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국산맥주 대전이 시작된다
테라가 불을 지폈고
카스가 기름을 부었다
맥주계에 영원한 1위는 없다. 90년대 만년 2위였던 조선맥주(하이트)가 하이트 맥주로 OB맥주를 이겼고, 2011년 OB맥주의 카스가 하이트에게 복수를 했다(궁금하다면 이곳을 클릭하자). 두 양대산맥 맥주의 전투가 끝나고 맥주시장의 판세는 다시 굳어지는 듯했다. '4캔에 만원'이라는 수입맥주 연합이 들어오기 까지는.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무려 3억 달러(10년 만에 8배로 커졌다). '카스냐 하이트냐'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선택지가 넓어졌다. 오히려 '카스와 하이트를 주려면 물을 달라'라고 외치는 이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국산맥주는 소비자 평판과 가격적 메리트를 잃어가고 있다. 이대로 국산맥주는 끝인가?
아니다. 80%였던 공장 가동률이 38%로 추락한 하이트진로가 포를 쏘아 올렸다. 신제품을 내놓으며 2차 국산맥주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름하야 '카스테라(카스VS테라)'전쟁을.
시작은 하이트다. 한때 시장점유율 60%가 넘었던 하이트는 20% 언저리를 수성하고 있다. 음식점에서는 카스에게 밀리고, 마트에서는 수입맥주에게 밀리고 있다. 때문에 하이트진로는 '소주를 판 돈으로 맥주 적자를 메꾼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 맥스를 출시해도, 드라이피니시d를 출시해도 역부족이었다.
9년 동안의 굴욕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테라(Terra)'를 출시했다. 연구개발비로 1,000억원이 지출된 녀석. 같은 라인의 하이트와 맥스, 드라이피니시d의 점유율을 빼앗기더라도 일단 카스를 물리친다는 결의에 찬 녀석이다. 때문에 대대적으로 시음회를 가지고, 마케팅 또한 활발하다. 주변에 올인을 해본 사람이 많아서 아는데. 하이트진로 녀석. 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든 제품 소식만이 끝이 아니다. 도전자 테라의 출시로 주당들은 반대편을 주목했다. 과연 챔피언 '카스'는 어떻게 나올까?
하이트진로가 카스를 잡겠다며 출사표를 던져도 카스의 본진 오비맥주는 잠잠했다. 알고 보니 폭풍전야였다. 오비맥주는 테라 출시 시기에 맞춰 카스 공장 가격 인상을 기습 발표한다(3~4년에 한 번씩 오는 인상시기였지만 시기나 발표방법이 기습적이었다). 맞불작전을 펼친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카스 가격이 오르면 테라한테는 더 좋은 게 아닌가요?" 아니다. 업소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산맥주에서는 일단 도매상과 음식점주가 얼마나 물량을 가지고 있는지로 판매가 결정된다. 때문에 '카스'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만 나도 미리 사재기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창고는 한정되어있고 테라를 둘 공간에도 카스가 차게 된다. 업계 용어로는 '밀어내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맥주를 파는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도 좋은 소식이다. 카스 가격 인상으로 음식점 맥주 5,000원의 시대가 열렸다. 공장 출고가에 업주의 마진이 더 붙었다. 이 상황에서 음식점은 마진율이 적은 하이트진로 맥주를 파느니, 카스를 더 들이고 만다. 그렇다. 맥주의 세계 아니 장사의 세계에 신입 봐주기는 없다.
하이트진로도 난감한 상황이다. 매년 재료값과 설비, 인건비가 오른 상황. 맥주업계는 3~4년에 한 번씩 1등 기업(오비맥주)이 총대를 메고 가격을 올린다. 그리고 후순위 기업들도 이에 맞춰 맥주 가격을 올리는 구조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탑승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뭇매를 맞게 된다.
그런데 방금 나온 '테라'를 가격 인상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비맥주는 자연스럽게 있는 인상이었다고 하지만, 시기가 기가 막혔다.
오비맥주는 방어와 동시에 상대의 다른 진영을 공격한다. 2월에 출시하고 잠잠했던 오비맥주의 발포주 '필굿'의 홍보를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 발포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만 있던 상황. 맥주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던 것과 달리 1년 10개월 만에 5억 캔이나 팔아버린 하이트진로의 자존심이었다.
