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에 회의가 드는 순간
둘째가 방학을 했다. 3년간의 유치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잠시 휴지기가 생겼다. 3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방학 첫날, 아이와 동네마트에 갔다. 저녁에 분식파티를 하자고 했다. 나는 동의했고,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첫째가 학원에서 끝날 무렵, 준비에 들어갔다.
- 김밥 재료: 미나리. 단무지&우엉 김밥세트, 김밥김. 계란 25구, 맛살
(시금치가 한단에 3980원이라니... 2500원 미나리로 대처)
- 떡볶이떡 (소스가 남은 게 있게 떡만 구입)
- 순대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마트 순대. 둘째가 졸라 구입. 원래 레토르트 음식 잘 안삼)
첫째가 좋아하는 군만두는 집에 냉동만두가 있어 구입하지 않았다.
먼저 김밥이다. 김밥을 사 먹는 게 어쩌면 시간대비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김밥을 집에서 싼다. 재료 준비하는 과정에서 번거로움은 있지만, 일단 준비하면 10줄 싸는 건 일도 아니다.
먼저 미나리를 물에 담근다. 씻는 동안 냄비에 물을 끓인다. 미나리가 잠깐 물속에 있는 동안, 당근을 채썬다. 채칼을 쓸 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길게 어슷썰기를 한 후 채를 썬다. 물이 곧 끓을 것 같아 미나리 세척에 도입했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구고, 시든 이파리를 떼어낸다. 채반에 넣어 물기를 뺀다. 드디어 물이 보글보글 끓어 오른다. 동글동글 물방울들이 상승기류를 타고 수면 위로 올라오면, 미나리를 넣고 20초? 30초 지나 꺼낸다. 찬물에 씻어 물기를 꼭 짠 후, 양푼에 담아둔다. 계란 두 알을 깬다. 알끈을 제거한 후, 빠르게 풀어준다. 계란물을 만든 후, 팬에 기름을 넣고 데운다. 그 틈을 따 맛살을 꺼내 반을 자른다. 6개이니 12줄을 만들 수 있다. 팬이 데워졌으면, 먼저 계란지단을 만든다. 이어 맛살을 볶는다. 다 익으면 각각 접시에 담에 식힌다. 키친타월로 기름을 닦는다. 당근을 넣고 달달 볶는다. 당근에 있는 비타민은 지용성이라 기름에 볶아 먹으면 영양소 흡수에 도움이 된다고,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웠는데 요즘은 그냥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애들한테 당근을 먹이는 방법 중 하나로 김밥을 택하기도 하다. 볶은 당근도 접시에 담는다. 밥을 꺼내 소금과 들기름을 넣어 간을 한다. 이제 마트에서 사 온 단무지와 우엉. 김밥김을 식탁 위에 올려 세팅하면, 재료 준비 끝.
나 어릴 때 엄마는 시금치는 물론, 우엉도 어묵도 직접 조리고, 소시지도 볶았다. 그렇게 온 재료를 모아 김밥을 만 후, 마지막에 김밥을 통째로 팬에 데웠다. 요즘에야 구운 김밥김이 팔지만, 그 시절엔 생김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싸 온 김밥에선 생김맛이 났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해졌는가. 그렇게 해서 김밥 6줄을 말았다.
김밥을 말기 전, 사실 나는 이미 대부분의 조리를 끝냈다. 떡볶이를 만들었고(채소와 소스를 넣어 달달 끓인), 냉동만두와 순대를 쪄놨다. 마트에서 파는 순대를 처음 사봤는데 좀 짰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곰탕에 파와 순대를 넣고 끓이면 순댓국이 된다는 레시피도 알게 됐다. 군만두를 하려고 하니 첫째가 이번엔 찐만두를 해달라고 했다. 만두가 20개정도 있었을까? 작은 만두라 15개 정도는 됐을 것이다. (세어뒀어야 했다.) 한라봉도 꺼내고, 물컵에 물까지 따랐다.
그렇게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났다. 첫째와 둘째는 어김없이 책을 들고 와 먹기 시작했다. 책을 보며 먹는 습관에 대해 이제는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 그저 먹고 있는지 확인한다. 둘째는 떡볶이가 좀 맵다고 해서 다시 물을 넣고 데워줬다. 그 사이 둘째는 한라봉을 먹었다. 이후 떡볶이를 주력으로 먹다가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틈틈이 순대를 먹긴 했으나 역시나 많이 먹진 않았다.
그때였다. 만두만 먹고 있는 첫째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니 눈에 거슬렸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공략하는 식성. 하나만 찜해 먹는다는 과몰입식성을 가진 아이. 채소는 거의 먹지 않고, 과일은 최상급만 취급하고, 주로 고기를 먹는 육식주의자. 육식주의자의 입맛을 회유하기 위해 오늘 나는 김밥을 쌌다는 걸 첫째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공전략의 기본덕목이 아니던가. 하지만 계속 만두만 먹는다. 그것도 손으로 집어서. 한라봉도 쳐다보지 않고(에피타이저로 과일을 먹는 아이인데) 만두만 입에 넣는다. 만두 말고 다른 것도 먹자고 했는데 알았다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슬슬 사춘기가 오고 있어 잔소리를 줄이려고 한다. 사실 잔소리는 관계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사춘기건 갱년기건 어떤 시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첫째는 만두를 두 개 남겨두고 손을 뗐다. 둘째가 하나도 못 먹었다고 해서 이건 동생 먹게 하자고 했기 때문. 이번엔 떡볶이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속도가 슬슬 느려진다. 슬로모션을 찍는 것도 아닌데 떡볶이접시가 거의 그대로이다. 나는 그쯤 난잡해진 주방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섰다. 얼마 안 되어 첫째가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아까부터 엄마가 경고했잖아, 배부를 거라거. 만두는 식사가 아니라고."
