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Apr 08. 2020

15년 만의 인사

안녕,  나의 고양이

벌써 둘째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이제 서서히 적응을 하는지 거실에 나와서 눕기도 하고 첫째가 쓰던 반려묘용 텐트에 관심을 보인다. 다행히도 첫째랑 취향이 비슷한지, 고양이 장난감인 오뎅꼬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와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첫째가 다리를 건넌 지 이제 한 달이 지나서,  나는 아직 마음을 추스리기 벅찼다. 원래 둘째를 이렇게 빨리 데리고 올 생각은 없었지만, 둘째의 입양 공고가 올라온 지 2개월이 넘었었고, 분양자분이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는 집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너도 힘들겠지.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나도 힘들지만 서로 잘해보자."

이렇게 속으로 다짐하면서 둘째를 쓰다듬었다. 

 

둘째를 보면 첫째가 생각난다. 3년 전인 2017년 5월경, 나는 한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외국에서 귀국하여 어렵게 자리 잡은 회사였지만, 생각보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적자생존을 하는 회사생활이 나에겐 맞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짬짬이 스트레스도 풀 겸, SNS에서 고양이 사진을 보곤 했다. 그냥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많이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가 문뜩 어느 고양이 사진에 눈이 고정되고 말았다. 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긴털을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었다.


우리 집에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강아지가 있었다. 갈색 털을 가진 단모 치와와였는데,  뚱뚱한 비만견이었다. 아마도 사료를 너무 많이 먹었으리라 생각했다. 이름은 '밤비'였는데, 아기 사슴 밤비처럼 코가 까만 밤하늘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 녀석은 내가 중학교 때까지 함께했다. 밤비가 다리를 건너고 나서 몇 년 뒤에 엄마가 고양이를 데려왔다. 고양이가 다리를 건너자 강아지가 왔다. 이렇게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성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반려동물이 없던 시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는데, 잠시 일시 귀국을 하긴 했지만, 계속해서 외국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결혼 때문에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을 생각하면 장장 15년 정도 세월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했다. 


사실 내가 살던 곳은 고양이가 사랑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혼자 살고 있는 처지라 생명을 책임지도 돌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남편은 매우 당황한 듯한 이모티콘을 보냈다. 참으로 남편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를 꼬박 하루를 설득해서 고양이 목욕은 내가 시킨다는 조건으로 입양에 합의할 수 있었다.  


다음날 내가 봤던 보호소에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입양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잠시 멍하고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15년 만의 기회를 날릴 수 있겠는가? 드디어 나에게도 묘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이걸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마침 SNS에서 누군가가 스마트폰 앱을 보면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많다고 정보를 주었고, 나는 수소문 끝에 집 근처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호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는 보호소가 아닌 동물 병원에 있었는데 전화를 해보니, 입양 희망자가 있지만 포기할 수도 있으니 하루 정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아 정말 고양이를 입양하기란 어렵구나.' 

이렇게 푸념하면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전화로 확인해 보니 입양 우선권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신이 나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기분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 월급이 올랐어도 이 정도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동물 병원 원장님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철창으로 된 입원실에 있었다. 3살로 추정되는 페르시안 친칠라라고 했다. 원래 하얀 털인 듯했지만 유기묘인 탓에 털은 심하게 때가 탔고 눈곱도 심했다. 내가 아이에게 다가가자, 아이도 철장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철창 사이로 살며시 손가락을 넣었다. 


그러자 아이는 하얀 머리로 내 손가락을 있는 힘껏 쓸어 올리며, 


"우왕...  우와와"

야옹도 아니고 냐옹도 아닌, 우왕에 가까운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자신을 구해달라는 소리임에는 분명했다. 


이것이 우리의 첫인사였다.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반응이었지만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 너무 기뻤다.

'우왕'으로 시작되는 이 인상적인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는 15년 만에 나눈 고양이와의 인사였고, 아마도 평생 기억될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집사의 길이 열린 것이다. 

입양 앱에  올라왔던 첫째의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여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