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음료전망을 하려고 했는데 2119년을 합니다
새로운 해로 건너가는데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연말이 되면 엄마가 가르쳐 준 한 살 먹는 방법이 떠오른다. 그것은 달력이 새로운 달력으로 바뀌는 것도 모르게 깊이 자는 것이다. 아빠는 말을 거들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다고 우기다간 인생의 종을 칠 수도 있다고. 나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착실하게 작년과 올해, 내년 사이를 무사히 건너왔다.
올해도 역시 준비가 되었다. 시간과 달력에 갇히지 않고 1살을 먹기 위해 꿀잠을 잘 준비를 마친 것이다. 카페인은 일절 손에 대지도 않았고, 따뜻한 우유를 잔뜩 마셨다. 눕기만 해도 잘 수 있을 상태. 드디어 2019년으로 간다. 기다려라 음료들아!
알람이 울린다. 올해도 무사히 눈을 떴구나. 새로 바뀌어진 2119년 달력. 다행이군 2119년이야. 잠깐, 2119년이라고? 이 잠탱이가 얼마나 잠을 잔 거야!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음료다. 현실이면 정신을 차리고, 꿈이라면 깰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2119년의 음료들에 대한 이야기다.
혼란함도 잠시,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2119년의 음료라... 적어도 100년 뒤에 신년음료 특집은 안해도 되겠구만'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제 마시다 만 와인이 떠올랐다. 2018년 12월 31일에 열었으니까, 누가 마시지 않았다면 최소 100년 숙성된 와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걸 팔기만 해도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와인이 오래 놔둔다고 비싸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특히 마트와인(마시고 막아둔)은 한 번 연 상태에서 품질이 점점 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와인병 속에는 찌꺼기 같은 것들만 붙어있었다. 이거 그래도 프랑스 와인인데.
안타깝게도 미래에는 프랑스 와인이 기를 펴지 못한다. 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기후가 달라지니 포도와 와인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 100년 뒤의 최고의 와인산지는 영국이 될거라는 연구도 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며 와인벨트가 점점 허리춤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칠레 등의 와인을 마시면 되지 않냐고? 이곳들은 온난화로 인한 산불이 문제다. 밭이 불타지 않아도 연기가 포도에 스며들어 산불맛 와인이 난다. 농사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의 맛은 100년 뒤에는 충격과 공포가 될 확률이 크다. 문제는 와인 뿐만이 아닐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음료는 무슨 밥이나 먹자! 하지만 100년 뒤의 미래에는 식사가 음료화가 되어있을 확률이 크다. 시간이 금인 세상에서 귀찮게 숟가락 젓가락을 언제 다 챙기나? 그저 영양과 맛에 맞춰 음료를 마시면 되는 것이다. 음료를 통해 음식의 맛을 재현할 수 있다면 배달음식도 필요없다. 자판기 같은 거 하나 설치하면 되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려 2008년에 '미트 워터(Meat Water)'라는 고기 맛 나는 음료를 고안했다. 심지어 쇠고기 육포맛, 버팔로 윙맛, 탄두리 치킨맛, 이탈리안 소세지맛 등 그럴 듯한 메뉴와 시음소식도 전달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시즘도 속아서 구매하려고 했었다는 게 페이크.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예술 퍼포먼스였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가공식품을 먹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음식의 미래는 음료가 되고 있다. 한국에도 식사를 대체할 음료들이 많이 출시가 되고 있다. 단지 고기맛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100년 뒤의 후손들은 지금이라도 기도하는게 좋을 껄? 식사대용음료가 어중간한 맛에서 멈추지 않고 치킨맛이라도 나오기를.
물론 나는 2018년에서 넘어왔기에 '고기맛 음료'를 마셔줄 생각이 없다. 차라리 커피를 마시자. 카페가 여기있군 바리스타는 어디있지! 바리스타!
하지만 2119년도쯤 되면 바리스타란 직업은 없다. 2018년 대한민국 '비트(b;eat)'라는 카페에서 시작된 로봇 바리스타 시장이 이미 대중화 되고도 남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바리스타 로봇은 한치의 오차 없이 원두를 분석하고, 커피를 만든다. 심지어 지치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는 알파고 앞의 이세돌이 될 운명이다. 물론 커피만 맛있으면 고맙지만.
