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
(spoiler)
재작년에 본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뭐였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잠시나마 몰입하게 만들어줬던 이 시리즈, 거의 1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왔다. 이번엔 무엇이 달라졌을지, 어떤 색다른 참가자가 나올지, 어떤 요리가 나올지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달려보았다.
일단 시즌 1과는 거의 유사한 전개 방식을 보여줬다. 큰 변화를 주어 색다른 시도를 하려 했다면 오히려 독이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은 점은 좋았다. 어차피 '요리'라는 주제가 뻗을 수 있는 가지의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시즌 1의 신선함을 이번에는 요리사들에게 더 많이 맡기는 느낌이었다. 이에 요리사들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듯이 그 기대에 부응했다. 스님의 사찰 음식부터 주모님이 직접 내리는 술, 오래됐다고는 하지만 처음 보는 분자 요리, 토끼 간을 비롯한 토끼 요리 등 생소한 요리들부터 '저렇게까지 해?'라는 생각이 드는 요리까지, 정말 다양한 요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각 요리사들이 가진 요리 외의 매력도 이전 시즌 못지않게 꽤 흥미로웠다. '앙'을 시전하는 아기 맹수부터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희귀병을 극복한 무쇠팔, 어떻게 보면 최고의 빌런이었지만 최고의 실력으로 준우승한 요리 괴물, 신속함을 무기와 매력으로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임짱, 매 순간이 <노팅 힐>의 휴 그랜트를 연상케 하는 손종원, 최고의 요리 경력과 겸손함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후덕죽, 한 가지 조리 방식으로 결승까지 달린 후 마지막엔 다른 방식으로 감동을 주며 값진 우승을 차지한 연쇄 살인(조림)마 등 앞으로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할 것으로 기대가 되는 분들이 역시 많았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변화된 부분도 있다. 우선 그렇게 재밌었던 시즌 1에서의 아쉬운 부분이었던 인플루언서(먹방 크리에이터 등) 초청 라운드나 편의점 재료 요리 라운드 등은 전부 제외됐다. 변화를 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의 피드백을 수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리하는 수많은 요리사들의 실력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었기에 아쉽게 느껴지는 라운드가 이번엔 없었다는 점이 나에겐 매우 좋았다.
이렇게 추가된 몇몇 라운드 중 가장 신선하고 좋았던 건 2인 1조 흑백 연합전에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한 2명의 조원의 조리대가 돌아가 서로를 마주 보며 대결 상대가 되는 라운드였다. 특히 요리 괴물의 실수를 만회시키며 본인의 조를 생존 후보까지 올린 손종원 셰프가 결국 이 대결에서 요리 괴물에게 떨어지는 그림은 헛웃음이 나왔을 정도. 사실 시즌 1을 포함한 그 이전까지 보여줬던 라운드들에서는 재미의 요소가 컸었지 신선함이 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시즌에서는 이렇게 신선함까지 잡으려고 과감한 시도를 했고 그게 잘 먹힌 것 같아 재미가 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완성된 결승 조합, 최강록 vs 요리 괴물은 마치 히어로물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순하디 순하지만 힘은 엄청나게 센 주인공, 수많은 히어로들을 물리치고 그마저 압도하려는 최고의 빌런, 게다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서사까지, 이런 면에 있어서 결승전 몰입도는 누가 우승하는지 스포일러를 당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1보다 더 좋았다. 요리 주제, 요리 방식, 심사 방식, 서사 등 결승전의 긴장감을 어느 정도 가져가면서 요리와 요리사의 비중을 1:1로 가져가는 무게감까지 챙겼다. 결국 여느 히어로물의 결말이 그랬듯 우승은 최강록. 재도전으로 우승을 함과 동시에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 2에 이어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두 번의 우승을 한 셰프가 됐다.
아직 두 시리즈만 나왔지만, 이 시리즈는 마치 나에게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번 똑같은 장난감들 나오고, 얘네들끼리 뭐하는지 그냥 들여다보는 시리즈인데 그게 엄청 신선하고 재밌는, 그래서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하는(올해 중순 토이 스토리 5 개봉 소식이 있음), 이런 공통점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리즈에도 적용되는 점인 것 같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연출, 그것들을 맛깔나게 살려내는 출연진들, 신뢰도와 주관력을 가지고 있는 심사위원들, 그리고 너무나도 맛있어 보이는 다양한 요리들까지, 모든 요소들이 하나하나 흥미롭고 재밌다. 시즌 3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온다면 또다시 이러한 요소들을 기대하며 볼 것이고, 또다시 재밌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근데 만약 나온다면 심사위원은 바뀌겠지?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요리사분들,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해주신 말씀,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소중히 여기면서 더 열심히 음식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 우승자 최강록 셰프 소감
4.5 / 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