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간다고 까불지 마라
19금 토끼와 거북이
야, 거북이 존만아. 너 오늘 백미터는 걸었냐? 크크크크크.
토끼 저 새끼는 오늘도 나를 놀린다. 땅바닥에 붙어 엉금거리며 걷는 나와 달리 토끼는 날렵하게 뛰어 빠르게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놀린다. 개새...아니 토새끼.
내가 150년을 사는 동안, 저 토끼 애새끼의 애비와 할애비도 나에게 똑같이 말했다. 저 새끼들은 할 말이 그것 밖에 없나보다. 나는 짐짓 화가 난 척 인상을 쓰고 짜증난 것처럼 말했다.
그래봐야 너는 나한테 지게 되어있어, 임마.
토끼가 눈을 동그랗게-가뜩이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비웃었다.
왜? 너는 네가 달리기를 잘 한다고, 빠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멍청이.
나는 토끼가 열받을 것을 기대하며 도발했다. 아니, 사실을 말했다. 내 할아버지-450년 전이다-가 저 토끼의 10대조 할아버지와 달리기 내기를 했을 때, 내 할아버지가 이겼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중간에 토끼가 낮잠을 잤다고 하는데, 이제와서 밝히는 사실이지만, 내 할아버지는 시합을 하기 전에 중간 쯤 나무 아래 당근을 여러 개 놓아두었다. 그건 당연히 토끼의 눈에 띄었고, 토끼는 당근을 맛있게 먹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당근 속에 수면제를 넣은 것은 비밀로 하자.
토끼는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심판을 본 호랑이가 단호하게 거북이 손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병신새끼, 거북이가 너를 속였다고 화를 내면, 거북이가 너보다 천 배도 느리게 걷는다는 걸 알면서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 건, 신사다운 행동이냐? 너는 더 나쁜 새끼야.
토끼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토끼는 거북이에게 원한을 가졌다.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말은 못하지만, 토끼는 늘 우리 부모, 내 옆을 지나면서 백 미터는 걸었냐고 놀렸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내가 토끼를 놀리자, 토끼는 화가 치밀었다.
그때는 우리 할아버지가 낮잠을 자서 그런 거거든. 이번에는 진짜 시합을 하자. 내가 지면 평생 네 하인이 되어서 먹이를 구해다 바칠께.
토끼가 화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웃기고 있네. 들판에서 그냥 달리면 말할 필요가 없잖아.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멍청아?
토끼는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그래, 좋아. 그러면 네가 제안해. 어떤 방법이든 동의할테니까.
달리기 코스 중간에 호수를 헤엄쳐 건너는 걸 넣으면 나도 동의하지.
나는 아무래도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조금 짜증을 내며 말했다.
토끼는 동의했고, 우리는 호수가에서 가까운 느티나무 아래서 출발했다. 심판은 여우가 했는데, 그가 손을 내리기도 전에 토끼는 이미 호수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엉금엉금 거릴 뿐이었다. 토끼는 이미 호수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가 호수 절반 가까이 갔을 때서야 나는 겨우 호수의 물가에 다다랐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육지에서는 엉금거리지만, 물에 들어가면 땅에서와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모르는 동물과 사람이 많다. 토끼가 아무리 빨라도 물에서는 나보다 느리다. 속도는 역전되었고, 나는 곧 토끼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토끼는 내가 바로 뒤에 붙은 줄 모른 채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토끼의 왼쪽 발을 물었다. 순간 토끼는 깜짝 놀랐고, 헤엄을 칠 수 없게 되자 놀라서 앞다리를 휘저으며 물을 마셨다. 나는 천천히 토끼의 뒷발을 물고 호수 아래로 들어갔다. 토끼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발버둥을 쳤다. 그는 몰랐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