혹은 커피 자체가 변해있을 확률이 있다. 이미 유럽에서 만들어진 투명한 색깔의 커피 '클리어 커피'가 2018년에 아시아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화학적 첨가물도 없을 뿐더러, 누렁니도 방지할 수 있다. 건강과 미용까지 생각한 커피라니! 과연 2119년에 유행할 커피 답군(물론 2018년까지는 마셔볼 용기가 없었다).
왜 영화에서 미래로 온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알겠다. 조금 정상적인 음료를 마시고 싶다. 그렇다면 코카콜라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여러 음료들과 달리 콜라는 정해진 제조법이 존재한다. 또한 이를 바꾸지 않고 지키는 것이 회사의 사명이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바뀐 디자인을 노려볼 수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미래의 코카콜라 디자인이 어떻게 생겼을지를 그려보는 일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첨부사진에 있는 '제롬 올리벳(Jerome olivet)'의 작품. 코카콜라 덕후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긴 코카콜라 병이 나온다면 미래에 불시착 하는 것도 나름 보람찬 일이 될 것 같다.
혼란한 마음에는 맥주가 역시 제격이건만, 미래에는 맥주의 몸값이 올라갈 예정이다. 문제는 역시나 지구온난화다. 중국 베이징대 국제 연구팀은 미래 기후에 따른 맥주 가격을 연구해 '네이처 플랜트'에 게시했다. 지표면 온도가 3도 높아지면 보리 생산량은 -4%가 감소하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올라가는 순간 보리 생산량은 곤두박질 칠 것으로 전망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피해를 보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벨기에와 체코, 독일이다. 모두 맥주를 잘 만들고, 많이 마시는 나라다. 이곳들의 지표면이 5도 상승한 경우 보리는 27~38%가 줄어든다. 2119년에는 역사상 가장 술을 적게 마시는 옥토버페스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지금보다 2~3배 더 비싸게 맥주를 마셔야 한다.
이쯤 되면 허망한 기분이 든다. 제대로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만 있다면 원하는 맛과 향의 음료를 마실 수 있다. 가상의 칵테일 복테일(Vocktail, Virtual Cocktail)이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연구진이 개발한 이 음료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칵테일 잔에 든 음료의 색깔과 맛을 바꿀 수 있다. 잔 아래 깔린 LED조명으로 음료의 색을 바꾸고, 전기자극을 줘서 음료의 맛을 조절한다. 또한 잔에 붙어있는 튜브로 향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과학의 원리 아래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나도 마찬가지다. 분명 물을 마셨는데 레모네이드 같아. 아까 마신 음료들도 다 과학으로 장난질 친 것은 아니겠지?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미래의 음료는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가는 동안 2119년의 사람들이 들고 있는 물건을 본다. 아니 이건 스마트폰이 아니라 빨대잖아?
그렇다. 빨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2017년에 맥도날드는 이미 우주항공 및 로봇연구자들과 빨대를 연구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J형 빨대(쉐이크의 층별 맛을 한 번에 5:5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다. 또한 더러운 물을 정화하여 마시게 하는 라이프 스트로, 약물이 섞였는지 확인하는 스마트 스트로가 벌써 만들어졌다.
무엇이 어떤 음료인지 방심할 수 없는 미래사회. 이때야 말로 빨대의 활약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빨대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지금의 모습은 미래인들의 뇌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비싼 빨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시대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빨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폴더형 빨대, 수축형 빨대, 미닫이형 빨대까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머니에서 빨대를 꺼낸다. 2018년에서 가져온 주름빨대다. 주름빨대가 등장하자 도시는 뒤집힌다. “플라스틱!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인간이 아직도 있다니!”
나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려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받는다. 아아! 그만해! 잘못했어!
꿈이었을까? 군중들에게 빨대로 공격을 당한 뒤에 나는 눈을 떴다. 텔레비전을 켰다. 다행히도 나는 2019년이었다. ‘내가 아는 음료가 있는 세계에 왔구나! 정말 개꿈이었어!’ 나는 당장에 음료를 마시러 집 밖으로 나간다. 텔레비전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오밥나무와 카카오나무, 커피나무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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