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바텔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시즘 Nov 03. 2023

월드 시그니처 배틀 챔피언이 말하는 '시그니처 음료'

#바텔러_시러피하우스

"저희가 역대 다녀온 카페 중에 가장 밝은 카페 같아요."

상수역 근처 홍대카페 <시러피 하우스>의 문을 열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그야말로 유럽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공간이라고 할까. 벽면을 장식한 그림, 나무 테이블에 올려진 소품과 책들까지 카페 주인의 취향이 가득 녹아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골목의 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가 '2016년 월드 시그니처 배틀'의 우승자이기 때문이다. 이분은 카페 바리스타들에게는 '시그니처 음료 마스터'로 더 알려져 있다. 카페계의 백 선생님, 음료계의 강형욱님이라고 할까? 


전국 많은 카페들의 시그니처를 만드는 그가 이곳에 카페를 차린 이유는 하나다. 취향이 가득 반영된 즐거운 카페를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카페 문 열 때가 행복하다는 '고은미 바리스타'의 표정은 지금도 카페의 밝은 조명보다 더욱 빛났다. 



시그니처 음료계의 다빈치


고은미 바리스타는 2016년 월드 시그니처 배틀(현재는 월드 칵테일 배틀) 챔피언, 또 여러 카페들의 시그니처 음료를 만들어주는 전문가, 또는 카페를 막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교육해주는 워밍업 아카데미의 원장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그니처 음료를 구상하고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직접 공간을 만들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어서 지난해 '시러피 하우스'의 문을 열었다는 고은미 바리스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Q. 보통 바리스타님들에게 커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면 10명 중 6명은 <커피프린스>를 보고 시작했다고 말해요. 바리스타님은 혹시 커피와 시그니처 음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고은미 바리스타 : 저는 커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본어 전공이었고요. 대학생 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를 즐기지는 않았었어요. 그런데도 좋았던 것이 제가 만든 음료를 너무 맛있게 드시는 손님들이 있는 거예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다음에 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하고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카페에 자리잡게 된 것 같아요. 


Q. 보통 커피에 빠져서 카페를 시작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바리스타님은 ‘음료’ 자체에 집중했군요. 굉장히 폭넓게 공부해야 할 거 같은데요?


고은미 바리스타 : 맞아요. 커피 자체도 분야가 너무 다양한데, 여러 음료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모든 재료에 관심을 가져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커피를 배우고, 차에도 관심을 갖고, 술도 좋아해서 술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어요. 다양한 음료를 배우고 또 섞어보고 하면서 시그니처를 만들고 있죠.


Q. 그래서 2016 월드 시그니처 배틀(WSB)의 챔피언이 되셨어요. 이 대회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시그니처 음료를 만드는 대회였죠. 대신 창작음료를 만들고 또 심사위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또 대중들의 평가까지 하는 대회였습니다. 지금은 범위가 넓어지고, 더 다양한 퍼포먼스를 해야 해서 대회명이 '월드 칵테일 배틀'로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Q. 월드 시그니처 배틀 대회의 초대 우승자가 되시고 나서(고은미 바리스타: 맞아요!ㅎㅎ) 다른 대회나 카페를 관리하기보다 '시그니처 음료'에 집중하신 것도 독특한 행보였던 거 같아요.


고은미 바리스타 : 아무래도 이후에는 음료 회사들에서 '파우더 음료' 메뉴 개발이라든지, 카페들의 시그니처 음료를 컨설팅하고 만드는 일을 많이 했어요. 또 카페쇼 같은 행사에서 세미나를 맡아서 하고, 카페를 창업하고 싶은 분들을 모아 학원도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그니처 음료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러피 하우스>를 연 이유는 뭘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이것도 메뉴 개발을 위해서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음료를 만들고 팔기 위해 만들었어요. 보통 시그니처 음료를 개발해주는 것은 회사나 의뢰한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녹이는 일이거든요. 어느 정도는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 일을 해야 해요. 하지만 이곳은 매일매일 출근할 때마다 설레요. 

