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엔지니어링 NCS를 만들며
지난 1월, 한 제조기업 AI 담당 임원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박사님, 저희가 생성형 AI 엔지니어를 채용하려고 하는데요. 직무기술서(JD)를 도저히 못 쓰겠어요. 이 사람이 파이썬 코딩을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프롬프트만 잘 쓰면 되는 건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건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뭘 검증해야 할까요?"
저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기업들은 앞다퉈 AI를 도입했고, 구인 공고엔 "생성형 AI 역량 필수"라는 문구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역량'이 뭔지 아무도 정의하지 못헀습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88%의 기업이 AI를 도입했지만, 전사적으로 확산시킨 곳은 33%에 불과합니다. 왜일까요? 제가 현장에서 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기술은 있는데, 그걸 다룰 사람의 기준이 없었습니다.
고용노동부(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저는 두렵기도 했고 의무감도 느꼈습니다.
"생성형 AI 엔지니어링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개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NCS란 쉽게 말하면 "이 직업을 하려면 이런 능력이 필요하다"는 국가 기준입니다. 전국의 직업훈련기관은 이 기준으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기업은 이 기준으로 사람을 뽑고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에 뭘 쓰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천 명의 교육 내용이 결정되는 거죠.
첫 회의 날, 다양한 전문가가 모였습니다. 대기업 AI 연구소 팀장, 중소기업 대표, AI관련학과 교수님들, 자격 평가 전문가. 이 분들의 '교육 대상 현장'은 관점에 따라 달랐습니다.
회의 시작 30분 만에 예상했던 충돌이 터졌습니다.
대기업에서 오신 팀장님이 "생성형 AI 엔지니어라면 당연히 파인튜닝, 하이퍼파라미터 조정 같은 기술을 다뤄야죠. 그게 핵심 아닙니까?"
그러자 중소기업 대표님이 조용히 반박했습니다. "그건 대기업 얘기고요. 저희 같은 중소기업에서는 ChatGPT API 제대로 연동하고, 고객 요구사항에 맞춰 결과물만 잘 뽑아내면 바로 매출이 나옵니다. 대기업 기준으로 만들면 중소기업은 써먹을 수가 없어요."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기술 논쟁이 아니구나. 누구의 현장을 대한민국의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 그 선택의 문제구나.
그날 밤, 저는 잠을 못 잤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제 박사 논문을 다시 펼쳤습니다. 저는 "직업분류에 따른 생성형 AI 수용과 사용행동"을 연구했습니다. 10개 직업군, 수백 명의 직장인을 인터뷰하고 설문했죠.
그때 발견한 사실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AI 기술 스펙을 보지 않습니다. "이게 내 퇴근 시간을 앞당겨주는가"만 봅니다.
사무직 직원들은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여줄 도구"로 봤어요. 반면 디자이너들은 AI를 "내 창작물을 훔쳐갈 경쟁자"로 봤습니다. 똑같은 ChatGPT인데 받아들이는 감정이 정반대였습니다.
더 중요한 발견은 이거였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AI를 배워도, 회사가 지원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안 씁니다. 데이터가 부서별로 따로 놀고, 법적 리스크 가이드라인이 없고, 상사가 "AI 말고 네가 직접 해"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방향을 정했습니다.
"기술을 얼마나 깊이 아느냐"가 아니라, "비즈니스 문제를 AI로 어떻게 푸느냐"를 표준으로 삼자.
두 번째 회의에서 저는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 능력단위를 '생성형 AI 기반 프로덕트 목표 수립'으로 하면 어떨까요?"
한 분이 의아해하셨어요. "모델 선정이나 구현 기술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왜 '목표 수립'부터 시작합니까?"
저는 제가 컨설팅했던 실패 사례들을 떠올렸습니다.
매출 2조 규모 제조기업. AI 서버에만 50억 원을 썼는데, 1년 뒤 재무제표엔 숫자 하나 안 바뀌었습니다. 왜? "왜 이걸 하는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할 건지"가 불명확했거든요. 기술은 있었는데 목표가 없었습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왜 AI를 쓰는지, 이걸로 뭘 달성할 건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AI를 도입해도 잘 안될 겁니다."
