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화에 미친 사람

by 김수정
0666_조희룡_매화서옥도.jpg

조선 말기의 서화가인 우봉 조희룡(又峯 趙熙龍, 1789~1866)은 노론 북학파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장(長)제지였습니다. 함께 문하에 있던 소치 허련, 고람 전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습니다. 문하생들은 인품이 훌륭한 조희룡을 좋아하며 잘 따랐습니다. 조희룡은 스승에게 충정을 지켰습니다. 나중에 김정희가 권력을 잃고 친구인 영의정의 일에 연루되어 함경도로 유배되었던 1851년, 조희룡은 김정희의 최측근으로 연좌되어 전남 신안에서 삼 년간 유배 생활을 할 정도였습니다.

조희룡은 김정희가 주창하였던 서화동원(書畵同源, 조맹부(趙孟頫)가 강조한 것으로 글씨와 그림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림의 붓이 곧 글씨의 붓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림이 문인의 글 정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기억하고 드러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노력은 결국 감각적인 조형력에 가 닿게 됩니다. “글씨와 그림(書畵)은 손재주(手藝)이므로 손끝에 있는 것이지 가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재주가 없으면 비록 총명한 사람이 종신토록 배워도 잘 할 수 없다.” (조희룡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

조희룡이 가진 뜨거운 감각은 사군자(四君子) 중 그가 가장 좋아했던 매화(梅花)에 대한 애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매화두타(梅花頭陀)’라는 호를 지어 붙일 정도로 조희룡은 매화를 사랑했고 자연히 매화를 그리기도 좋아했습니다. 「매화서옥도」나 「홍매대련」 등의 걸작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산세 깊은 곳 큰 바위 사이 선비가 책을 읽는 작은 서옥(書屋) 밖을 거대한 매화나무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리듬감있는 농묵의 붓질이 화면에 힘있게 가득합니다. 엷은 난색의 물감이 따뜻함을 풍부하게 더합니다. 하얀 물감이 톡톡 찍히며 흐드러지는 매화의 꽃잎을 표현합니다. 크고 둥근 창문 사이로 화병에 꽂힌 매화를 바라보는 선비가 고아합니다. 이 선비는 조희룡 자신입니다.

조희룡 이전에는 이토록 풍성하고 화려한 「매화서옥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한한 여백 사이에 절제되고 단순한 매화도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난 조희룡의 작품은 화면을 꽉 채우는 풍부함으로 먹의 오채(五彩)가 가진 색채와 격정을 내뿜습니다. 이러한 격정 덕분에 우리는 조희룡의 열정과 매화에의 사랑, 「매화서옥도」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유유히 노닐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