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할수록 멀어지는 인생의 비밀
첫째는 요즘 종이비행기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에 한 명이 100미터 날아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며 나에게 접어달라고 요구했다. 100미터 날아가는 비행기를 유튜브에 검색하니 정말 있었다. 동남아의 어느 젊은이가 올린 100미터 날아가는 비행기. 접는 방식이 우리나라 비행기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놀라운 건 비행기 접기 영상 배경음악이 이루마의 'Maybe'. 이루마가 쏘아 올린 k-뮤직이 동남아 어느 청년의 가슴을 울렸구나 싶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첫째가 계속 떠들어댄다.
"거봐, 내가 있다고 했잖아"
A4용지를 꺼내 접어본다. 종이비행기 하나로 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별 대단한 장난감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잘 놀고, 신나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비행기는 우리 집에 기생하게 되었다. 첫째는 비행기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일반과 100미터 비행기. 일반 비행기는 우리가 다 아는 종이비행기이다. 둘째 비행기는 일반이다. 첫째도 일반이 있다. 첫째와 둘째의 일반 비행기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비행기는 본인이 낙서한 종이 이면지로 만들어줬다는 것. 30개월 된 아가도 자기 것을 구분한다. 그래서 밤마다 소파 위에서 비행기를 날린다. 나까지 포함해 비행기 날리기 대회를 집에서 하고 있다. 밤 10시가 넘을 무렵, 결국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밑에 집에서 항의를 한 모양이다. 흥분한 아이들을 워~워~ 시킨다. 종이비행기가 뭐라고 아이들은 이리도 신이 날까.
지난 금요일, 첫째는 100미터 비행기를 유치원에 가져갔다. 한 친구가 100미터가 어디 있냐고 했다고 하면서. 그리고 하원 길. 100미터 비행기는 여전히 첫째의 손에 들려있었다. 바람이 다소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공기도 유난히 차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 앞 놀이터에서 비행기를 날리기로 했다.
바람이 거셀 때 바람의 방향을 잘 감지해야 한다. 적당한 바람은 적당히 비행기를 이끌어주지만, 강한 바람은 어떤 방향에서 비행기를 거부한다. 바람의 상태가 그만큼 중요하나 아이는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무작정 날리고 날린다. 둘째도 옆에서 신나게 날렸다. 이 아이는 첫째보다 바람을 파악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결국 바람을 이해한 첫째의 비행기를 하늘 위를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둘째의 비행기는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바람의 힘을 거스를 수 없어 매번 쉽게 추락한다. 둘째가 내내 보채는 통에 정신이 없던 찰나. 드디어 일이 터졌다.
"엄마 꺼내 줘"
첫째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비행기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놀이터 평상 지붕이다.
"저건 엄마가 못 꺼내는데"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이는 오열하기 시작한다.
"저거 꺼내 줄 때까지 못 가. 어서 꺼내 줘. 내가 아끼는 건데"
"바람이 세게 불면, 자연스럽게 떨어질 거야"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야 돼"
눈앞에 분명 비행기가 있지만, 지붕까지 올라갈 순 없다. 우산으로 툭툭 칠 수도 없다. 플라스틱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공사했는데 무리하게 쳤다간 수리비를 물어낼 수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생각이 스치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도 난리 났다. 비행기 날리려면 엄마가 놀이대 위로 올려줘야 하는데 형과 있으니 화가 난 모양이다.
육아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둘 다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한 놈은 눈앞에 비행기를 날릴 수 없어 울고, 한 놈은 더 날리고 싶어 울고.
"바람이 세게 불면, 비행기가 떨어질 거야. 그때까지 어쩔 수 없어"
엄마의 말이 전혀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첫째는 미끄럼틀 대 위로 올라가 비행기를 응시한다.
"나 이제 집에 못 가. 여기서 계속 지켜봐야 돼"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비행기는 지붕 위에 누워 꿈쩍 안고 있다. 비행기야. 오늘 하루 피곤했니? 마치 스누피가 자기 집 지붕 위에 누워 쉬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쉬고 있는 거니. 아 애꿎은 비행기를 나물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엄마 다리에는 한 놈이 붙어 울고 있다. 배도 고프고, 날도 춥고. 비행기가 날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던 둘째가 떼를 쓴다. 한 놈은 집에 가자고 난리, 한 놈은 못 가겠다고 난리. 너희들은 어쩜 매번 그렇게 의견이 다르니. 이단 분리가 일상화인 엄마는 오늘도 정신이 어디로 흐르는지 모를 지경이다. 얘들아. 우리의 목표는 바다로 가는 거야. 모로 가든 바다로 가자며 바다(평온을 가져다줄 우리 집)로 가자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둘이 동시에 울면 답이 없다
비행기는 답이 없다. 아이의 울음에 대답 없는 비행기는 곤히 잠든 모양이다. 첫째는 20분 넘게 비행기를 노려본다. 하지만 비행기는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 네 방에 가면, 비행기 확인할 수 있어. 그만 가자"
"알았어"
드디어 백기를 든 첫째를 데리고 집에 왔다. 첫째는 울면서 계속 얘기한다.
" 나 100미터 비행기 다시 접어줘"
쉽게 울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아이는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있다. 안 되는 건 결국 안된다는 걸 알게 되는 걸까. 살다 보면 아무리 바둥대도, 아무리 열망이 커도,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널리고 널렸다는 것을. 게다가 인생은 대부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다는 것을 아이도 알게 될까?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우리는 산책길에 비행기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아이는 비행기 날리기를 하자며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다시 우리에게로 왔다. 막상 손에 쥐어지자, 아이에게 비행기는 더 이상 뜨거운 열망의 존재가 아니었다. 어쨌든 돌아왔으니 그 자체가 준 기쁨만이 훗날 더 기억될 것이다.
그다음 날, 아이의 뜬금없는 말 한마디.
"엄마, 고하민이 자기 집에 천 미터 날아가는 비행기 있대"
천 미터 날아가는 비행기라.... 그.... 래, 그 얘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줄게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