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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유정 May 01. 2022

연당

비건과 사찰 음식에 관하여

 비건(vegan)으로 만든 음식이나 제품들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 다채롭게 성장하는 비건 문화. 채식주의는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을 것인가.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가 되고 말 것인가.


 ‘비건’이라는 말을 들어본 것은 고등학생 시절 식문화를 배울 때였다. 음식의 유래와 배경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비건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과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먹어왔던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가지게 되었다.


 또 다른 비건의 이유 중 하나는 살생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여 채식 중심의 식문화가 발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절에서 먹는 음식은 주로 직접 재배하여 신선한 나물, 채소 등으로 요리한 것들이다. 사찰음식은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레시피 책으로 출간하거나 TV, 인터넷 등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해외에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음식을 배우러 오거나 맛보러 오는 관광객도 제법 있다.


은진사 들어가는 길

  

 나 또한 비건 음식을 느껴보고 싶었고 그중 하나인 사찰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산 기장에 연잎밥을 파는 식당 <연당>에 다녀왔다. 부산  기장의 은진사에 위치한 식당으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한적함이 마음에 들었다. 은진사 입구에 들어서자 12 보살과 12 간지가 세워진 동상들이 있었고 동자스님으로 보이는 장난감이 염불을 외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사찰 곳곳을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보며 새소리, 대 나뭇잎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느린 걸음으로 방문객들의 흔적과 빨간 열매와 불상과 소원 성취 양초가 타들어 가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찰을 눈에 담은 후 먹어 보고 싶었던 연잎밥 정식을 먹기 위해 <연당>으로 들어섰다.


따스했던 식당 내부


 식당 입구에는 단아한 한복의 치마가 연상되는 풍성한 촛농이 오색 찬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술관에서 보았다면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될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연잎 등이라던지 색색깔의 한지로 씌워놓은 조명등이라던지, 정성을 다해 키운 난초들이 보는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따뜻한 난로가 쌀쌀해진 날씨로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었다. 또 하나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건 구수한 차와 따끈따끈한 백설기였다. 새하얀 백설기와 담백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연잎밥 정식이 준비되어 테이블 위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젓가락을 들기 전 음식의 가짓수를 세보았는데 무려 17가지였다. 다채로운 음식에 들뜬 마음이었지만 천천히 하나씩 음미해보기로 했다. 음식은 전체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다.


 

연잎밥과 꽃송이버섯 초무침 샐러드,

두부구이와 달래장과 간장 콩불고기,

배추김치와 취나물 겉절이,

김무침과 양배추 피클,

콩잎장아찌와 시금치무침,

동치미 흑임자 소스를 곁들인 데친 연근,

땅콩 분태를 곁들 인새 송이버섯 조림 와 시래기 강된장,

도토리묵 말이와 부추전 그리고 양배추전


 

연잎밥은 푹 익혀진 연꽃잎에 쌓여 있었는데 그 속살은 연잎 향이 쌀과 콩에 진하게 배여 입속에 넣을 때마다 밥을 먹는 건지 연잎 향을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러 음식들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꽃송이버섯 샐러드는 화려한 모양만큼이나 맛도 화려하고 새콤했으며 꼬들꼬들했다. 초장과 머스터드 소스의 비비드 한 색감과 새콤한 맛이 음식을 먹는 내내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해주었다.

 두부구이와 달래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닐까. 적당한 기름을 머금은 두부의 부드러움을 달래장의 향긋함이 감싸주었다. 아삭아삭한 식감의 연근은 또 어떤가. 담백한 맛과 고소함의 대명사인 검은깨 소스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매력적인 시래기 강된장은 자작하게 뚝배기에서 끓여서 한 숟갈 떠먹으면 짭조름하고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혀끝을 감돌며 밥 한 숟갈을 떠오르게 했다. 밥과 된장은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도토리묵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네모진 갈색깔의 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도토리묵의 진미를 알게 된다. 씁쓸한 맛의 묵이 마냥 쑤게만 느껴지지 않고 달큼하게 느껴지는 게 그 속에 적당한 달큰함과 진한 도토리향이 묘하게 중독성 있다. 오이를 얇게 저며서 묵의 길이와 같게 썰어둔 빨간 노란 파프리카와 함께 묶어 둔 모습은 그 정성이 느껴져 소중하게 먹고 싶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송이버섯은 쫄깃쫄깃한 식감으로 짭조름하게 간장에 조려 땅콩 분태를 곁들여 먹으니 고소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져 혀끝에 만족감을 주었다.

 부추를 곱게 즙 내서 고운 색감의 천연 초록색으로 얇게 전을 부친 부추전은 특유의 알싸함과 바삭함이 매력적이었다. 양배추전은 참 담백했다. 개인적으로 양배추를 참 좋아한다. 양배추는 만능의 식재료라고 생각하는데 채를 썰어 샐러드로 먹어도 그만이고 입맛이 없는 날 찜기에 살짝 쪄서 찬물에 식혀서 밥과 함께 된장과 함께 싸 먹어도 좋으니까 말이다.


 정성스러운 한 끼를 먹으며 드는 생각은 음식이란 같은 식재료로 만들어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랑 함께 이야기하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게 음식의 맛이다. 이것이 음식이 주는 다양한 매력이 아닐까?


 이날 느낀 사찰 음식에 대한 나의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벼움이 속을 편하게 달래주었다. 이 가벼움이 누군가에게는 심심함으로 와닿을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먹는 내내 편안함과 따뜻함을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성스러움과 편안함을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건 비건은 분명히 성장할 만큼 매력이 있다는 것 아닐까?




Written by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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