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누리 Jul 31. 2015

연희동 맥주가게 풍광

맥주가게는 즐거워!

아르바이트하는 펍의 주방 이모는 위층의 고급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곧잘 얻어오신다. 고것은 아르바이트의 좋은 점 다섯 개에 꼽히는 장점이다. 머그잔에 얻어온 에스프레소를 몇 잔의 유리맥주컵에 나누어 붓고 정수기물을 개인의 취향대로 차례로 부으면, 나는 손님이 거의 없는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기다란 바에 앉아서 해피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온 가게에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다가, 바의 높은 의자에 앉아 부산스럽게 다리 까딱거리기를 하면서 테라스에 차곡차곡 찍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는 일은 아주 유쾌하다. 어쩜. 이세상에 신발이 을마나 많으면, 이곳에서 발구경을 하는 석달동안 같은 신발을 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다른 신발을 신고서 모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느지막한 여름해가 저물고, 테이블이  하나둘씩 차기 시작하면 주방이모는 남은 안주도 잘 내어주신다. 그러면 나는 이모가 주신 감자튀김이나 먹태쪼가리를 질경이다가, 손님이 오시면 고것들을 한쪽 볼따구니 옆으로 잽싸게 밀어 넣고 태연하게 어서오세여 한다.


가게에는 기네스, 하이네켄, 파울라너, 에딩거의 생맥주 기계가 있다. 거품의 비율이 적절하도록 고급 생맥주를 따르는 일은 예전에 일하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쏘프트 아이스크림을 짜내는 일보다 서너 배는 어려웁다. 그 덕분에 오래된 사장님께서도 자주 실수를 하셔서, 잘못 따른 고급 맥주는 고스란히 나의 노동주가 된다. 이것 역시 일터의 좋은 점 다섯 개 중의 하나이다.



테라스의 동그란 테이블 세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테라스로 서빙을 가는 발걸음은 가벼웁다. 테라스에서 딩동벨이 울리면 나는 테라스에 나가서 선선한 여름밤 공기 한 모금 마시고, 욕심내어 허리도 뒤로 꺾어 하늘도 삼초 바라본다. 그리고 천정이 있기도 없기도 한 이곳은 참 좋은 일터라는 생각을 한다.



넥타이 맨 연희동 킹스맨들과 롱스커트 찰랑거리는 이모들이 우리 가게의 주요 고객이다. 홀에는 동네 사람들의 먹고사는 흔한 이야기 몇가지가 동시에 울려 퍼지고, 나는 부지런히 먹태를 씹으면서 사장님 몰래 내가 응원하는 팀의 야구경기를 본다. 

이곳은 참참 좋은 연희동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