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러브 Dec 02. 2021

놀이터에서 만난 그 아이, 어쩌다 욕쟁이가 되었나

아이는 부모를 보며 성장하는 거겠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주중 놀이터행은 일상 루틴 중 하나이다. 다소 까다로운 우리 집 아이들만 보다가 놀이터에서 노는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보면, 인간이란 어쩜 길에 굴러다니는 돌보다도 다양한 형체를 지녔으며, 그 하나의 돌마저도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아이들은 표정부터 다양하다. 해맑은 아이, 서러운 아이, 까부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 등 감정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자신을 어필한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내 눈에 들어온 남자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 아이는 우리 단지 놀이터 죽돌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놀이터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 중 하나이다. 바깥활동을 워낙 많이 하신지라 얼굴도, 종아리도, 팔뚝도 까맣게 탔다. 주로 밝은 색 옷을 입는데 해 질 무렵, 아이 옷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느 순간, 놀이터에 나온 어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언제부터 배웠는지 모르겠다. 욕쟁이 할머니 못지않게 찰진 욕설을 한 방씩 날린다. 



"이 씨* *아"

"야 이 개**야"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깜짝 놀랄 정도이다. 일단 톤이 높다. 바로 옆에 있지 않아도 근처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놀다가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친구와 트러블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무조건 반사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발화된다. 친구들은 그 아이가 욕을 너무 많이 하니 이렇게 규정을 했다. 얘는 "욕을 많이 하는 아이"라고. 그랬더니 그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앞에선 욕 안 한다. 엄마 없을 때만 하거든"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때와 장소는 가리지 않아도 그 아이의 욕은 사람을 가린다는 걸 나도 알았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와 놀던 그 아이는 감탄사처럼 한 마디 내뱉었다.



"야 이 씨*..... 놈아"



갑자기 말끝이 흐려졌다. 한 어른이 지나가다 쳐다본 모양이다. 크게 욕 한 방 날리다가 눈치가 보인 모양이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아이도 알고 있다. 욕을 하면 나쁜 사람이란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른들은 욕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눈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며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엔 같이 노는 무리 중 한 아이도 욕을 하기 시작했다. 미끄럼 통 안에서 한 남자아이가 시원하게 내뱉는다.



"야 이 씨**아 저리 가"



찰진 욕 소리에 순간 누구일까 얼굴을 확인하니 욕하는 아이 친구였다. 욕의 전염성이 얼마나 높은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이다. 욕이 일상이 되면, 욕은 더 이상 욕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보다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 같다. 관련 내용을 찾다가 요즘 아이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자기 과시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의 무리엔 암암리에 서열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열에서 자신의 존재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로 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감탄사처럼 욕을 하는 아이들. 욕이 무조건 나쁘니 쓰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만무 하다.



그러다 그 아이의 엄마가 다른 엄마 무리와 함께 모여있는 걸 봤다. 조신하게 엄마 옆에 앉아있는 아이는 기존의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다소곳하게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면서 앉아있다. 그러다 엄마와 함께 그 아이가 일어섰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차갑다. 엄마에게 뭔가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때 엄마가 아이와 아이 친구에게 한 마디 한다.



"이 멍청이들"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의 욕을 이해하기로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아이들의 심리가 조금씩 보인다. 누군가에게 항상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아이의 눈빛엔 외로움이 가득하다.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에 대해 그 마음을 약간 알 것 같다. 그 아이도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외로움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나의 추측이 100% 맞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같이 놀 사람을 찾아다니는 외로운 꼬마 늑대 같다. 겉으론 거칠어 보이지만, 속 안을 들여다보면 여리디 여린,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 달 넘게 지켜본 내겐 거칠게 자신을 표현하지만, 정작 따뜻하게 돌봐주는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처럼 보인다.



우연히 하굣길에 또 그 아이와 마주쳤다. 그 아이 엄마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아이는 엄마 뒤꽁무니를 쫓으며 하드를 빨고 간다. 둘 사이에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그 아이의 엄마는 다른 볼 일이 있는지 건너편으로 가버린다. 아이는 친구와 함께 신발로 바닥을 파다가 주변에 온갖 것들에 시선을 두면서 집으로 한다. 친구와 함께 있었지만, 그 아이는 외로워 보였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친구 아빠가 멀리서 친구 이름을 부른다. 아이는 그저 갈 길을 간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른다.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을 때의 시기를 떠올린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받았었을 그때가 아이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욕쟁이가 됐을까. 욕을 뺀 나머지, 그 아이에겐 남는 건 뭘까.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소중한 존재임을 점점 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아이에겐 그 망각의 시기가 너무 빨리 온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지만, 가끔 우울해도 괜찮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