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의 몰락-폴 프롬 그레이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중년여성 그레이스는 이웃에 사는 친구 세라의 추천으로 사진전시회에 갔다가 사진작가인 한 남자(새년)를 만난다. 연하의 남자는 마치 천사처럼 다가와 그레이스의 마음을 녹이고 둘은 곧 결혼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레이스는 회사에서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해고되고, 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담보대출로 거액이 빠져나갔다. 충격을 받은 그레이스는 범인이 누구인지 찾았고, 바로 얼마전 결혼한 남편의 짓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던 새넌도 그레이스가 사진 증거를 들이대자 자기가 한 짓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새넌은 외롭고 돈 있는 여자를 유혹해 재산을 빼돌리는 꽃뱀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새넌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 놀아나고, 그레이스를 무시하고 비웃는다. 모욕을 참지 못한 그레이스는 야구방망이로 새넌을 살해하고 지하실에 던져 넣은 다음 패닉에 빠져 차를 몰고 집에서 멀리 도망한다. 그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생각하는 세라에게 전화해 그동안 벌어진 일을 말하고, 경찰에게도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영화는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무능해 보이는 관선 변호사 앨리스는 유죄가 확실한 사건에서 검사와 형량 거래만 하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하는 단순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레이스와 만나서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 거래 서류에 사인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레이스가 저지른 일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걸 느낀다.
앨리스는 의뢰인 그레이스가 배심원을 상대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하자 처음에는 유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태도가 바뀌어 재판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정식 재판이 열리고 검찰과 관선 변호사의 대결은 그러나 증인 신문을 통해 검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영화는 평범한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바뀌면서 뜻밖의 결말을 맞게 되는데, 그레이스가 경험하는 사건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고, 파멸로 이끄는 과정이어서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이런 경우는 더욱 악질적이고 심각한 사회문제다.
노인의 재산과 연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은 다음 범행을 하는 지능범이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것, 그들은 모두 '좋은 이웃', '착한 사람'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의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기생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