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텔러 _ 여행자들의 바 경주 바 프렙(prep)
여행과 칵테일 바의 공통점, 그것은 일상적인 공간을 벗어나 특별한 순간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만나는 바는 어떤 느낌을 우리에게 전달해 줄까?
그렇게 도시를 떠나 '경주'로 향했다. 천년의 도시 경주는 떠오르는 관광도시다. 건물은 낮고, 사람들은 여유롭고, 파란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가 경주에서 간 곳은 불국사도, 첨성대도, 황리단길도 아니었다. 바로 푸른 봉황대를 마주하고 자리 잡은 '바 프렙(bar prep)'이다.
이곳은 다른 바텐더들이 추천한 바이기도 하면서, 경주에 다녀온 사람들 역시 추천하는 공간이었다. 대체 바 프렙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바 프렙의 검은 문을 열었다. 그러자 햇살이 내리쬐는 우드톤의 공간이 펼쳐졌다. 순간 '바 같이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 트인 창가에는 왕릉의 풍경이 보였다. 뷰가 아름다운 카페가 생각나는 바 프렙 안에는 이곳을 만들고,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박조아'바텐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이동을 해 온 우리를 위해 커피를 내어주었다. 잠깐만, 이러니까 정말 카페 같은데?
Q. 저희가 다녀온 바들 중에서 가장 밝은 바입니다. 심지어 오후 4시에 일찍 문을 여는 것도 신기했어요. 바 프렙을 만들 때 분명 기존에 있는 바들과는 다르게 운영하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나요?
(왕릉이 보이는 특별한 바)
박조아 바텐더 : 오랫동안 바텐더로 일하면서 '나만의 바'가 생긴다면 두 가지는 꼭 해보고 싶었어요. 하나는 더 이상 지하에 가지 않겠다(웃음)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낮에 일하는 바텐더'가 되겠다였어요. 그런 마음이 반영된 것이 이곳 '바 프렙'이 아닐까 싶습니다.
Q. 바텐더들에게 오후 4시면 정말 아침이 아닌가요(박조아 바텐더 :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긴 하죠)? 또 다른 바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주'에 있다는 것인데요. 바텐더님은 서울 쪽 바들에서 근무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내려오셔서 바를 낸 계기가 있을까요? 혹시 경주가 고향이라거나...
박조아 바텐더 : 경주가 고향은 아니고요. 원래 경주를 좋아했어요. 서울에서 바텐더로 일 할 때도 경주는 자주 놀러 왔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Q. 여행을 좋아하는 바텐더이시군요. 저는 바텐더분들은 생활 시간대가 달라서 여행을 잘 안 하시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요.
박조아 바텐더 :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바텐더로 일하면서 번아웃이 왔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전국여행을 돌았어요. 그런데 여행을 가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곳의 바를 가게 되더라고요(웃음). 지난번에 만나셨다는 전주의 <진주도가>도 갔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에 대한 매력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요.
박조아 바텐더 : 제 생각에 좋은 바들은 맛있는 음료도 있지만, 그런 대화와 공간에서 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렇게 바에 대한 저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런 공간을 만들자 해서 '바 프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경주에 '바 프렙'을 내게 된 계기도 전국여행을 하다가 이곳이다 싶어서 낸 것일까요?
박조아 바텐더 :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집 근처인 일산에 바를 낼까, 아니면 좋아하는 도시인 경주에 낼까 고민을 하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경주가 다 좋은데 하나 아쉬운 게 칵테일 바가 없더라고요. 이곳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과 맛있는 칵테일, 그리고 편히 쉬는 대화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Q. 그렇게 이 공간이 탄생했군요. 멀리 까지 와서 바를 만들었으니 여러 고생과 보람이 있었을 거 같아요. '바 프렙'을 준비하며 생각나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박조아 바텐더 : 내려와서 바를 준비하고, 시그니처 칵테일도 만들면서 취해서 이곳에서 자기도 하고(웃음) 그랬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오픈 날이었어요. 이곳이 제 생각보다 공간이 넓거든요? 그런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와 엄마, 그리고 급하게 구한 아르바이트 1명이었어요. 심지어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죠.
