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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Sep 30. 2017

존댓말을 써야 할 것 같은 음료수 9분

#명절을 맞아 인사드립니다. 장수음료수

명절은 어려운 시험문제였다. 말을 늦게 떼었기 때문일까? 나는 가끔 아빠를 형이라고 불렀고, 큰엄마, 사촌누나, 사촌 형까지 머리만 길면 어김없이 누나라고 불렀다가 혼이 났다.


그래서인지 명절 연휴가 되면 상대의 나이를 챙기게 된다. 물론 사람 말고 음료수 이야기다. 오늘은 왠지 존댓말을 써야 할 것 같은 오래된 음료수에 대해 말해본다. 우리는 예절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야구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가 있었다면, 음료에서는 롯데 쌕쌕과 해태 봉봉이 있다. 마시고 나면 미련이 남는 대표적인 알갱이 음료수 형님들이다. 출시된 시기도 비슷한데 이름도 참 기가 막히다. 쌕쌕의 경우는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 야한 광고 7위에 랭크된 적이 있다. 그냥 아기의 숨소리를 쓴 것이다. 음란마귀들아.


최근에는 가끔 자판기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두 음료수 모두 해외에 진출했다고 한다. 이제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마시고 난 후의 미련을 선물하는 짓궂은 형님들이다.


목욕탕에 다녀오면 꼭 마셔야 하는 음료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두 음료수다. 74년생 동갑내기인 서울우유의 삼각커피우유와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이들의 출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64년 서독을 방문해 일상적으로 우유를 마시는 독일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렇게 우유급식이 시작된다.


하지만 하얀 우유는 아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고민 중에 나온 것이 맛과 생김새를 독특한 우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커피우유와 항아리를 닮은 바나나맛 우유가 탄생했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이 녀석들을 찾았다. 40년이 넘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1970년대의 한국사회는 고정관념이 많았다. 야쿠르트라는 한국 최초의 발효유를 두고도 "어디 세균을 마시라고 파냐!"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하긴 유산균이니까 세균은 맞구나.


이런 세균... 아니 야쿠르트가 판매되는데에 일조한 것은 어머니들 덕분이다.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없었는데, 한국 야쿠르트에서는 47명의 주부를 고용하여 판매원을 맡긴다. 오늘날 야쿠르트 아줌마의 시작으로 그녀들은 그동안 야쿠르트를 무려 480억개를 팔았다. 그녀들의 방판의 전설은 여전히 쓰이는 중이다.


한국인의 포션, 마감의 수호자 등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국민 피로회복제 박카스다. 산업화 시절인 1960년대 노동으로 인한 사람들의 피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는 알약이었는데 자꾸 녹아버려서, 지금의 음료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에 D를 붙였다. 원피스를 보면 알겠지만 D가 붙은 녀석들은 뭔가 있다.


국내의 피로시장을 정복하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 올해까지 팔린 박카스가 무려 200억병이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야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라는 광고음악 하나로 환타를 물리친 전설의 음료다. 이후 나온 써니텐과 향 탄산음료 시장을 양분한 음료. 바로 오오오오♬ 오란씨다.


광고음악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오란씨걸이다. 요즘은 포카리스웨트에 그 왕관을 넘긴 것 같지만, 왕년의 오란씨걸들은 당대의 과즙미가 넘치는 스타들이었다. 최초의 오란씨걸은 누구였을까? 1대 오란씨걸은 윤식당에 나온 윤여정 선생님이시다.

음료시장도 맛있는 음료수가 살아남기보다, 살아남는 음료수가 맛있다고 볼 수 있다. 칠성은 최초의 사이다는 아니었지만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이다다. 그렇게 칠성사이다는 최장수 사이다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70년 가까이 1위를 놓친 적 없는 디펜딩 챔피언이다.


칠성. 이름부터가 연륜이 느껴진다. 북두칠성이나 드래곤볼 등을 생각했었는데, 칠성사이다 창업주들의 성씨가 7개여서 칠성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박진영씨가 작곡한 노래에 JYP나오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야겠지?

의약품이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활명수는 속이 꼬인 마시즘이 다른 음료수만큼이나 많이 마신 음료다. 활명수를 안 마셔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조선시대의 왕 고종도 마신 최초의 소화제다. 국내에 있는 상표 중에 가장 연배가 높다. 무려 120살로 환갑을 두 바퀴 덤블링했다.


단순히 소화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스펙을 더 하자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준 음료수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이 땅을 밟고 있으니 그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물(활명수)'가 아닌가.


음료수님 제가 당신을 마셔도 좋을까요?

한 해에도 많은 음료수가 출시되고 사라진다. 하지만 편의점과 마트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된 음료수들이 제법있다. 각각 시대의 요구에 맞춰 나왔고, 당대 사람들의 취향을 대변하는 음료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절도 다가오는만큼 오늘만의 존경을 가득 담아 음료수의 뚜껑을 연다. 제가 음료수님을 감히 마셔도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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