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음료덕후들
나는 내가 노벨상을 탈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려서부터 손에 닿는 대로 물건을 분해했고(물론 다시 조립되는 일은 없었고 엄마는 슬퍼했다), 일기장을 발명노트로 썼다. 거꾸로 날아가는 고무동력기, 땅으로 질주하는 물로켓 은 나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이 혁신을 알아봤다면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진일보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발명에 대한 이야기는 솔깃하다. 특히 음료수에 관련된 발명품들은 심장을 뛰게 한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우연한 계기에 발명되었고, 음료수를 마시는 방법 자체를 바꾸었다. 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오늘 마시즘은 그 행운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문과만 아니었어도!
그의 이름은 윌리엄 페인터(William Painter). 당시에 탄산음료를 보관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갖고 있었다. 뚜껑을 세게 닫으면 탄산의 압력에 병이 깨질 수 있었고, 너무 헐거우면 탄산이 빠져나가고 음료가 금방 상했다. 배탈로 혼이 단단히 난 그는 탄산음료를 막을 수 있는 병뚜껑을 개발한다. 5년 동안 3,000여 개의 병뚜껑을 비교해서 만든 것이 왕관 병뚜껑(Crown Cap)이다.
왕관 병뚜껑은 탄산음료를 안전하게 보관했다. 또한 만드는 방법이 간편했다. 거기에 병뚜껑을 따는 순간의 쾌감까지 더해져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의 병뚜껑은 톱니가 21개다. 19개면 탄산이 빠져나가고, 24개면 병뚜껑을 딸 때 병이 깨질 우려가 있었다. 수학적으로 만든 병뚜껑은 그의 또 다른 발명품인 병따개에서만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 나라 한국에서는 숟가락, 혹은 이로도 병뚜껑을 딴다.
그의 이름은 애멀 프레이즈(Ermal Fraze). 그는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왔다. 즐거운 피크닉에 음료수가 빠질 수 없어 캔에 담긴 음료를 가져왔는데, 캔을 여는 따개를 깜빡해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에는 캔 따개가 없으면 캔을 개봉할 수 없었다. 그는 자동차 보닛의 받침 철사를 이용해 겨우 캔을 딴다. 캔도 자동차 보닛처럼 열고 닫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캔의 윗부분에 구멍이 날 수 있도록 금을 낸 뒤, 지렛대를 고정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캔 뚜껑이 풀 탭(Pull-Tap)이다. 이를 최초로 도입한 피츠버그의 양조회사의 Iron Beer는 매출이 200%가 오른다. 그리고 2년 만에 미국 캔맥주의 75%가 그의 캔 뚜껑을 사용한다.
하지만 풀 탭은 절단한 부분이 날카로웠고, 캔을 열고 나서 뚜껑이 쓰레기로 남았다. 1977년 그는 캔의 뚜껑이 음료수 캔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팝 탑(Pop-top) 방식을 내놓는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캔 뚜껑의 형태다.
그의 이름은 마빈 스톤(Marvin Stone). 담배를 종이에 마는 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다. 당시에는 위스키를 마실 때 밀짚 대롱을 사용했다. 술잔을 손으로 잡고 마시면 위스키의 온도가 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밀짚의 향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마는 담배 종이를 이용해 빨대를 만들어 마셨다(빨대와 밀짚이 모두 영어로 Straw인 이유도 여기 있다).
그가 만든 빨대는 곧 전국의 술쟁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종이 빨대는 곧 상품화가 진행되었고, 그가 다니던 담배공장은 담배보다 빨대를 많이 생산하였다. 노동자였던 그는 한순간에 기업주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는 레모네이드라는 새로운 음료수가 인기를 끌며 빨대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가 없었으면 레모네이드를 밀짚 대롱으로 마실 뻔했다.
그의 이름은 신석균.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그가 우유팩을 최초로 고안했다는 사실은 여러 방송에 나와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는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에, 특허를 낼 수 없어 헐값에 UN군에게 자신의 발명을 넘겼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5,000여 개의 발명을 했지만, 그의 가장 대표작이 특허를 못 받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이미 종이팩의 발명은 1915년 미국의 존 반 워머(John Van Wormer)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이를 개량해 지붕모양의 게이블 탑(Gable Top) 방식이 1950년대 만들어졌다. 신석균 역시 비슷한 아이디어를 고안했지만, 당시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발명가들이 있었다고 추정이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에디슨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천재는 99%의 노력, 1% 영감, 그리고 남들보다 빠른 특허등록에 있다는 것을.
그의 이름은 토마스 설리반이다. 그래도 나름 치열하게 고민을 했던 발명가들과 다르게, 설리반은 자신도 모르게 발명을 한 행운의 사나이다. 1908년 차 판매상이었던 그는 샘플을 잠재고객에게 보내는 일을 했다. 일일이 잎차를 고르고 나누는 일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비단 주머니에 1회분의 잎차를 넣어 샘플을 보냈다.
그런데 고객들이 반응했다. 대신 기존에 팔던 차가 아니라, 비단 주머니에 넣은 샘플을 계속 보내달라는 것. 설리반은 고객들이 자신이 보낸 비단 주머니를 아예 차 주전자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경악한다. 그거 그냥 포장인데. 하지만 고객들은 이렇게 간편하게 차를 만드는 비단 주머니의 간편함에 푹 빠져있었다.
의문의 발명품인 티백(Tea Bag)은 차 애호가들의 많은 질타를 받았다. 여유와 절차를 중요시하는 차 문화에서 티백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티백은 전 세계의 차 시장을 잡아먹는다. 현재 차의 90%는 잎차가 아닌 티백의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역시 편한 게 최고야.
우리가 음료수를 마시는 곳곳에는 크고 작은 발명이 들어있다. 사소하고 우연하게 만든 발명품들은 음료수의 역사를 바꿔왔다.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은 발명가들 모두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즐겨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음료수를 마시면서 불편한 점이 없었나? 만약 있었다면 당신이 그다음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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