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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y 01. 2020

독학의 시작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독학의 시작     

1975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폭우와 홍수가 마을을 덮쳤다. 허름한 판잣집은 물에 잠겼고, 홍수가 끝나자 철거되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했고, 나와 동생은 곧바로 소년노동자가 되었다. 열네 살, 열한 살의 형제는 공장을 전전하며 밥벌이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차비를 아끼려고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걸었으며, 빈민을 위한 급식소에서 하루 한끼 국수를 사 먹으며 살았다.

열여섯 살, 건설노동자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다행히 좋은 형들을 만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고, 열여덟 살에 중학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치렀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고등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치렀고, 스승님의 도움으로 잡지사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대학진학률이 27%에 불과했다. 나는 여건이 더 나빠서, 국민학교 이후는 진학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공부해서 검정고시로 최소한의 학력을 유지했다. 그렇게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잡지사, 공장, 출판사, 자유기고가 등을 하며 살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독학과 학력은 관련이 없고, 학력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대학공부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열여섯 살 무렵부터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내게 공부는 오로지 책을 읽는 것이 유일했다. 다행히 독서의 욕구와 열망은 높아서, 눈에 띄는 책, 손에 잡히는 책을 읽다가 삼중당문고를 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의 초반은 주로 소설이었고, 가벼운 에세이, 교양입문서 등이었다. 배경 지식, 기초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어려운 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군 복무를 할 때 특히 책을 많이 읽었다. 운이 좋아서 행정병으로 근무했고, 하루 몇 시간은 책을 읽을 여건이 되었다. 꾸준한 책읽기는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86년,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선배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이때 본격 사회과학과 철학, 경제학을 배웠다. 여전히 대학 진학하기 어려운 가난한 상태였고,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처음 체계적 독서를 시작했다. 역사, 철학, 경제학, 사회과학의 커리큘럼에 맞춰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토론을 하는 모임은 정규 학교를 다닌 적 없는 내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1988년, 사회는 민주화운동으로 격변하고 있을 때, 나는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다. 내가 글쓰기에 약간의 재능이 있다면 그건 온전히 책을 열심히 읽은 덕이다. 나는 더욱 책을 열심히 읽었고, 책읽기의 범위는 넓어지고, 조금씩 깊어졌다.

1993년,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했다. 학교 공부와 사회생활은 병행하기 힘들었고, 이후 결혼하고, 회사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유지하는 한편, 태어난 아이의 육아도 직장 다니는 아내와 함께 하느라 공부가 쉽지 않았다.

결국 방송통신대학의 학부 생활은 몇 번의 등록, 재등록을 거치며 중단되었고, 그사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이주해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책읽기는 더욱 열심히 했다. 아이가 자라서 군복무를 하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2020년, 다시 방송통신대학교에 재입학을 신청했다. 이미 60세가 되어가는 나이였지만, 학력과는 상관없이,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죽을 때까지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만화평론으로 상을 받았고, 나의 책읽기를 통한 독학은 약 40여 년을 이어왔다. 몇 년 단위로 스스로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교육 과정을 정상으로 밟아 중, 고, 대학교를 다니고, 전공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보다는 부족하지만, 나는 스스로 공부했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웠다. 

배움에는 형식이나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한문 공부는 신문-옛날 신문은 한문이 많이 섞여 있었다-을 읽으면서 터득했고, 외국어(영어)는 쉬운 영어책과 영화를 보면서 배웠다. 나는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공부했으며, 책을 읽었다. 컴퓨터-하드웨어, 소프트웨어-도 1989년부터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며 혼자 배웠고,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배운 배관, 설비, 용접 기술로 군대에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시골에 사는 지금은 그때 배운 기술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자양분이 되고,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우려는 마음은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게 되는 장점이 있다. '날마다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씀은 지금도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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