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엉클 분미>
종교와 영화 수업의 다섯번째 영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를 감상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에 심사위원도 “이런 영화는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필자도 정말 신선하고 기묘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내러티브가 명확하지 않고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이어붙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하나의 장면에도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Anachronism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기법은 이 영화에 개성을 부여하면서도 의미 전달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영화가 잊혀진 자들을 기억해내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그 매개체는 바로 ‘유령’이다. <엉클 분미>에서 유령은 다른 유령을 다룬 영화들에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보통 영화에서 유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엉클 분미>에서 유령들은 전혀 공포스럽지 않게 묘사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잠깐 무서울 수 있지만 극중 인물들의 반응을 보고 이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유령의 이미지도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 그대로의 모습이거나 동물의 모습이다. <엉클 분미>에서 유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잊혀진 자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유령은 죽었는데도 죽지 않고 이승을 떠도는 존재이므로, 우리는 유령을 보면서 (일상 속에서는 잊고 있었던) 과거를 기억하게 된다.
프리미티브 프로젝트와 나부아 마을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엉클 분미>를 감상하자 이 영화 전반에는 쓰라린 과거와 고통받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분미의 꿈에 묘사되는 장면들, 계속해서 등장하는 정글의 이미지 등이 그러한 의도를 드러낸다. 사실 이러한 주제를 다룬 영화는 매우 많다. 그러나 <엉클 분미>는 이런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신화적 설정과 이질적 존재들의 결합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점이 영화적으로 훌륭하고 세련된 방식이라고 느꼈다.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엉클 분미>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이제 꿈에서 깨어 현실 세계로 나와서 눈앞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해석에 가장 공감했다. 음식점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이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어떤 종교든 결국 현실 세계와의 연결성을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