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스타트업 CEO가 견뎌야 할 화려한 무대 뒤의 적막
오늘은 신년회를 하면서 간만에, 쐬주를 한잔 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저를 돌아보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보냈던 시간이었지만, 과연 내 손엔 무엇이 쥐어져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든 속상함이 있어 노트북을 켰습니다. ㅜㅜ
1. 지난 달, 25년 12월엔 정말 많은 축하 문자를 받았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인 '초격차 스타트업 1000+, 금융 AI' 부문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그 어떤 회사보다 큰 격려 속에 졸업을 하였고, 그 어렵다는 IBK창공에 선정되어 빡신 과정을 거쳐 졸업을 하였고, 중소벤처기업청장상, 한국엔젤투자협회장상도 동시에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박 대표, 이제 꽃길만 남았네. 기술력 인정받았으니 투자도 줄을 서겠어."
그분들의 축하에 웃으며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라고 답장을 보냅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을 끄고 나면, 제 눈앞에는 다시 차가운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번 달 개발 서버 비용'과 '다음 달 직원 급여'라는 엑셀 시트입니다.
화려한 상장과 트로피가 사무실 한편에 쌓여가지만, 그것이 당장 우리 직원들의 밥을 먹여주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타국인 인도네시아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이끄는 대표의 진짜 삶입니다.
2. 지난 1년, 정말 발이 닳도록 뛰었습니다. IR(투자 유치) 미팅만 수백 번을 다녔습니다. 벤처캐피탈(VC) 심사역들 앞에서 우리 '링크핀(LinkFin)'의 비전을 토해내듯 설명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6,000개의 섬(유인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이 1억 명이 넘습니다. 우리의 '오픈뱅크 플러스(OpenBank Plus)'는 계좌가 없어도 금융을 이용할 수 있으며, AI 에이전트 기술로 이들을 제도권 금융과 연결할 겁니다. 단순한 중개가 아니라, 금융의 혈관을 뚫는 일입니다.또한 1,600개 지방은행이 비싼 은행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저희의 BaaS(Banking as a Service)를 이용하면 큰 비용없이, 한국처럼 발전한 은행업무를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물론 이 모든 서비스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OJK)의 허가를 받은 핀테크(Fintech) 서비스입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기술력이 대단하네요.", "BM(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네요."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LOI(투자의향서)도 여러 장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아실 겁니다. LOI는 '현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썸(Some)의 신호일 뿐, "결혼하자"는 확약이 아닙니다. 투심위(투자심의위원회)는 길어지고, 시장 상황은 얼어붙어 있고, 입금 알림이 울리기 전까지 그 종이 한 장은 그저 종이일 뿐입니다. 그 희망고문의 시간 동안, 대표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3. 기술력과 성장성을 인정받았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입니다. 인정받은 만큼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핵심인 '생성형 AI 기반 금융 중개'는 멈춰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매일 새로운 LLM(거대언어모델)이 나오고, 경쟁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옵니다. "기술력 좋다"는 칭찬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개발해야 합니다. 더 비싼 GPU를 써야 하고, 더 뛰어난 개발자를 모셔와야 하고, 인도네시아 현지 데이터를 더 많이 학습시켜야 합니다.
즉, 성장한다는 것은 돈을 더 빨리, 더 많이 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투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써야 할 돈의 단위는 커져만 갑니다. 이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건너는 동안, 저는 매일 밤 통장 잔고와 개발 로드맵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합니다.
4. 남들이 보기엔 '박주원 박사'는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일 겁니다. 은행 부장 출신, IT 기업 임원, 공학 박사, 그리고 유망한 핀테크 기업의 CEO. 강연을 나가면 박수를 받고, 링크드인에는 '좋아요'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불 꺼진 모니터를 바라볼 때, 저는 지독한 고독을 마주합니다. 직원들에게는 "걱정 마라, 투자 곧 된다, 우리 잘하고 있다"라고 큰소리치지만, 퇴근길 버스 안에서는 한숨을 쉽니다. '내가 우리 직원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이 거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정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리더란, 자신의 불안을 가장 깊은 곳에 숨기고 남들에게 희망을 파는 직업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멈추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가려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오픈뱅크 플러스'를 통해 처음으로 대출 승인을 받고 기뻐하던 소상공인의 얼굴, 복잡한 금융 상품을 AI가 쉽게 설명해 주자 "이제야 은행이 무섭지 않다"던 현지 사용자의 피드백. 그리고 밤새 코드를 짜면서도 "대표님, 이거 되면 진짜 대박이에요"라며 눈을 반짝이는 우리 개발팀의 열정.
그 순간들이 저에게 말해줍니다. 지금의 이 고통은 무의미한 소모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산통(産痛)이라고.
6.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까요? 저는 '대박 투자'나 '상장(IPO)' 과 같은 로또를 믿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문제 해결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금융 시장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있다는 사실. 우리의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자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자산 증식의 기회가 된다는 사실. 그 '본질'을 놓지 않는다면, 자본은 결국 가치를 따라올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투자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개발 이슈는 터지고, 자금 압박은 제 목을 조여옵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 아침, 다시 말끔한 정장을 입고 직원들 앞에서 웃으며 말할 겁니다.
"자, 다시 한번 파도를 타봅시다. 우리는 반드시 됩니다."
이것이 고독해도,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숙명(宿命)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창업가들, 특히 '투자 혹한기'를 버티고 계신 핀테크 대표님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화려한 무대 뒤편, 우리 모두는 비슷한 어둠 속에 있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합니다.
K-핀테크, 인도네시아에서 통했다. 인니 지방은행 디지털 전환 가속…인니의 토스 "링크핀"
박주원 (주)링크핀 대표이사 /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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