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맥콜이었지만, 나에겐 사랑이었다
술이 원수라면 대학생활은 외나무다리의 연속이라고 할까. 개강모임, 동기모임, 조모임을 마치면 축구를 해서라도 술자리로 끝을 내는 것이 선배들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술자리는 왜 수강취소가 안 되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생수에서 소주 맛이 느껴진다.
잠수를 탈까, 전과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수능을 다시 볼까? 고민하던 신입생을 항상 술자리에 앉게 한 것은 형들이 아니었다. 바로 누나. 한 학번 높은 선배 누나였다. 같은 수업을 듣지 않았기에, 그녀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의 술 모임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도저히 술을 댈 수 없었다. 한 잔만 더 했다간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인생을 졸업할 것 같은 기분.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트에 가더니 음료수를 하나 사 왔다. 맥콜이었다.
맥콜은 어렸을 때 마셔본 적은 있지만, 다시 마셔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누나가 날 생각해서 준 음료라면 사약이라도 허니버터 달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맥콜이라니. 내가 탄산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알콜도 없어.
선배들은 맥콜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맛있다는 사람을 못 봤다는 둥, 저걸 왜 마시냐는 둥. 하지만 나에게는 한낱 질투로 느껴져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짠!' 나는 맥콜을 한 모금 들이키고 깨달았다.
... 그냥 조용히 맥주나 마실 걸. 맛이...좀
수많은 음료수들 속에서 누나는 맥콜을 골랐다. 수많은 선배 후배 남자 놈들 사이에서 나를 골랐다. 이는 분명 우연이 아닌 운명이다. 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도 왜 맥콜이었을까? 몇 가지 추론을 해보았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면, 그것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남들은 별로라고 말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을 때의 끌림은 수준이 다르다. 누나 역시 특이한 취향이 있는 게 아닐까?
맥콜의 디자인은 어떤 시대에 놓아도 튀지 않을 정도로 촌스럽다. 시퍼런색에 샛노란색을 쓰면 주목은 받아도 인기는 없다는 것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촌스러움이 멋스럽게 느껴진다면? 똑같이 유행하는 디자인의 캔들 속에서 돋보였는 맥콜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내가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다시 맥콜을 잔에 따랐다. 콜라를 연상시키는 색깔. 이걸 보리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지극히 한국스러워 애국자가 된 기분이다. 부드럽게 생기는 거품층은 마셨을 때 느낌이 제법 괜찮은데, 금세 사라지는 편이라 아쉬웠다.
맥콜은 뭐라고 할까? 전체적인 아우라는 보리 평야의 나긋함이다. 하지만 정작 시큼한 끝 향이 코를 쏜다. 첫 모금에는 달콤했다가 시큼해지고 짠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탄산은 해변가에 파도처럼 자잘하게 부서지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얼얼하기도 했다. 맛의 색깔이 강해서 열렬히 사랑하거나, 열 받고 저주하거나 둘 중 하나다.
맛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건강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맥콜의 비타민C 함유량이 시중에 있는 비타민워터의 2배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유기농 보리에 허브 추출액까지. 어쩌면 나의 건강을 생각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맥콜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싸니까. 판매처에 따라 다르지만 한 캔에 1,000원을 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은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라는 추론은 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1+1로 받았는지 맥콜 캔 하나가 테이블을 굴러다녔지만...그런 게 아닐 거야.
모든 짝사랑이 다 그러하듯이, 기대는 점점 불안함으로 바뀌었고 이 예감은 귀신같이 들어맞았다. 술자리는 어느새 누나와 다른 선배의 연애를 축하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물론 두 사람은 너무 잘 어울리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맥콜을 마시던 얼굴이 빨개졌다. 분명 알콜은 없을텐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때의 착각을 생각하면 귀가 뜨거워졌다. 다행히도 열병은 가라앉았다. 신기한 것은 그 이후로 맥콜이 맛있게, 적어도 정겹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독특한 맛은 진한 추억을 남겨준다. 짝사랑은 맥콜로 성사되지 않았지만, 맥콜은 사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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