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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Dec 02. 2020

왜 매번 설거지라는 미션을 완료하지 못했나

목표 완수와 설거지의 상관관계

설거지처럼 목표가 단순한 과제가 또 있을까.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한 끼가 끝나면, 바로 그릇을 정리하겠다고. 식기세척기가 없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산처럼 쌓인 설거지거리 앞에서 매번 좌절했다. 



'이것은 수행이다'



수행이 깊어지면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작은 그릇들과 수저들을 정리하다 보면 큰 냄비들을 빠트리게 된다. 그래서 큰 설거지거리들을 먼저 정리하게 되었다. 일단 개수대의 용량이 이 모든 이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하다. 한 끼만 먹어도 산처럼 쌓이는 그릇들. 나는 마치 자가 복제를 하듯 늘어나는 그릇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순서를 정했다. 큰 그릇 먼저, 그다음 큰 접시, 작은 접시, 국그릇, 밥그릇, 컵, 수저들과 각종 조리도구들. 마지막엔 아이들 물병. 



그런데 물병이 복병이다. 아기 물병은 특히 귀찮다. 빨대와 물샘 방지 링이 있고, 빨대는 전용 솔이 필요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나씩 헤치다가 결국 끝까지 완수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이 아기 물병 때문이다. 귀찮았다. 몇 개씩 쌓이기도 한다. 얼른 씻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미룬다. 마치 일을 미루듯 마감을 기다리듯 미루기만 했다.



식기세척기가 들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초벌 설거지를 한다. 물로 닦아내고 식기 세척기 안에 다 때려 넣는다. 마치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경차 주차 공간에 suv가 엉덩이를 디비는 것처럼 꾸역꾸역 넣는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나 도마, 대형 냄비들은 직접 설거지한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기계와 인간의 완료 시간은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의 손이 더 빠르다. 하지만 식세기는 살균을 해준다. 그릇의 수분이 어느 정도 달아난 지점에서 완료가 되기 때문에 더 나은 면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 물병을 쌓아두기 일쑤였다. 공공연하게 미뤄두는 습관이 여전한 것이다. 아이들 물병은 직접 해야 한다.  세제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 직접 씻는 게 좋다. 게다가 빨대는 식세기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패잔병처럼 쌓인 물병들을 응시했다. 그들의 운명이 이렇게 방치되는 건 나의 잘못이다. 그들은 죄가 없다. 그들의 생김새는 그들의 용도에 맞게 제작된 것이다. 인간의 손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 이제는 미루지 말자. 자꾸만 일을 뒤로 미루는 안 좋은 습관이 생각났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결국 뒤늦게 일을 해치우던 지난날의 잘못된 습관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집안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물병 설거지와 여전한 난제인 빨래 더미들. 얼른얼른 정리해서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거늘 우리 집 빨래들은 더미를 이뤄 서로 연대한다. 끌어안고 언제인지 모를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물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이들과의 잘못된 관행을 잘라내기로 했다. 이건 내 게을렸던 일상과의 절교와도 같다. 먹고 바로 정리한다. 식세기에 일단 다 넣고 돌린다. 나머지 쌓인 설거지거리들을 해결한다. 아이들 물병까지 끝까지 씻는다. 이를 악물고 한다. 중간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요 며칠 설거지 미션에 성공했다. 설거지 미션을 완료하니 마른 수건들이 보인다. 얼른 개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줬다. 이런 단순 노동을 완료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끝까지 목표를 완수할 때 관건은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기! 오늘 나는 피곤했으니까, 오늘은 정말 기운이 없으니까, 오늘은 체력이 떨어져서 서 있을 수가 없으니까 등의 핑곗거리들이 목표를 완수하는데 방해를 한다. 하지만 이는 잡념에 불과하다. 남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자투리 시간이 생겼다고 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 되면 또 다른 핑곗거리를 찾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탈출하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의 덫에 빠지게 된다. 



이제 그만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오늘도 혹시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괜한 자기 합리화에 빠지면. 그러니 열심히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리자. 목표 달성도 역시 꾸준함이 중요하다. 열심히 오늘도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하고, 또 책을 읽자. 나의 뇌가 더 이상 자기 합리화의 덫에 걸리게 두지 말고, 실천하자.


결국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가치를 굳이 대단한 성공에 두지 않더라도, 작은 성공들이 모여 큰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설거지를 통해 더큰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그릇을 정리한다. 뿌듯함이 성취라는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 나는 나의 인생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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