Q. 맙소사 첫날부터 엄청난 난이도네요. 그래도 첫날이니까 부족하지만 차근차근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박조아 바텐더 : 그런데 첫 오픈날에 만석이었어요. 따로 바 오픈을 알리고 홍보할 정신도 없었는데 다들 이런 공간이 생기는 걸 기대하고 좋아해 준 기억이 나요.
그런 바 프렙이 문을 연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바 프렙에는 숙련된 바텐더들이 자리를 잡고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해 준다. 맛있는 시그니처,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는 어느 유명 바들과 다름이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정말 다른 점은 바 프렙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걸까?
Q. 바 프렙이 생겼을 때 칵테일을 좋아하는 현지 사람들은 정말 기뻤을 거 같아요. 그런데 또 경주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잖아요. 바텐더님 생각에 바 프렙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이 많을까요?
박조아 바텐더 : 처음에는 아무래도 현지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점점 나서 이제는 경주에 관광을 온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입니다. 그래도 아직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박조아 바텐더 : 재미있는 점은 여행객의 대부분은 바를 평소에 즐기지 않은 손님들이 와요. 여행을 왔으니까 기분 좋게 술 한 잔을 할까 하면서 이곳에 오는 거죠. (Q. 그러면 인생 첫 바가 프렙이 되는 경우가 많겠네요) 맞아요. 그 뒤로 칵테일의 세계에 빠져서 다시 놀러 오시는 경우도 있고요. 나름의 책임감도 생기죠. 우리는 이 경주를 처음 오고, 바 프렙을 처음 오고, 또 칵테일 문화를 처음 접할 사람들을 안내해야 한다고.
Q. 그런 생각들이 바 프렙의 시그니처에 표현되어 있나요?
박조아 바텐더 : 당연히 칵테일은 맛있어야 하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해요. 하지만 제 생각에 바 문화의 매력을 느끼려면 칵테일을 시작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해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죠. 저희는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해서 손님들에게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범한 칵테일, 유행하는 칵테일을 파는 공간들은 많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바 프렙이 가지고 있는 칵테일이 궁금해졌다. 경주에 왔지만 칵테일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바 프렙은 어떤 시그니처를 선보이고 있을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힐끗힐끗 보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이처럼 세련된 공간 한쪽에 전통주가 보인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도시에서 바를 낸다고 한옥이나, 전통콘셉트는 하고 싶지 않았던 박조아 바텐더는 가장 경주다운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시그니처 칵테일'에서 경주를 표현하기로 하였다.
Q. 방문했을 때부터 계속 기다리던 칵테일이 있었습니다. '바 프렙'을 검색하면 항상 얼굴무늬 수막새가 그려진 칵테일이 뜨더라고요. 혹시 그걸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박조아 바텐더 : 아 당연하죠).
박조아 바텐더 : 이 칵테일의 이름은 '경주 법주 사워'예요. 이 지역의 전통주인 경주법주를 훨씬 마시기 좋게 새콤달콤한 사워로 만들어보았고요. 계란 흰자 거품을 만들어서 포근한 느낌과 함께 그 위에 그림을 띄워 올려주고 있어요.
Q. 이렇게 귀여운 칵테일을 처음 봅니다. 경주를 여행하시는 분들이 이걸 꼭 찍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맛도 너무 대중적으로 맛있게 만드시는 것 같고요.
박조아 바텐더 : 그렇죠. 처음에는 실사 이미지로 거품 위에 띄우려고 했는데 약간 아니다 싶어서 캐릭터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또 너무 같은 그림만 시키는 것 같아 재미가 없어 그림의 종류를 늘렸어요. 경주여행을 생각할만한 장소들로 말이죠.
Q. 그래서 다음 칵테일이 궁금해집니다. 경주 법주 사워 다음으로 프렙에서 사랑받는 시그니처 칵테일은 무엇일까요?
박조아 바텐더 : 송편이라는 칵테일입니다. 파인다이닝을 갔다가 참기름을 활용한 디저트를 맛보았는데 이걸 칵테일로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담솔이라는 전통주를 사용했고, 저희가 손님 앞에서 참기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줘요. 이쪽으로 마시면 맛있는 송편의 맛을 느끼면서 맛볼 수 있죠.