그래서 '생성형 AI 기반 프로덕트 목표 수립'을 첫 번째 능력단위로 정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AI 도입 전에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입니다.
우리 회사의 어떤 문제를 풀려고 AI를 쓰는가?
사용자는 진짜 이걸 원하는가?
법적·윤리적 리스크는 없는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NCS는 단순히 "뭘 아는가"만 적는 게 아닙니다. 세 가지를 담아야 합니다.
첫째, 지식(Knowledge): 알아야 할 이론과 정보
둘째, 기술(Skill): 할 줄 알아야 하는 실무 능력
셋째, 태도(Attitude):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하는가
저는 특히 '태도' 항목을 쓰면서 오래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법규 및 윤리 규정을 준수하려는 노력"이라는 항목. 어떤 분이 물었어요. "이게 왜 '능력'입니까? 그냥 상식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에 저작권 침해가 있어도 "몰랐어요"라고 하는 엔지니어와, "이게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엔지니어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기술의 윤리를 '능력'으로 정의하는 것. 이게 제가 이 NCS에 담고 싶었던 철학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최신 정보 습득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였습니다.
AI는 6개월마다 판이 바뀝니다. 지금 배운 모델이 내년엔 구닥다리가 됩니다.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배우는 사람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배우려는 태도' 자체를 능력으로 넣었습니다.
2025년 12월 16일. 고용노동부가 생성형 AI 엔지니어링 NCS를 확정·고시했습니다.
그날 저는 기쁘기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더 컸습니다.
이제 전국의 직업훈련기관이, 대학이, 기업이 제가 참여해서 만든 이 기준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평가할 겁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24개 대분류, 1,096개 세분류, 13,296개 능력단위로 세분화 된 국가직무능력표준이 있습니다. 생성형 AI 엔지니어링은 그중 가장 최근에 추가된, 가장 빠르게 변하는 영역입니다.
이 NCS는 2030년까지 유효합니다. 5년.
5년이면 AI는 또 얼마나 바뀔까요? 지금 제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쓴 항목이 3년 뒤엔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트너가 최근 그렇게 예측했으니까요.
만약 제가 잘못 판단했다면?
만약 현장과 안 맞는다면?
사람이기에 당연히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만, 기준이 없으면 아무도 못 가르칩니다.
불완전한 지도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길을 나설 수 있다고 믿으며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기술은 매일 바뀌지만, "사람이 무엇을 책임지는가"는 바뀌지 않습니다.
AI가 10초 만에 보고서를 씁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우리 회사 전략에 맞는지 판단하는 건 사람입니다.
AI가 코드를 자동 생성합니다. 하지만 그게 법을 위반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건 사람입니다.
AI가 고객 응대를 합니다. 하지만 잘못됐을 때 사과하는 건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뭘 아는가"만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는가"까지 담았습니다.
혹시 지금 현장에서 생성형 AI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
이 NCS에서 정의한 능력들(사용자 요구사항 분석, 법·윤리 리스크 식별, 목표를 측정 가능하게 만들기, 이해관계자 합의 도출)이 현장과 얼마나 맞나요?
"이건 현실과 안 맞습니다"
"이게 빠졌습니다"
가감 없이 들려주세요. 댓글로, 메일로, 어떤 방법으로든.
왜냐하면 국가 표준은 상아탑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피드백으로 살아 숨 쉬는 거니까요.
저는 258일 동안 수 많은 전문가와 함께 이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완성은 여러분의 현장에서 시작될 겁니다.
2025년 12월, 생성형 AI 엔지니어링 NCS 개발을 마치며
�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 1. 귀사에서 생성형 AI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신가요? 목표 수립 단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질문 2. 위 능력들(요구사항 분석, 법·윤리 검토,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이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가요?
질문 3. "이건 꼭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능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030년 개정 시 반드시 검토하겠습니다.
[관련 자료]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누리집
#생성형AI #NCS #국가직무능력표준 #인재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