이야기 속에서 한껏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카페를 바라보는 시선에 일터가 아닌 아지트를 보는 듯한 설렘이 담겨 있다. 시그니처 음료계의 거장이 만든 아담하고 예쁜 카페라니, 어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홍대 속 유럽 감성의 카페 시러피 하우스


시러피 하우스는 지난해 5월에 문을 연 카페다. 고은미 바리스타의 명성과 시그니처 음료의 맛을 보기 전부터 감동 포인트가 가득하다. 공간에 있는 물건 하나, 하나에도 모두 신경을 쓴 흔적이 담겨있다. 카페 구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해외 어딘가에 날아온 것 같은 카페. 시러피 하우스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Q. 보통 카페 이름을 짓는다 하면 사람들이 헷갈릴까 봐, 상호명에 '커피'를 붙인다거나, '로스터리'를 붙인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카페'이런 것들을 넣잖아요. 시러피 하우스의 뜻은 뭘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어감이 일단 부드럽고 귀엽지 않나요(웃음). 보통 카페 음료를 마실 때 질감(텍스처)을 표현하는 용어로 '크리미하다', '워터리하다' 등이 있는데요. 달콤한 음료를 '시러피하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또 다른 말로는 '지나치게 감상적인'이라는 뜻이 있는데요. 딱 이런 감성적인 무드와 어울리는 달콤한 음료를 파는 곳이라는 뜻에서 시러피 하우스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Q. 카페에 있는 소품들이 인테리어 샵에서 일괄 구매(...) 이런 게 아니라, 하나하나 신경 써서 고른 것 같습니다. 음료를 마시기도 전에 카페 주인의 취향을 추측하게 하는 거 같아요.

고은미 바리스타 : 이런 오브제들은 제가 계속 수집해 왔던 것들이었어요. 저희 학원도 딱 이런 인테리어거든요. (Q. 맙소사 학원이 이런 카페 같은 분위기라고요?) 네 학원도 카페 같이 생겼어요. 제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 전시장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살리려고 그런 컨셉으로 공간을 만들었죠.


Q. 외람된 말씀인데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일단 스릴러나 이런 쪽은 아닌 게 분명해요. 


고은미 바리스타 : 사람이 행복해지는 영화를 좋아해요. 영화 <인턴> 이런 것들을 보면 이런 느낌을 어떻게 음료와 공간에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죠.


Q. 예쁘고 편안하면서, 무언가를 감상하는 취향이 담긴 공간이라는 게 신기합니다. 그럼에도 시러피 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음료인 거죠? 


고은미 바리스타 : 저희는 시그니처 음료죠. 


그녀는 바로 이동을 하여 시그니처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식당을 차리는 이야기를 담은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처럼 행복한 분위기가 났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이토록 맛있는 시그니처가 가득한 카페가 얼마나 더 있을까?



행복함을 선물하는 시그니처 


카페를 이야기할 때는 행복한 카페 사장님의 모습이지만, 시그니처 음료를 이야기할 때는 다르다.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시그니처 음료로 만든다고 하는 고은미 바리스타의 메뉴는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심지어 한 폭의 그림이나, 꽃다발을 보듯이 예쁜 모습이다. 이걸 어떻게 한 개만 시킬 수가 있겠어... 일단 세 가지의 시그니처를 부탁했다.


Q. 시러피 하우스에는 여러 시그니처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가 에스프레소로 만든 시그니처예요.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시러피 하우스의 대표메뉴인 에스프레소 ‘녹색광선’과 라떼 버전으로 재탄생한 ‘녹색광선 2’)


고은미 바리스타 : 시러피하우스에서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는 '녹색광선'이라는 메뉴예요. 에스프레소를 그냥 마시기에는 어려워하느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걸 더 고소하고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초록색 피스타치오 크림을 함께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만들었어요. 에스프레소의 맛도 느끼고, 달콤하고 고소한 피스타치오 크림의 맛, 그리고 위에 올려진 바삭한 식감의 토핑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음료죠. 


Q. 제가 생각하는 에스프레소의 맛을 초월한 느낌인데요. 너무 맛있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분위기가 맞는 거 같아요. 


고은미 바리스타 : 사실 메뉴의 이름은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쓴 '녹색광선'이라는 소설책에서 따왔어요. 그런데 모습이나 분위기가 너무 잘 맞아떨어졌죠. 인기가 많은데 에스프레소 말고 라떼 버전으로도 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녹색광선 2'도 나온 상태랍니다. 


Q. 녹색광선 말고도 계란후라이가 떠오르는 ‘서니사이드업’ 같은 이름과 컨셉이 확실한 에스프레소 시그니처가 참 많은 거 같아요. 또 반대로 달콤하고 다른 느낌의 시그니처도 있을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제가 중남미 커피산지 여행을 하다가 떠올린 시그니처인데요. '카니발 에이드'라는 음료예요.

브라질에서 나오는 열대과일 '과라나'에 패션후르츠를 조합해서 만든 에이드거든요. 생김새나 맛이 중남미의 화려한 축제를 떠올리듯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탄산과 함께 톡톡 튀는 느낌이 나요.


