도가 들어와 돈과 직원의 반지를 강탈하자, 그 강도의 특징, 자동차 번호 등을 외운 다음, 그날 저녁 강도를 찾아가 뺐긴 돈과 반지를 되찾아온다.
후반으로 가면서 러시아 마피아 두목인 '푸쉬킨'은 특급 해결사를 미국으로 보내 로버트를 없애려 하고, 이렇게 특수부대를 나온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상대가 만만찮다는 걸 알게 된 로버트는 과거 자신의 동료를 찾아가 러시아 해결사가 누구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인간인가를 알게 된다. 러시아 특수부대를 나온 드미트리는 고아였으나, 그를 입양한 부모를 불과 12살 때 살해한 싸이코패스였다.
이제 로버트는 결정해야 한다. 싸움에서 물러나 조용히 사라지던지, 아니면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정면으로 맞싸워 끝장을 보던지. 로버트는 후자를 선택하고,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한 다음, 그들의 근거지를 하나씩 파괴하고, 마피아와 부패경찰을 사살한다.
러시아 마피아와 미국 조직폭력단, 부패경찰이 하나의 조직이고, 이들은 지역에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 돈을 긁어모으는데, 돈을 세는 커다란 창고와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렇게 모인 현금을 FBI가 발견할 때, 적게 잡아도 수억 달러에 달할 정도였으니 이들의 조직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로버트는 마피아 조직이 운영하는 유조선을 파괴하고, 범죄 조직의 근거지를 드러내 FBI에게 알린다.
심지어 로버트는 모스크바에 있는 마피아 두목 '푸쉬킨'을 찾아가 그의 성같은 저택에서 모든 경호원을 살해하고, '푸쉬킨'도 감전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테리'를 다시 만나고, 테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로버트가 마지막 장면에서 읽는 책은 '투명인간'이다. 그의 존재를 상징하는 이 책은, 보통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또 띄어서도 안 되는 인물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TV시리즈로 만든 것을 안톤 후쿠아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며, 오리지널 주인공은 백인으로 50대 남성이지만,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50대 초반의 남성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른 영화, '택시 드라이버', '아저씨', '존 윅' 등과 비슷한 장면들도 있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주인공 로버트 맥콜 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은 언제 봐도 멋지다. 그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덴젤 워싱턴이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 영화는 이전에 출연했던 '트레이닝 데이'에서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와 비슷한데, 감독도 같은 안톤 후쿠아로 두 사람이 '트레이닝 데이' 이후 다시 결합했다.
영화는 하드보일드 형식을 추구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적을 죽일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피가 튀고, 잔인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홈디포 매장에서 벌어지는 결투 장면은 조금 코믹한 느낌도 있다. 건설 장비로 쓰이는 도구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로 변하는데, 그걸 맥가이버처럼 해내는 로버트의 행동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져서 영화의 하드보일드한 느낌을 가볍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 역시, 러시아까지 찾아가 푸쉬킨의 집에 들어가 푸쉬킨을 죽이는-정확하게는 푸쉬킨이 감전으로 죽지만-것도 결과만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 싱겁게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덴젤 워싱턴의 잘 생긴 모습만 봐도 기분 좋은 영화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82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