"배부른걸 어떻게 해!!"
아이도 목소리를 높였다. 절반 넘게 남은 김밥은 둘째가 먹은 것이다. 둘째는 한 줄 정도 먹었다.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니 자기 정량은 먹은 것이다. 김밥은 네가 채소를 잘 먹지 않으니 엄마가 만든 거야. 육식으로 채워진 너의 매 끼니를 보는 게 얼마나 불편한 줄 아니. 점심에도 넌 소고기구이만 먹었지. 다른 음식도 좀 먹어보자. 딸기가 조금 물렀다 해도 맛은 좋아. 흠집 없는 과일은 없어. 좀 먹어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내 말이 귀에 들릴리 있을까. 아이의 감정은 이미 틀어졌는데. 너무 골고루 먹으라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골고루 먹길 바라는 건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그동안 다른 건 모르겠지만, 가공육을 먹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허들도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베이컨, 햄, 스팸 등은 최소화하고 있다. 훈제오리는 아이가 조류덕후가 되면서 식탁에서 사라졌다. (몇 번 주지도 않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가공육만은 최소화하자.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햄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대신 스팸을 자신만의 간장을 만들어 조려서 먹기도 한다. 물론 스팸을 사는 건 일 년에 2~3번도 안 되는 것 같다. 대신 고기를 직접 사서 양념을 만들어 구워준다. 아쉽지만 수육을 즐기지 않아 자주 만들진 못한다. 대신 양념은 자연드림에 파는 것들로 사용한다. 국내산 콩으로 만든 된장과 고추장, 양조간강, 국간장, 쌈장 등. 기름은 아보카도유를 쓴다. 내가 만드는 집밥이 건강한 요리라고 할 수 없지만, 노력하는 중이다. 노력해 왔고 지금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첫째가 커가면서 라면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라면은 한 달에 한 번 라면데이를 정해 먹는다. 라면볶음밥도 한 달에 한 번 먹는다. 이건 아이들이 보는 '흔한 남매'에 나오는 레시피였다. 아이들이 해달라고 해서 허용했다. 적당한 선에서 고수할 건 고수하고, 타협할 건 타협한다. 그럼에도 빵과 과자는 잘 모르겠다. 둘째는 잘 먹지 않는데 이 역시 첫째가 많이 먹는다.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니 먹게 한다. 9시가 넘어 간식을 먹겠다고 할 때는 양을 제한한다. 참고로 우리 집 마지막 간식 타임은 9시이다. 그 안에서, 그 시간을 약간 초과해서 먹고 난 후, 야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것. 나 역시 야식을 먹지 않는다. 남편은 그 시각에 집에 거의 없으니 우리 3명은 그 안에서 지키고 있다.
이렇게 육아를 하면 먹고사는 일이 이토록 내 온 신경을 자극할 줄 몰랐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해준 신 음식을 먹고 자랐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도 대부분 직접 음식을 했다. 김장도하고, 매일 국을 끓이고, 나물은 무치고, 온갖 요리를 해놓고 나가 일을 했다. 그런 엄마의 노동이 얼마나 힘겨울지 가늠하긴 지금도 힘들다. 하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엄마가 직접 담근 오이지를 양념에 묻힌 것과 마늘종무침, 고들빼기김치라는 걸. 이건 어디서 사 먹기도 힘들다. 맛이 없다. 내 기억 속에서 온전히 엄마가 만들어준 그 맛이 각인되어 있으니 내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엄마의 노고를 너무 늦게 안 것일까. 사실 명절 때 아이들과 친정에 가면 아이들은 밥을 잘 먹는다. 첫째는 특히 할머니가 만들어준 갈비찜맛을 잊지 못한다. 한솥을 만들었는데 2번 만에 다 비워진 그 갈비찜 첫째는 고기를 공략해서 먹다가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3끼를 먹었다. 지난번엔 불고기만 공략에 밥을 다 비웠다. 아, 어쩌면 내 요리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 아이들이 밥을 남긴 이유가 바로 그런 걸까.
그냥 어깨 너머로 배운 엄마의 요리솜씨를 따라갈 순 없지만, 집밥을 먹이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건 건강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음식이란 문화이기도 하다. 식욕을 채우기 위해 먹지만,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만, 아니 요즘 같은 먹방 시대를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먹는다는 건 나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나란 존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는가, 그 근간에 쌓인 감정들을 헤아리게 된다 . 아이들이 얼마나 기억할지 모른다. 내가 만든 음식보다 외식으로 접한 음식을 최고로 치는 아이들이니까. 나도 어렸을 땐 그랬으니까(그래도 난 집밥을 잘 먹었다!! 애들아 ㅠㅠ 외식을 잘 안 하고 살았으니) 지금처럼 다양한 식재료에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모르고 살았으니까. 집에서 먹는 따뜻한 한 끼라는 정서를 대물림 해주고 싶은다. 가끔 힘 빠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내 손으로 해서 먹이는 동안,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이고, 그 과정 속에 엄마가 있고, 그 결과물이 오늘의 한 끼라는 걸. 이처럼 세상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는 걸.
이런저런 두서없는 생각들이 오가는 새벽, 아침이다. (쓰다 보니 해가 떴다)