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적 스포가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뷰
본 게시물에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파가 가득한 영화관을 혼자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팝콘을 시키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콜라 그리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는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인터넷과 대인관계를 끊고 살아왔지. 화장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외친다. "토르가 꺄꺅꺅, 아이언맨이!! 캡틴이!!!"
식스센스, 파이트클럽, 메멘토 그리고 엔드게임까지. 모든 반전을 알고 관람한 그는. 영화계의 노스트라다무스 마시즘이다. 아직 영화 안 본 사람이라면 후퇴해.
모두 감쪽같이 속았다. 어벤져스는 한 편의 반전영화였다. 인터넷 코난들은 어벤져스 원년멤버들의 계약기간을 근거로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퇴장을 점치고 뿌듯해 했지만 토르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 누가 알았을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 스톰브레이커로 타노스에게 돌려돌려 도끼판을 날린 토르가 5년 후에는 맥주 마시는 곰돌이 푸, 게임폐인이 될 거란 사실을.
하지만 루소 형제는 곳곳에 떡밥을 뿌려놨었다. 부제를 봤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토르가 게임(Game)을 그만(End)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형 몇 개월 전에 한국에서 게임광고 찍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프로녹즙러 아이언맨 못지 않게 토르도 출연작 내내 마셨다. <토르 : 천둥의 신>에서는 해외판 소맥 '보일러메이커(맥주+위스키)'를 마셨고,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1,000년 묵힌 아스가르드 술을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토르 3 : 라그나로크> 쿠키에서는 닥터스트레인지가 운영하는 맥주무한리필집에 가는 모습도 보여줬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토르는 한 술 더 뜨는 캐릭터다. 로키와 맥주 마시기 대결을 했는데 로키가 토르의 맥주의 뿔잔을 바다에 연결한다. 토르는 맥주인줄 알고 마시다가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그렇다. 마실 줄 만 알지 미각과는 담을 쌓은 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하던 토르가 (드디어) 뚠뚜니가 되어버렸다. 타노스는 토르를 단련하게 만들었지만, 맥주는 토르를 술배 나온 아저씨로 만들어 버렸다. 맥주가 타노스보다 강하다. 폭풍간지를 기대했던 토르팬과 아스가르드인들이 망치를 들고 일어날 일. 하지만 이 한줄의 트윗으로 모든 사건은 납득이 되어버렸다.
"그래 5년 동안 포트나이트하고 맥주만 쳐마시면 누구든 저렇게 돼 (Yeah. 5 years of fortnite and beer will nerf anyone)"
어. 인정.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르의 심경변화는 맥주 선택에서부터 나타난다. 기존까지는 맥주잔에 라거를 담아 마셨다. 뭐 대단할게 있겠는가. 그냥 버드와이저나 하이네켄, 카스, 하이트를 마셔도 비슷한 거지.
하지만 예고편을 보면 범상치 않은 캔맥주가 보인다. 애틀랜타의 로컬맥주 크리쳐 컴포트(Creature Comforts) 브루어리에서 만든 바이스맥주(밀맥주)다. 그렇다 맥덕이 된 것이다. 지구에 있던 5년 동안 그는 미국전역의 맥주를 돌아다닌게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구에 정착한 뉴 아스가르드에서 백성들이 만드는 것은 '아스가르드 스타우트'다. 우리의 토르는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노스 핑거스냅의 생존자들이 방황할 때 이민자 우두머리인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새로운 먹거리 맥주사업을 구상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만든 맥주를 시제품도 판매품도 지가 다 마신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6개월이 걸릴거라 예상했던 '디아블로'를 6시간만에 죽인 한국인답게 영화 개봉과 동시에 타노스 공략법들이 생겨났다. 이번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돼르...아니 토르였다. 그를 아스가르드에 보내지 않고 소울스톤이 있는 보르미르에 보내자는 것.
아시다시피 보르미르는 자기한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소울스톤을 얻을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여자친구도 집도 멋도 건강도 모두 잃은 토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들고있는 맥주 한 캔이다. 행성에 맥주 한 캔을 투척하면 소울스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블랙위도우와 호크아이가 서로 떨어지겠다고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었다.
정리정돈의 신 같은 루소형제의 이야기 조립법은 인정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오딘의 와인창고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스톤은 어차피 도둑의 달인 로켓이 다 했을 거. 토르는 와인창고에 가서 술이나 마셨으면 이 영화는 마스터 피스였을텐데. 마음 속의 별점을 1점 깎았다.
지난편 '엄마...(mother f…)' 에 이어 고질적인 번역문제도 있었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칵테일 한 잔 달라'고 번역 한 것. 토마토 주스로 만든 블러디 메리가 칵테일이긴 하지만 알콜홀릭에게는 숙취를 푸는 음료다. '해장술 달라'가 더욱 술냄새 나는 번역이었을텐데.
어쨌든 영화 속 토르는 호머심슨의 간지로 영화 중간중간에 웃음을 담당한다. 전함을 부수는 파워는 캡틴마블이 가져갔고, 병따개로 가져온 묠니르는 캡틴 아메리카가 가져갔다. 함께 이상해진(?) 헐크와는 서로 핑거스냅 할 사람을 주거니 받거니 할 뿐이다. 사실 장갑이 작아서 그냥 한 말이었을텐데. 장갑이 맞춤형으로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영화의 말미.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왕 자리를 발키리에게 넘겨준다. 매일 같이 땀흘려 흑맥주를 만들어서 토르에게 바쳐야 했던 아스가르드 국민들이 환호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발키리 역시 맥주를 통으로 마시는 전형적인 알콜중독이다. 하루빨리 뉴아스가르드에 음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정착하길 바란다.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다는 마블 11년의 갈라쇼 같은 무대가 끝이 났다. 예상했던 멋진 퇴장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토르는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하게 만든다. 아직 살을 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로켓의 우주선에 타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팀이 합류한다. 우주의 맥주를 마시러 토르가 간다!
한 차례의 이벤트가 끝이 났다. 이제 '아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아니 돌아와야만 한다. 더 좋은 이야기와 맥주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