Q. 이건 누구나 마셔도 너무 맛있다고 반할 맛인데요? 시러피 하우스는 호불호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선호보다 바리스타님의 취향을 보여주고 싶어서 카페를 냈다는 말과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중 입맛을 노리신 거 아닌가요(웃음). 하지만 이것만큼은 내 취향대로 만든 것이다 싶은 시그니처가 있을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있죠. 이것은 '썸머왈츠'라고 부르는 시그니처인데요. 약간 속았다 하면서 충격 받는 사람이 있어서 '고수 레모네이드'라고도 같이 설명드리는 음료예요. 잘 만든 상큼한 레모네이드에, 제가 직접 만든 '고수 소르베'를 얹어 드리는 제품인데요. 상큼한 레모네이드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깊은 향을 느낄 수 있어요. 혹시 고수 좋아하세요?


Q. 절대 아닌데요(웃음). 그런데 이 고수 소르베가 왜 맛있는 거죠? 고수를 싫어하는 분들도 맛있게 마실 것 같은 음료예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무서웠는데 모르고 마시면 너무 맛있게 마실 것 같습니다.


고은미 바리스타 : 좋은 음료는 밸런스를 일단 갖춰야 하니까요. 하지만 고수를 너무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 음료는 '고수 추가해주세요' 옵션을 가지고 있어요.(웃음)

이어 고은미 바리스타는 스피릿들을 사용한 칵테일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직접 블렌딩한 차를 내놓기도 했다. 커피와 차, 술 등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고 즐겁게 음료를 만드는 모습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미 첫 잔으로 녹색광선을 맞았을 때부터 시러피 하우스의 매력에 빠져버린 게 아닐까? 



좋은 시그니처와 믹서는 무엇일까?


즐거운 음료와 함께 이야기는 깊어진다. 맛도 맛이지만 만든 사람의 감정이나 행복한 기분이 동시에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고은미 바리스타가 생각하는 좋은 시그니처란 어떤 시그니처일지 궁금해졌다.


Q. 저는 맛도 맛인데, 카페가 주는 분위기나, 대표님의 이야기까지 같이 듣고 마시니 너무 감동스러운 맛이었습니다. 또 동시에 궁금했는데요. '월드 시그니처 배틀 챔피언이 생각하는 시그니처란 또 다른가?' 하면서 말이죠. 좋은 시그니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은미 바리스타 : 일단 좋은 시그니처는 만든 사람의 시선과 많은 고민이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음료는 대중들이 마시고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죠. 맛있는 것도 중요하고, 밸런스도 정말 기본이죠. 하지만 마시고 나서 사람들이 카페를 기억하는 시그니처는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간 시그니처 같아요.


Q. 시러피 하우스에서 이런 시그니처를 맛보고, 감동하는 손님들이 있었나요?

고은미 바리스타 : 기억에 남는 외국인 손님이 있었어요. 첫날에는 오전에 왔다가, 오후에 다시 왔어요. 5일 동안 매일 같은 메뉴를 시켰어요. (Q. 어떤 메뉴인가요?) 녹색광선 2요. 그러더니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을 데려와도 좋냐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이제 고향인 아일랜드로 출국을 하는데 이곳과 음료를 이제 만난 게 너무 아까워서 매일 왔었는데. 친구들과 고별인사를 여기서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그때 온 친구들이 시러피 하우스의 단골이 됐어요.


Q. 저도 그 손님의 감동이 무엇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저희는 이런 카페나 칵테일 바들의 '시그니처'를 모아서 <모두의 시그니처>라는 시그니처 전국 출시 리그를 하고 있어요.


고은미 바리스타 : 네 시즌 1 때부터 재미있게 봤어요. (Q. 왜 지금까지 나오시지는 않으시고...) 너무 잘하는 분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았는데, 실제로도 정말 그렇더라고요. 시청자로 재밌게 봤습니다.


Q. 이번 시즌은 커피를 벗어나 술에 타서 마시는 '믹서 드링크'를 주제로 삼고 있어요. 대중들에게 믹서드링크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고은미 바리스타 : 시그니처도 믹서도 저는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반 대중에게 어떤 음료를 더 쉽고, 친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음료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에스프레소 시그니처를 만들었듯,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믹서 드링크'도 도수가 높고 독한 술을 더 재미있고 맛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커피와 카페를 떠나서 각종 마시는 음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료 하나로 이렇게 만든 사람의 행복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시러피 하우스는 역대 다녔던 카페 중 햇살이 들어오고, 조명이 많은 가장 밝은 카페였지만, 그것보다 더 밝고 따뜻한 음료와 사람이 있는 공간이었다.



※ 해당 원고는 '음료학교(https://blog.naver.com/beverageschool)'에 연재한 마시즘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음료학교는 마시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롯데칠성음료와 마시즘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당 원고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의 맛은? 전주 진주도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