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와 펩시 제로 민트
나는 이제 민트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Now, I am become Mint, the destroyer of worlds)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았다. 훌륭한 영화였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대가이자 트랜스포머로 유명한 헐리우드의 폭발 연출의 대가이자 폭발 아티스트, 일단 폭탄을 터트리고 보는 영화감독 '마이클 베이'라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함께 본 친구는 말했다.
"여기 나온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네가 폭발만 생각하고 이 영화를 봐서 그래.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내 생각에 이 녀석은 영화 속 인물은 볼 줄 알지만, 핵심적인 주제를 알지 못한 게 분명하다. <오펜하이머>의 주제 그것은...
잠깐 영화 이야기에 흥분했다. 오늘 소개할 음료는 '혹시나' 혹은 '기어코'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콜라계의 원자폭탄(사람을 해하진 않음)이다. 일본에서 출시된 '펩시 제로 민트 야끼소바 전용 콜라'다.
펩시 제로 라임이 유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한동안 루머로 떠돌던 '펩시 제로 신상'도 민트였다. 하지만 현실에 나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던 펩시 제로 민트를 옆나라 일본에서 출시하고 말았다.
펩시 제로 민트를 살펴보자. 600ml의 넉넉한 용량에 0Kcal의 완벽한 스펙. 하지만 야끼소바와 함께 먹으라는 안내 때문에 '제로 칼로리'는 유명무실해져 버린 신세까지 완벽했다.
무엇보다 친구가 민트라면 사족을 못쓰는 민초당원이라는 게 이 모든 계획의 중심이었다. 녀석은 좋아하겠지? 하지만 뚜껑을 여는 순간 너는...
사실 민트향은 콜라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얼음 가득한 잔에 부어진 차가운 콜라,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시원한 애플민트 한 잎을 생각해 본다면. 순간 공기가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아는 친구는 멀리서 구해온 나의 음료에 감동을 멈추지 못했다. "내 생에 민트 콜라를 먹게 될 줄이야!"
그리고 잠시 뒤 돌아와 말했다. "민트... 민트 향이 좀 부족해."
그렇다. 펩시 제로 민트는 민트를 위한 콜라는 아니다. 첫 모금, 중간 모금, 심지어 끝 모금까지 신선한 느낌의 펩시('펩시 생 콜라'라고 부른다) 맛을 유지한다. 그런데 입을 떼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민트향 덕분에 보통 사람들은 '끝이 살짝 다르다', '시원하다' 정도를 느낀다.
하지만 민트에 푹 빠져버린 녀석에게 이 음료는 스포티파이의 1분 미리 듣기,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고편처럼 감질맛만 나는, 갈증을 폭발시키는 콜라였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한(오펜하이머의 또 다른 주제 중 하나는 이과생이 문과생을 놀리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대사를 뱉을 수 있었다.
"네가 민트만 생각하고 콜라를 마셔서 그래,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완성도의 펩시라고!"
문제는 그는 오펜하이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의지의 인물이었고. 이것저것 펩시 제로 민트와 어울릴 법한 것들을 사 왔다. 가장 쓸만한 것은 이 2가지였다.
1. 야끼소바 : '펩시 제로 민트 야끼소바 전용'이라는 제품 이름처럼 이 음료는 시작부터 야끼소바와 어울리는 콜라의 맛을 내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야끼소바의 기름지면서 달콤한 맛을 펩시 제로 민트의 탄산감과 화한 향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야끼소바에는 아무 탄산음료를 붙여도 어울린다는 게 함정이지만.
2. 증류주 : 펩시 제로 민트에 알콜을 타면(향미가 복합한 위스키 같은 걸 제외하면) '펩시 모히또'로 진화가 가능하다. 끝에서 나는 묘한 풀내음을 술의 뜨거움이 확 날려준다.
또한 첫 입에는 아쉬웠던 민트향의 느낌이 마실수록 쌓여간다는 것이다. 이래서 명작은 천천히 반복적으로 음미해야 한다고 하는 걸까? 친구는 이 음료에 완전히 만족을 하고 떠났다.
놀려주려고 시작한 처음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와 달리 선을 행하고 만 마시즘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이 음료는 단순히 친구놀림용 음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야끼소바를 맛있게 먹기 위한 음료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출시 후 세상은 이 펩시를 야끼소바에 가두지 않았다. 맨입으로 마신 후 리액션을 올리고, 리뷰를 올리면 '민트'와 '펩시'는 공존할 수 있는가로 편을 나눠 싸우게 된다.
민트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 취향으로 시작했던 민트파는 세상의 대세가 되었고, 민트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민트치킨', '민트김치'같은 민트의 괴식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옆나라에서 펩시 제로 민트가 나왔다고? 그걸 보고 한국이 가만히 있을까.
펩시 제로 민트가 세상에 나왔다. 우려도 많지만 환호하며 국내 도입을 추진하자는 이들 또한 많다. 아마도 이것은 민트의 연쇄작용의 시작일 뿐이다. 두렵지 않은가(기대되지 않은가).
펩시 제로 민트가 나온 후에 이어질 '펩시 제로 민트 초코'의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