개인적으로 올해 맥주전쟁은 2월에 출격할 '필굿'이 먼저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잠잠했다. 유통채널 1위인 이마트와 GS25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시 초반 조심스럽게 시장을 보면서 3월 모든 유통망에 들어갈 것을 계획하는 사이 하이트진로가 일단 '테라'에 마케팅 총력을 쏟는 듯하다. 이때다. 오비맥주는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3월 18일) 필굿의 TV광고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격전이 일어나진 않는 듯하다. 혼자서 시장을 채울 만큼 채웠던 필라이트는 경쟁자가 생기자 시장이 클 거라 기대하고 있다. 필굿의 경우는 스펙은 맞췄는데 이렇다 할 차별점이 없는 상태. 때문에 귀여움(캐릭터) 대결로 가는데 발포주 코너가 초록코끼리, 파란코끼리, 노란고래로 가득하다. '동물의 왕국'이야 뭐야.
하이트진로는 가격 인상은 없는 것으로 결정했다(하는 것도 너무 큰 도전이다). 테라는 하이트와 판매 가격이 같지만 제작원가가 더 들었다며. 테라의 마진율을 낮춰서라도 이 가격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이트진로의 5년 연속(2014~2018) 누적손실액이 900억원에 이르면 잃을 것도 없다. 가격적인 메리트를 앞세워 테라의 시장점유율을 2자리 수로 맞춘다는 계획이다(존버는 승리한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에는 '테라'의 초기 반응과 성적이 괜찮기 때문이다. 이미 시음회에서 (회사로고만 가리면) 해외 맥주 같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또한 출시 2주 만에 예상 판매량을 달성했고. 500ml 병은 공급 부족 현상도 겪었다고 한다.
추가로 가격 공격에 들어간다. CU편의점의 경우는 테라 병맥주를 200원 할인을 감행했다(테라 피쳐도 할인 중이라는 마시즘 독자의 제보). 다른 국산맥주보다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본다. 광고 브랜드 평판 1위, 인간카누 '공유'가 텔레비전을 돌리기만 하면 테라를 들고 나온다. 이런 맥주계의 불나방.
가끔 언론에서 '테슬라'라는 이야기를 슬쩍 밀기도 한다. 소맥계의 고유명사인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을 '테슬라(테라+참이슬)'로 대체해서 음식점을 뚫어보겠다는 뜻. 왜 이런 네이밍에 목숨을 거냐고. 그게 소맥을 마시는 아재들의 심리다. 입에 잘 붙고. 뭐 그래...
일반 음료들보다 주류 쪽이 마시는 사람들의 충성도가 높다. 음료회사들도 나름의 경쟁을 하지만 주류 쪽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구매를 할 때 크게 고려하지 않는 일반 음료보다 주류는 마시는 것만 마신다. 또한 '한 번 울타리를 떠난 소비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
1, 2위들의 싸움에 3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바로 롯데주류다. 2014년에 출시한 클라우드, 2017년에 출시한 피츠가 어느 정도 성장을 더 해야 하는 시기에 카스와 테라가 혈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새 제품을 낼 수도 없는 일. 롯데주류는 기존 맥주는 내실을 다지고, 수입맥주들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한다.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국산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불타고 있다. 수입맥주들도 덩달아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올여름 성수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맥주 경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깡패스러운 가격과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중국 판매량 1위(= 세계 판매량 1위) 맥주 '설화'가 5월에 한국에 상륙한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맥주전쟁. 이제는 경쟁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카스테라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는 누가 될까?
참고문헌
주세법 개정 머뭇대다, 수입맥주 3년새 두배, 김재후, 한국경제
‘벌써 불붙은 맥주대전’…맥주업체, 3사3색 생존 마케팅, 양길모 ,브릿지경제
하이트진로, 공격경영으로 주류시장 재편 승부수, 강휘호, 주간한국
독점 `필라이트`에 대항마 `필굿` 출격, 맥주시장 `발포주 대전` 점화, 김아름, 디지털타임스
하이트진로 vs 오비맥주, 발포주 동물 캐릭터 맞대결, 최유희, 서울파이낸스
오비맥주 ‘필굿’-하이트진로 ‘테라’, 각자 상대 본진 공략 나서, 양현석, 녹색경제
[단독] 카스 맥줏값 인상 추진, 김기정, 매일경제
맥주 1위 카스 기습 가격인상···맥주 5000원 시대 오나, 김영주, 중앙일보
'맥주 5000원 시대'...음식점 카스 사재기에 근심 커진 하이트, 심민관, 조선비즈
갑작스런 가격 인상...오비맥주 노림수는?, 김현상 , 서울경제
[이슈분석]성수기 앞둔 맥주업계…한여름보다 뜨거운 경쟁, 이주현, 전자신문
'카스' 가격 인상설 제기…하이트진로 '테라' 견제?, 이주현, 전자신문
“드루와 드루와~”···경쟁제품 반기는 먹거리 시장, 김현상, 서울경제
카스 대항마 테라, '저가 승부수' 띄운다, 강신우, 이데일리
中맥주 '설화'국내 진출.. 수입맥주업계 긴장 고조, 김병덕,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