Q. 맛있는 쑥라떼나 '찰떡아이스'같은 맛이 나네요. 또 이게 굉장히 대중적인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칵테일을 몰라도 좋아할 거 같아요.
박조아 바텐더 : 맞습니다. 재료가 적게 들어가면서 깊은 맛을 내는 클래식 칵테일들도 좋지만, 바 프렙에는 칵테일이 처음이신 분들도 많이 방문하거든요. 그래서 더 쉽고 재미있게 마실 수 있는 칵테일들을 선보이는 편이에요.
Q. 마지막이 궁금합니다. 사실 바 프렙에 오는 분들은 어느 정도 관광을 하다가 들어온 분들이란 말이죠? 저도 주변 왕릉을 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목도 많이 마르고 말이죠. 그런 분들을 위한 칵테일도 있을까요?
박조아 바텐더 : 제가 좋아하는 바 프렙의 칵테일인데요. '스파클 업'이라는 칵테일입니다. 경주가 땅이 좋아서(?) 특산물이 참 많거든요. 그중에 토마토가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만든 칵테일입니다. 토마토 워터에 스파클링 와인을 함께해서 만들었는데요. 산책하거나 걸어 다니고 마실 때 시원하고 맛있는 칵테일이죠.
Q. 와 이건 정말 낮에 마셔도 좋은, 그런 운동하고 마시는 느낌의 칵테일이네요.
박조아 바텐더 : 맞아요. 바 프렙의 낮 메뉴 시그니처 칵테일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공간뿐만이 아니다. 바 프렙의 칵테일들은 바와 카페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친절함이 있다. 술이 어렵거나, 칵테일이 처음인 사람들도 맛있고 재미있게 마실 수 있는 시그니처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 조금씩 경주의 상징들을 찾을 수 있고, 칵테일의 매력을 알 수 있는 사람과 문화를 연결해 주는 시그니처가 이곳에 있다.
잔을 나눌수록 시간은 흐르고 창가 밖으로 환하게 보이던 경주의 하늘이 조금씩 붉게 변하고 있다. 서울이 아닌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바. 여행을 하는 중간, 중간 이런 바들을 우연하게 만나는 것도 참 좋은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Q. 서울에 있는 바텐더들이 이곳을 보면 참 좋아할 것 같아요. 넓고, 예쁘고, 쾌적하고.
박조아 바텐더 : 주변 지인들이 처음에 이 공간을 보고 '작은 바를 낸다면서'하고 굉장히 뭐라 했던 기억이 있어요. 또 아는 동료들이나, 바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종종 들리시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공간에 대한 제약이 서울보다는 덜 했죠.
Q. 나도 서울을 벗어나서 바를 내겠다! 이런 분들은 없나요? 만약에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세요?
박조아 바텐더 : 당연히 있죠. 그런데 그때그때 답이 달라요. 바 프렙이 너무 잘 될 때는 "아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고, 또 잠깐 주춤하면 "하지 마"라고(웃음)
박조아 바텐더 : 그런데 기본적으로 다들 꼼꼼하게 고민하고 계획하고 하니까. 그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있고요. 개인인 바람으로는 관광 도시든 어디든 바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가서 바를 가는 즐거움이 분명 있거든요.
Q. 바텐더님 생각에 여행과 칵테일 바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조아 바텐더 : 손님 입장이라면 일상을 떠나서 특별함을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또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좋은 여행지도, 좋은 바도 손님에게 편안함과 특별함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기억에 남고, 언젠가 또 찾아오고 싶어 지겠죠?
한 때는 여행자에서,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지에 칵테일 바를 냈다. 이제 경주를 찾은 사람들은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 바 프렙의 문을 연다. 특별한 날에 마시는 나를 위한 특별한 시그니처 칵테일. 여행의 마무리를 칵테일로 하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