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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연필 Jul 05. 2020

내 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으면

내가 두려워하는 내 성격의 단점들


  아이가 뱃속에서 있을 때는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기도했다. 하지만 아이가 막상 세상 밖으로 나오니, 우리 아이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낫게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키도 많이 컸으면 좋겠고, 성격도 밝았으면 좋겠고, 똑똑하고 야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남편은 다 필요 없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데 엄마는 참 욕심이 많다. 5살인 딸아이는 갈수록 나를 닮아가고 있다. 어린이집 체육시간에 찍은 동영상들을 보면, 운동을 잘하고 싶은 의욕은 있으나 영 폼이 어정쩡하다.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것도 나를 닮았다. 운동신경은 아빠를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이 밖에 곤충과 동물, TV, 책을 좋아하는 것은 모녀가 똑같다. 하지만 나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딸아이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마다 걱정스럽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내성적인 성격


  "선생님,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나요?"

  "노는 친구가 몇 명 정해져 있어요. 여성스럽고 내성적인 편이고요. 놀이할 때, 주도적으로 이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소꿉놀이할 때 역할을 정해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역할이 싫은 표정인데 친구가 시키는 대로 하더라고요. 좀 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아쉬워요."


  부모 피는 못 속이는구나. 내성적인 성향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인데, 부모가 둘 다 내향형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내향형과 외향형 모두 장단점이 있을 뿐 좋고 나쁨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 딸아이가 나처럼 성장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 살면서 내성적인 탓에 불편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격 검사를 할 때마다 보완해야 할 점에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받곤 했다. 우리 아이도 나처럼 속을 끓이며 살아가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짠했다.

 

  어려서부터 나의 성격이 참 싫었다. 학창 시절,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착한 아이였다. 말수가 적고 도드라지지 않고 어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토를 달지 않고 하는 그런 아이였다. 얌전히 있으면 착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드러내야 할 경우, 심적 부담 컸다.  친한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는 낯을 가리고, 발표할 때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기어들어가는지...

  

  나를 드러내는 것을 더욱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다. 고3 때 웅변대회 때문이다. 내성적인 애가 무슨 웅변대회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때까지 태어나서 웅변이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백일장에 나가 종종 상을 탔을 뿐이다. 고3인데 수업도 자주 빠지고, 진도도 빠뜨면서 백일장에 나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 것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  글로 대학을 갈 정도의 실력도 아닌데 자꾸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속사정도 모르고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웅변대회를 준비하라고 했다. 선생님이 지도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선생님의 한 마디에 부랴부랴 원고를 쓰고, 외워 대회에 나갔다.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학생이었기에. 웅변대회 원고를 다 썼으나 외워지지가 않았다.


  결국, 사람들 앞에서 연습 한 번 안 하고 대회에 나갔다. 큰 공연장도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은 원고를 보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손짓 발짓에 배우 뺨치는 연기까지 하며 얼마나 잘하던지... 시작하기도 전에 위축되고 두려웠다. 예상했던 대로 무대에 올라가자, 목소리도 떨렸고 마이크에 울리는 내 목소리도 어색하기만 했다. 초반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원고를 거의 보고 읽다시피 하고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울었다. 아니, 원고를 읽으면서 울먹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서 보는 무대의 스케일과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나를 짓눌렀다. 고3씩이나 됐어도 여전히 나를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고통을 주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때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듯하다.


  성인이 되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무시받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용히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일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나의 에너지를 금방 고갈시킨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1대 1로 만나거나 친한 소수의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은 몇 시간이고 즐겁지만, 다수가 모인 자리는 2시간이 지나면 기력이 빠진다. 동창회라도 하면 2시간쯤 되었을 때, 뇌에서 오는 집에 가자는 신호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내가 싫다고 해서 사람들 앞에 서지 않을 수 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 대사까지 써서 연습을 하고 발표를 했다.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물레이션을 거친다. 떨리긴 했지만 준비가 잘 되었다는 확신이 있으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회의에서 갑자기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에서 버퍼링이 걸려 알고 있는 것도 매끄럽게 답을 못했다.

  

  내성적이지만 살면서 노력해서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난 참 그게 어렵다.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바뀔지라고 뿌리까지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내 성격을  인정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는 보완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장점을 살리는 것이 더 변화가 빠를 것 같다. 우리 아이는 부디 내성적인 성격의 단점을 잘 극복하길 바란다.



둘째, 자신보다 타인을 의식하는 삶


  몇 년 전, 미술치료 프로그램 소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린 것을 보고 강사님은 어떤 심리가 나타난 것인지 해석해주셨다. 어떤 꿈을 자주 꾸는지 추가 질문도 하셨다.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는 말에 강사님은 "이상은 높은데 노력은 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셨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으르면서도 잘하고 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으니 문제다. 남이 정해준 과제는 열심히 하는 편이나 나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해야 하는 자기 계발에는 게으른 편이다. 그저 세상 통념 속에서 타인의 평가에 귀를 쫑긋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을 환기시켜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는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보다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셋째, 대인관계

  

  나는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다. 뭔가 선택을 할 때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을 했더라도 타인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손해를 보는 입장이다. 그 원인을 심리 관련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대인관계에서 경계선을 잘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 양, 나에게 전화해서 남의 험담과 불평만 하는 지인이 있었다. 부담스러웠지만 전화벨이 울리면 받았다. 전화를 끊는 상대방이 마지막으로 "어머, 내 얘기만 했네."라고 말할 때  "괜찮아요 언니,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말로 푸는 게 최고죠."라고 말하고 있었다. 싫은 내색은 하지도 않은 탓에 상대방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해서 1시간 넘도록 털어놓고 기분이 풀렸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 사람은 기분이 풀렸다는데 왜 난 기분이 안 좋아졌을까. 기분이 묘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답답해했고, 칭얼대는 아이 옆에서 뭐 하는 거냐고 정색했다. 끊고 나서야 내가 뭐한 건가 싶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혔다. 경계를 설정하고 표현을 했어야 했다.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 아이는 대인관계에서 경계선을 잘 설정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가 겪었던 성격의 단점을 극복하는 사람으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는 점점 더 나를 닮아갈 것이다. 아이가 잘 성장하길 바란다면 어떤 교육을 따로 시키기보다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책임감을 느끼며 오늘도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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